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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우리’라는 흔한 말의 힘, 다툼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줘

등록 2022-09-28 09:00수정 2022-09-28 20:42

[이것이 K-정신이다] ⑥ 이기동 전 성균관대 대학원장
이기동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기동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여섯번째 성균관대 유학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낸 이기동(71) 교수다.

이기동 교수는 성균관대 유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공부한 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대만 국립정치대학과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그는 최근 <유학 오천년>(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을 정리해 5권의 책을 펴냈다. 이 방대한 저술은 동국 18현 중 한 사람인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하서재단의 김재억 감사가 “재단이 뒷받침해줄 테니 ‘유학 오천년’을 총정리하는 집필을 해달라”고 부탁해서 이뤄졌다. 하서재단이 수많은 유학자 가운데 그를 선택해 중국·한국·일본·베트남의 유학사상과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게 한 것도 의미 있지만, 이 ‘유학 오천년’의 출현은 새 시야를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유학이 중국의 학문이라는 관점을 되풀이하기보다는, 한민족이 유학과 동양학의 주체라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그는 동아시아 가치의 주축인 유학의 발원이 중국이 아니라 고대 동이족이 살던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미 3년 전 <환단고기> 해설서를 펴낸 바 있다. 단군을 비롯한 한민족의 고대 역사와 철학을 담은 <환단고기>는 주류 사학계가 위서라며 금기시해서 학자들이 언급하고 싶어도 사이비 학자로 찍힐까 두려워 언급하기를 꺼리는 책이다. 그런데도 대표적인 동양철학자 중 한명인 그가 책까지 펴낸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그의 성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도 남의 말만 듣고 금기시하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환단고기>를 제자들과의 공부 모임에서 우연히 함께 읽으면서, 그동안 수십년간 학자로서 풀리지 않던 유학과 철학의 의문들이 단박에 해소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한민족 고대 철학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정신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을 인자(仁者·어진 이)와 지자(知者·지혜로운 이)로 분류하는데, 둘은 삶의 원리가 다르다. 애초 한국인은 인자다. 인자는 본질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을 만났을 때 ‘너다, 나다’ 분리하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쓴다.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아니까. ‘사랑한다’도 ‘아이 러브 유’(I love you)라고 하지 않고 그냥 ‘사랑한다’고 한다. 왜 ‘아이’와 ‘유’를 생략하는가. 사랑하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반쪽을 만나면 ‘반쪽 같다’는 의미로 ‘반갑습니다’라고 한다. 인자와 달리 지자는 ‘나는 나, 너는 너’로 철저히 상대와 나를 분리한다. 철저하게 ‘나는’을 강조한다. 이들은 남남끼리 사니, 기본적으로 삶이 경쟁이다. 따라서 물질적으로는 발전하고, 서로 이기려고 무기도 개발해 발전하지만 너무 경쟁만 하고, 서로 멀어지다 보니 외로워진다. 모두를 ‘하나’로 보는 우리와 달리, 각각 남남이라고 하면 열명이 모이면 10분의 1, 100명이 모이면 100분의 1, 70억명이 모이면 고작 70억분의 1이다. 그러니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을 별로 문제시하지 않는다. 또 남남은 마음보다 몸 중심이다. 따라서 배가 고플 때는 내 몸 챙기려 열심히 사는데, 배가 부르고 넉넉해지면, 잠깐 살다가 마는 몸이란 존재에 대해 허무주의에 빠진다. 그러면 외로움을 못 견디고 마약 중독자가 되기도 한다.”

이기동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이기동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는 <오징어 게임>이나 <수리남> 같은 드라마나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같은 아이돌 등 한류가 뜨는 배경에는 이런 한국인의 독특한 ‘우리 정신’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인은 본래 ‘하나’와 ‘우리’라는 의식이 강하다. 어질 인(仁)을 보면 ‘두 사람’이란 뜻이다. 미국이나 일본·중국에서 지내봤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술 생각이 나면 혼자 술집에도 가고 식당에도 간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원래는 좀체 홀로 안 가고 함께 갈 친구를 찾는다. 한국 드라마에선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빠지면 목숨을 던지곤 한다. <미스터 션샤인>(tvN)을 보면 한 여자를 세 남자가 사랑하는데, 한 여자를 위해 세 남자가 모두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남자들이 죽는 장면을 보면 그들은 행복해하며 죽는다. 이를 보면 나도 저런 사랑 한번 받아 봤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남남끼리 경쟁과 다툼에 지친 세계인들에게 이처럼 하나 되는 사랑은 열망을 불러온다.” 다음은 이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통상 한국인을 ‘한’(恨)의 민족이라고 하는데, 그 한은 외침을 많이 당해 생긴 것이라는 설이 많은데 그런가?

