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류연복
상처받은 십자가 ‘구원의 빛’으로 승화
민중미술가로 시작…산골서 목판화 집중
‘도통 칼질로 밤새우는/이런 백정을 처음 보았다./실낱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신명나는 대로 칼가는 대로/쓴 술 한 됫박이면/천하의 잘난 놈들/다 잡아주는 사람/서툰 짓 하다 들통나면/나까지 잡을 사람/이런 무서운 백정을/난생처음 보았다.’
작업실 이름도 ‘나무처럼 살아가는 집’
박금리 시인이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남풍리 하남마을 산골에서 칼질을 하는 <판화가 류연복>을 그린 것이다. 지난 1일 그 ‘백정’을 만나러 개신교의 괴짜 목사들이 찾아왔다. 강원도 원주 치악산에서 살면서 인도를 오가며 감신대와 숭실대에서 강의하는 고진하 목사와 전남 담양의 시골집에서 음악과 시와 그림과 더불어 살아가는 임의진 목사, 의왕에서 살며 개신교를 깨우는 잡지를 만들고 있는 <기독교사상> 주간 한종호 목사다. 교회라는 틀보다는 자연 속에 살며 영성을 발현하는 이들은 이곳을 종종 찾아 류화백과 함께 자연 속에 안긴다.
그의 숙소 겸 작업실이자 ‘은둔의 성소’엔 온갖 종류의 조각칼들이 걸려있다. 목여당(木如堂)이다. 그가 ‘나무처럼’ 살아가는 집이다. 목여당 가운데에 <물의 십자가> 판화가 걸려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산하 사이로 십자가 모양의 강이 시원스레 흐르는 작품이다. 로마시대에 가장 가혹한 형틀에 예수가 매달려 피를 흘린 이래 수많은 순교와 헌신과 인고와 아픔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를 그의 무엇이 이토록 아름다운 산과 강으로 살아나게 했을까. 그의 작업실의 나무조각 속에선 십자가뿐 아니라 우리의 진경산수들과 함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도 만개한 웃음을 짓고 있다.
<한겨레> 창간 당시 제호 속 ‘백두산 천지’ 그려
그는 원래 민중미술가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1984년 결성된 서울미술공동체의 벽화팀 ‘십장생’의 일원으로 벽화운동을 시작해 서울 정릉의 자기 집 벽에 상생도를 그렸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민족미술협의회 사무국장과 민예총 대외협력국장을 지낸 그는 <한겨레> 창간 때부터 1996년까지 제호에 들어간 백두산 천지 판화를 그리기도 했다. 제각기 먹고살 길을 찾아 판화를 버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라도 판화를 지키기로 한 그는 1993년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다랑이논 몇마지기와 텃밭이 있는 안성의 이 산골로 들어와 나무 위에 한국 혼과 한국의 자연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는 안성에 내려와 서울이 아닌 ‘지역인’으로서, 촌사람으로서 새삶을 시작했다. 안성의료생협 기금 모금을 위한 전시회도 했고, 폐교하려던 초등학교를 살리기위한 예술행사도 열면서 지역에서 ‘안성천살리기 시민모임’ 대표와 ‘안성맞춤 의제 21’공동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안성사람이 된 그는 밤이면 마실 온 안성의 지기들과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는 새벽이면 108배로 아침을 열고, 때때로 노자·장자의 무위자연의 경들을 탐독하던 그에게 기독교는 가장 머나먼 종교였다.
한국혼 물씬한 산수화에 목사들 눈 번쩍
민족이나 해방, 통일 같은 구호조차 버리고 자연의 생명의 흐름 속에 자신을 내맡겨버린 그였다. 그의 판화엔 한국혼이 물씬 풍기는 진경산수화가 등장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오직 개발과 승리와 정복의 서구 기독교를 넘어 자연과 상생하는 한국적 기독교를 찾던 영성 목회자들에게 그 ‘류연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감나무 속에 상처가 파인 먹감색을 더욱 아름다운 판화작품으로 꾸미는 그의 판화는 상처받은 십자가를 구원의 빛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10년전쯤 그의 판화를 보고 반한 수원등불교회 장병용 목사가 그를 찾은 이래 고 채희동 목사가 만들던 <샘>지의 표지엔 늘 그의 판화가 장식했고, 아산 들꽃교회와 여수 갈릴리교회 등 교회들에 그의 십자가 판화가 내걸리기 시작했다. 장병용 목사가 수원에 장애인들이 예술혼을 발휘하는 공간으로 짓고 있는 에이블아트센터의 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작품들을 내놓는 것도 그였다. 마침내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최근 그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한국교회와 자연 사이의 물꼬도 터주고
그는 “먹감나무는 상처를 상처로 돌려주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피워낸다”고 했다. 또 “십자가는 상대를 십자가에 달지 않고 사랑으로 돌려준다”고 했다. 먹빛이 산등성이와 강 물결로 춤추는 그의 십자가가 한국교회와 자연과의 물꼬를 터주고 있다.
하나뿐인 아들도 제 길을 가고, 화가인 아내는 한달 뒤면 타고르가 만든 인도의 대학으로 미술공부를 하러 떠나기로 했다.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는 류화백의 얼굴에서 외딴 암자의 동자승같은 그리움이 피어나고 있다. 누가 그 그리움을 채워줄까.
아들과 아내가 떠난 그 자리에서 늘 그의 곁을 지켜주는 이는 그가 14년동안 길러온 개 덫순이다. 누군가가 산에 쳐놓은 덫에 앞다리를 잘려 덫순이로 불리는 그 개는 자신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늘 그를 위로하고, 이 집을 찾는 이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반겨주고 있단다. <물의 십자가>는 자신과 생명을 해치는 덫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생명을 사랑할 줄 아는 덫순이의 마음을 표상화한지도 모른다.
안성/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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