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운길 천도교 새 교령
40여년 수련 ‘내공’, 새 바람 예고
‘움직이는 종학대학’ 운영 뜻 밝혀
천도교 새 교령에 임운길 연원회 의장이 선출돼 오는 1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경운동 중앙총부에서 취임식을 연다. 그는 김동환 전 교령에 이어 앞으로 3년간 천도교를 이끈다.
교령실에 들어가니 ‘수심정기(守心正氣)’라는 편액이 눈에 띈다.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한다’는 뜻으로 천도교 수도의 핵심이다. 임 교령의 나이는 81살. 고령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순박하다. 수심정기의 얼굴이다. 철학자 박종홍(1903~76)이 생전에 “천도교 수도자는 시골 노인처럼 보이지만 범상치 않은 면이 있다”고 평했다던가.
도력 잃은 게 교단 쇠락 가장 큰 원인
천도교는 한국 근대사의 첫 새벽을 연 동학혁명에 이어 3·1운동 당시 300만 교인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거사를 준비해 온 민족을 하나로 묶어냈던 종교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과 해방 후 좌우익 대립의 와중에 교세가 크게 꺾였다. 1986년 최덕신 교령과 1997년 오익제 교령의 월북으로 교단은 결정타를 맞았다. 이에 따라 한국 근대사를 주도적으로 움직인 역사의 큰 자취조차 흐려지고 있다. 이후에도 천도교 교령 자리는 명예와 권위를 탐하는 이들의 옥좌 정도로 인식돼 왔다. 도력이나 영성과는 거리가 먼 지도력으로 인해 누가 교령이 되느냐도 세간의 관심권에선 멀어진 지 오래다.
그런데 임 교령은 ‘권력’이니 ‘명예’니 ‘권위’니 하는 것과는 한결 다른 면목이다. 20년 전부터 천도교 교화관장과 지하조직인 연원회 의장 등을 맡긴 했지만, 그는 ‘수도자’로 꼽힌다. 40여년을 한결같이 ‘한울님을 내 안에 모신’ 시천주(侍天主)주문 수련을 해왔다. 그런 그가 종단의 최고지도자가 된 것이 천도교로선 큰 이변이 아닐 수 없다. 천도교에서 전에 없이 수도자가 교령이 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천도교 안팎에선 수도의 전통이 끊겨 도력(道力)을 잃은 것을 교단 쇠락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로 꼽는다. 교조인 수운 최제우 대신사(大神師)의 뒤를 이어 동학혁명을 이끈 2대교주 해월 최시형 신사와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운동 최고지도자였던 3대 교주 의암 손병희 성사(聖師)는 처절한 수도를 통해 얻은 도력을 밑거름으로 사회변혁운동에 나섰는데, 3·1운동 이후 본말이 전도돼 교단이 ‘수도’는 잃고, 사회운동에만 나서면서 외풍에 흔들리고, 내부 결집력도 느슨해지면서 허약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 내부 성찰이 제기되면서 수도와 인격면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그를 만장일치로 추대한 것이다.
임 교령은 천도교 교세가 강해 고을 사람 대부분이 천도교인이었던 평안도 박천에서 태어났다. 오산학교를 거쳐 평양의 천도교중앙당학교에 다닐 때에도 천도교를 이론으로 배웠을 뿐 그도 ‘수도’는 몰랐다. 그러다 6·25 때 단신 월남해 지인들과 영등포교당을 설립했던 그는 월산 김승복(1926~2004)을 만나면서 천도교의 깊은 수도세계에 눈을 떴다. 월산은 손병희 이후 끊길 뻔한 수도 전통을 치열한 수도를 통해 체계적으로 되살려 화악산수도원에서 수도를 전하다 간 ‘숨은 도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울님 간섭으로 분에 넘치는 일 맡아”
“주문수련을 하면 한울님이 임하는 강령체험을 하게 되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 강화를 체험하면서 결국 내 마음이 한울님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되는데, 이런 강령과 강화 체험을 해야만 ‘내가 한울님을 모신 것을 확신’하게 되므로 체험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신앙에 천양지차다.”
임 교령은 “보통은 ‘현상’에만 마음을 빼앗겨 번민과 고통으로 힘들어하지만, 매일 아침 30분만 수도를 해도 천지근본인 한울님에 내 마음이 맞닿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수도전통의 회복을 선언했다.
3·1운동을 앞두고 3년 동안 21일, 49일, 105일 집중수도를 통해 ‘심력’(心力)을 얻은 483명을 양성해 그들이 전국에서 300만 대교단을 이루며 대거사를 준비하게 한 손병희의 뜻을 이어 각 교당에서 집중수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수도를 통해 ‘한울임을 내 안에 모신’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한울) 사상을 가르치는 ‘천도교종학대학’이 전국 어디서나 직접 방문해 가르칠 수 있도록 ‘움직이는 종학대학’을 운영할 뜻을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중앙총부 인원을 줄이고, 자신을 비롯한 선출직들은 최소한의 운영비 외엔 무료 봉사의 자세로 임하자고 총부운영방침을 천명한 상태다.
“지금은 전에 없이 불교에서도 ‘심즉불’(心卽佛·마음이 곧 부처)을 강조하고, 기독교도 성령체험을 말하는 등 종교뿐 아니라 모든 사상의 방향도 인내천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 가르침을 미처 펼치지도 못하고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늙어서 분에 넘치는 일을 맡은 것은 ‘한울의 간섭’ 때문일 것”이라며 “교인들이 심력을 얻어 그 심력으로 인내천 세상을 열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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