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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선감도 아이들의 참상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았죠”

등록 2022-11-20 19:20수정 2022-11-21 06:06

[짬] ‘불교인권상’ 수상한 이하라 히로미쓰

11월20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제28회 불교인권상’을 받은 이하라 히로미쓰. 조현 종교전문기자
11월20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제28회 불교인권상’을 받은 이하라 히로미쓰. 조현 종교전문기자

경기도 안산의 서해바다 조그만 섬 선감도에서 7살 때부터 3년간 살았던 일본인 소년이 있었다. 1942년부터 일제가 패망한 45년까지, 일제가 빈민·부랑아를 격리 수용한다고 세운 선감학원의 부원장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서였다. 소년강제노동수용소였던 선감학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80년이 다 지나도록 그때 죽어간 또래 아이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가 20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불교인권위워원회가 주는 ‘제28회 불교인권상’을 수상했다. 그 주인공 이하라 히로미쓰(87)를 조계사에서 만났다.

일제 만든 소년강제수용소 선감학원
부친 부원장…7살 때부터 3년간 살아
“일본 돌아가 왕따 겪으며 아픔 공감”

1989년 소설 ‘아! 선감도’ 통해 증언
50여 차례 방한해 ‘진상 알리기’ 앞장
“죽는 날까지 ‘한국 사랑’ 계속할 것”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불교인권상 시상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불교인권위 사무총장 범상 스님, 이하라 히로미쓰 부부,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 불교인권상 심사위원장 명안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불교인권상 시상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불교인권위 사무총장 범상 스님, 이하라 히로미쓰 부부,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 불교인권상 심사위원장 명안 스님. 조현 종교전문기자

“선감도에서 살 때는 (일제의) 침략을 당한 나라 아이들에 대해 불쌍하다는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패망 뒤 돌아간 조국에서 일본인인데도 조선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유로 이지메(왕따)를 당했다.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선감학원에 끌려온 아이들도 얼마나 억울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돌아온 뒤로 그를 비롯해 아버지·어머니·누나·두 여동생 등 가족 그 누구도 선감학원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선감학원에서 바다를 헤엄쳐 도망치려다 익사해 숨진 주검들과, 파리떼가 들끓던 아이들의 참상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선감학원엔 병에 걸린 아이들 20여명을 격리 수용한 곳이 있었는데, 그가 말을 걸어도 아무 대꾸도 안해 이상하게만 여겼던 그 조선 아이들이 일본말을 못해서 답을 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더 오랜 세월이 걸렸다.

트럭 운전기사와 작가, 작사가 등으로 일하면서도 그는 어떻게든 선감학원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1980년부터 50여차례나 한국을 찾아 선감학원에서 죽었거나 수용된 아이들의 진실을 파헤쳤다. 1942년 조선총독부가 지원하는 경기도 사회사업협회가 부랑아를 황국신민으로 키운다는 명분으로 8~18살 소년·소녀를 수용했던 선감학원은 해방 후에도 경기도에서 1982년까지 운영하며 가난한 원생들을 가두고 학대했다. 일제강점기 때만이 아니라 해방된 조국에서도 가난한 아이들에게 광복은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수용된 아이들은 연인원 5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 실상은 이하라가 1989년 출간한 소설 <아! 선감도>를 계기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뒤 경기도 도시편찬위원회에서 일하던 역사학자 정진각 안산지역역사연구소 대표 등이 진실 찾기에 힘을 쏟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생존 피해자, 안산 시민과 함께 진상규명운동을 펼쳤다. 1996년엔 최초로 주민들과 함께, 억울하게 죽은 선감학원 수용생을 위한 위령제를 선감묘지에서 지냈고, 2014년엔 선감학원 본관 터에 위령비를 세웠다. 이런 노력 끝에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달 선감학원의 인권유린을 ‘국가인권침해사건’으로 규정하고, 140명 이상이 암매장됐다는 증언을 토대로 시범발굴에 나선 지 닷새 만에 5구의 주검을 찾아냈다.

11월20일 불교인권상 시상식에 앞서 이하라 히로미쓰 부부(왼쪽 여덟째부터)와 선감학원 피해자·불교인권위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11월20일 불교인권상 시상식에 앞서 이하라 히로미쓰 부부(왼쪽 여덟째부터)와 선감학원 피해자·불교인권위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피해자 한일영씨와 김성환씨가 이날 시상식에 나와 처참했던 선감학원의 수용 실상을 고발하며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헌신한 이하라에게 감사를 표했다. 부인과 함께 시상식에 참석한 이하라는 시상식에 앞서, 선감학원에서 죽은 아이들을 위한 진혼곡 대금 연주와 살풀이춤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겉모습은 일본인이지만 늘 마음은 한국에 있었다”며 “98%가량은 한국인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저항할 수 없었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제수용을 했다는 게 더욱 더 큰 잘못이다. 인도적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생각 때문에 반드시 이에 대해 글을 써서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다. 선감학원에 대해 쓰지 않으면 더 이상 세상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애초 <아! 선감도>를 쓸 때는 일본인들이 읽어주어 ‘우리가 조선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기를 바랐다. 그러나 책을 읽은 일본인들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그가 일본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매국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을 힘들게 했으며, 이를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모든 것을 결산했다는 일본 정부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선의를 확산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지은 <고마워요 바다여> 같은 소설과 200여 곡의 노랫말에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을 담아냈다.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선감학원을 위한 노력과 한국 사랑을 계속할 것이라는 그는 다시는 그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자유가 넘치는 시대지만, 자신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나의 욕망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식민지화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타인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그런 마음에 함께해야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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