“중국에 <독단>이란 책이 있는데, 그 책에 ‘천자’(天子·하늘의 아들)라는 말은 이적(夷賊·오랑캐)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다. 오랫동안 동이족에게 뒤처졌다가 전성기로 나아가던 중국인들은 동이족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동이족을 오랑캐로 낙인찍었다. 그런데 동이족은 모두가 다 천자라 칭했는데, 중국에선 황제에게만 갖다 붙였다. 목은 이색은 ‘천인무간’(天人無間·하늘과 인간 사이엔 간극이 없음)이라고 했고, 퇴계 이황은 천아무간(天我無間)이라고 했다. ‘하늘과 나 사이엔 간격이 없다’는 뜻이다. 동학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했다. 이처럼 내가 하늘인데 현재 이 모양이라면 원래 하늘 모습을 회복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렵다. 그것이 한으로 나타나 수양을 철저하게 해서 본래 모습을 회복하려고 한다. 우리 문화는 한을 푸는 한풀이 문화다. 서양 문명에 물들어 돈을 벌고 권력을 쥐어야 한이 풀릴 줄 알고 치열하게 열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한은 그렇게 해서 풀리지 않는다. 한국인의 한은 우리가 하나라는 본질인 한마음을 회복해야 풀린다. 그것이 원효의 ‘일심철학’이고, 퇴계와 수운의 철학이기도 하다.”

―주류 사학계가 인정하지 않은 <환단고기> 해설서를 낸 이유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함)은 주자학의 핵심인데 <환단고기>에서는 하늘의 마음을 성이라 하고, 이것은 ‘살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즉 하늘은 만물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명쾌한 말이 있는가. 만약 위서라면 누구나 다 아는 말을 뒤집을 수 없다. 너훈아는 나훈아와 비슷하게 노래를 부르지 전혀 다르게는 안 부른다. <환단고기>를 너무 국수주의적으로, 고토를 회복하자는 민족주의적 시각으로만 본 이들 때문에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의심받게 된 측면이 있지만, <환단고기>는 민족을 넘어 드넓은 철학을 담고 있다. <환단고기>에서 너무나 놀라운 철학들을 계속 발견하게 되면서, 왜 남의 말만 듣고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가 학자로서 참회를 했다. 기독교를 욕하는 사람들 가운데 4복음서도 안 읽어보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논어>도 안 보고 유교를 욕하는 분들도 있다. 적어도 학자라면 한번 읽어보고 비판도 해야 한다. 예컨대 추사 서책이 새로 나와 종이 감정사가 보고 추사 때 종이나 먹이 아니니 가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예가가 보니 추사 글씨가 틀림없다. 그래서 상세히 살피니 쥐가 갉아먹은 부분을 후대에 덧대기도 했다는 것이 판명될 수 있다. 따라서 추사 글씨를 감정할 때는 종이나 먹 감정사가 아니라 서예가의 감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환단고기>도 그동안 철학자가 감정하지 않았다. 철학적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환단고기>를 보고 나서는 한국인이 더 위대하게 보인다. ‘이런 위대한 철학을 가진 민족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현대 지구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이다.”

―보통 현대인들에게 학문이란 지식을 쌓는 것이라고 할 텐데, 마음공부라고 보는 까닭은?

“몸 중심, 마음 중심의 세상이 반복되는데 서구 근세 철학이 세계를 지배한 뒤로는 몸이 중심이 됐다. 하늘 마음을 부정하고, 인간의 마음이 몸속에 있다고 규정하면, 너와 나의 마음은 몸이 다르니 달라져 버린다. 하나가 아니다. 그래서 상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현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몸이 다르니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욕심을 채우려고 하니 다투게 되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전개된다. 그래서 규칙과 법을 만들고, 지식을 쌓아 싸움에 대비한다. 그러나 행복하지가 않다. 결국 불행에서 나오려면 마음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욕심도 있지만 본래 마음, 하늘 마음, 세상 전체를 하나로 여기는 우리라는 마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 본래 마음을 회복하는 마음공부야말로 진정한 학문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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