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한담] ‘일본의 양심’ 마츠우라 주교
‘피스 9’ 만들어 3~5명씩 어울리는 소모임 1600개 활동
군 보유 금지 ‘헌법 9조’ 마지노선 삼아 개헌 반대운동
다수의 분노와 열정에 동조하기는 쉽다. 반면 모두가 분노해 전제군주처럼 힘을 사용하려 할 때 이를 그만두라고 외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지나면서 일본에서 부활 움직임을 보이는 군국주의에 맞선 평화 운동을 벌이는 마츠우라 고로(56) 주교는 그래서 ‘일본의 양심’으로 꼽힌다.
마츠우라 주교가 평화운동을 함께 하는 오사카 교구의 사제, 수녀, 신자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일본을 찾았다가 그의 활동을 보고 감격한 박기호 신부가 주임으로 있는 예수살이공동체의 초청으로 왔다. 4박5일 일정의 첫날인 7일 서울 정동 품사랑카페에 온 그를 만났다. 깨끗하고 말끔한 외모다. 일본 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마츠우라 주교는 2차 대전 뒤 아예 전쟁을 원천적으로 할 수 없게 명문화한 헌법 9조의 개정 움직임에 맞서 이 평화조항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1년 걸프전 때 자위대 파병 반대로 평화운동 뛰어들어
그는 1991년 걸프전 당시 일본이 미국의 압력으로 ‘국제사회에 공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위대를 파병할 때, 반대운동을 벌이며 평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일본 우익과 정치권에서 ‘자위’라는 명분으로 군사력 증강을 위한 ‘헌법 9조’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1999년엔 ‘9조회 오사카’를 결정했고, 2002년엔 ‘피스(peace) 9’를 창설했다.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을 없앨 수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전쟁 억제를 위한 내용이 국제헌장에 담겼는데, 국제헌장의 그런 정신이 잘 담긴 게 ‘일본 헌법’입니다. 과거 침략전쟁으로 2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민중들에게 큰 희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헌법 9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는 이미 군비 예산이 세계 5위에 이를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일본에서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군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헌법 9조가 폐기된다면 일본의 막강한 첨단 산업 기술이 군사산업에 사용되고, 위협을 느낀 주변국들도 경쟁적으로 군사력 증강에 나서면서 아시아 평화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헌법에서 9조만 사라지면 ‘유사시’라는 구실을 만들어 언제라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가 되는 것이기에 그는 ‘헌법 9조’를 일본과 아시아 평화를 위한 마지노선으로 본다.
영토분쟁 악용해 국지전 일으킬 가능성 우려
일본에선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이 통과돼 3년 안에 국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다.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헌법이 개정될 수 있다. 하자만 마츠우라 주교의 ‘피스 9’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9조회’ 등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헌법 9조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애초 70%대였던 헌법 개정 지지율이 요즘은 40%대로 낮아진 상태다.
하지만 우익들이 상황을 반전시킬 때는 러시아와 북방 4개 섬 분쟁이나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한국과의 독도 분쟁을 이용해 국지전을 먼저 발생시켜 국민들을 자극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이 올 때 일본 국민들의 여론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자각한 민주시민의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가 만든 ’피스 9’는 3~5명씩이 어울리는 소모임 1600여개로 이뤄져 있다. 이런 소모임은 중앙사무국으로부터 어떤 명령도 받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모이고 자발적으로 활동한다. 개인 또는 소수집단이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우익의 부추김에 언제든 평화를 잃고 호전주의에 동조할 수 있는 민중 심리를 간파한 데 따른 각성운동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 가톨릭 신도는 40여만 명에 불과하지만 이제 어느 성당에서도 헌법 9조 모임이 보편화됐다. 이렇게 그가 뿌린 ‘평화의 씨앗’들이 일본 전역에서 싹을 틔워가고 있다.
글·사진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일본 헌법 제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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