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셀로드 신부와 박민서 신부. 사진 김태형 기자
수화로 의사를 전달하는 악셀로드 신부. 사진 김태형 기자
장애인 신부들의 파안대소 고통은 나를 변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을 돕게 한다 청각 장애인 박민서 신부가 헬렌 켈러처럼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3중 장애인 악셀로드 신부를 만났다. 둘의 행복한 미소, 그 비결은 무엇일까. “세상은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있으니 고통이 있다. 만약 고통이 없다면 하느님도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를 진정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육신이 멀쩡해도 죽겠다고 아우성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들을 수도, 말할 수도, 거기다 볼 수도 없다면 어떨까. 절망 외엔 그 어떤 것도 상상하기 어려워 보인다.
헬렌 켈러와 같은 3중 장애인을 만나러 24일 서울 중구 중림동 가톨릭출판사에 갔다. 이 출판사가 최근 발간한 <키릴 악셀로드 신부>의 주인공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가톨릭 사제 키릴 악셀로드(71) 신부가 출판사 1층 성당 안으로 지팡이를 짚고 들어선다. 박민서(45) 신부가 그의 팔을 붙들고 온다. 아시아에서 최초의 청각·언어장애 사제인 박 신부가 시각장애까지 가진 악셀로드 신부의 눈이 되어 부축하고 있다.
악셀로드에 비하면 박 신부의 처지는 사뭇 나아 보인다. 하지만 그가 겪는 장애의 고통조차 비장애인들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2년 전 여름 장마철에 박 신부가 사는 사제관의 변압기가 터져 화재가 발생했다. 경보음이 울려 모두 피신했지만 그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잠자고 있었다. 119 소방대가 온 뒤에야 박 신부의 부재를 확인한 신부들이 그의 방 초인종을 애타게 눌렀지만 그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다행히 구조됐지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느님은 왜 이들에게 이런 장애를 주었을까. 장애인 자신들과 그 가족들은 이미 수천 수만번 되뇌었을 물음이다. 이에 악셀로드 신부가 답한다.
“세상은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있으니 고통이 있다. 만약 고통이 없다면 하느님도 필요 없을 것이다. 하느님이 보낸 예수님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갔고, 그들과 고통을 함께했다.”
사소한 고통마저 회피하려고만 드는 비장애인들과 달리 이미 고통을 삶으로, 하느님으로, 예수님으로 받아들인 모습이다. “하느님께서 제게 장애를 주신 뜻을 생각했지요.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도우라는 것임을 알았지요.”
그는 8개 언어로 수화를 하며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장애인들도 세상에 할 일이 있다며 용기와 꿈을 심어주고 있다. 어린 시절 급우들의 놀림과 왕따로 고통을 겪은 박 신부도 1997년 미국 유학길에서 악셀로드 신부를 만나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장애는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란 예수의 말은 그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그는 “고통을 회피해 내 한 몸 편할 생각만 하는 이기주의는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했다. 소통은 더디다. 3중 장애인인 그의 유일한 소통 도구는 촉각이다. 악셀로드 신부의 손을 꼭 잡고 영어 수화를 촉각으로 전달한 박 신부가 다시 한국어 수화를 하면 가톨릭농아선교회 이현주(36) 간사가 이를 말하는 이중 통역을 통해서야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손을 잡은 채 촉각으로 소통하는 악셀로드 신부와 박민서 신부. 사진 김태형 기자
이런 소통의 장애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어느 쪽일까. 아무런 장애가 없는 비장애인이 아니었다. 유대인 부모의 외아들로 태어나 3살 때 선천성 청각장애 진단을 받은 그는 아들의 장애를 인정할 수 없었던 아버지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다. 결국 수화를 배우고 언어훈련을 해 아버지와 소통 장애를 없앤 쪽은 그였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유대교 랍비(성직자)의 꿈이 좌절된 그가 가톨릭 세례를 받아 사제가 되려 할 때 3년간이나 대화조차 거부한 어머니와도 불통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매주 한번씩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 보내며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이 유대교를 버린 것이 아님을 호소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축복 가운데 사제복을 입었다.
부모님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는 지금도 용서와 화해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 악셀로드 신부는 “지금도 부모님 제삿날엔 유대교식으로 모자를 쓰고 히브리(유대)어로 제사를 모신다”고 했다. 그는 “하느님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낸 이유는 갈등을 치유하고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며 “신자만이 아니라 무신자도 도와주어야 그리스도교”라고 했다.
성당을 걸어나오는 악셀로드 신부와 박민서 신부. 사진 김태형 기자
그는 청각뿐 아니라 시각까지 잃는 어셔증후군으로 인해 2000년 시각을 완전히 잃어버기고 큰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대화와 기도를 통해 자신에게 ‘더욱 특별한 일’이 일어났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고통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을 돕게 한다”고 했다.
암흑 속에서 빛을 여는 이들이 말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악셀로드 신부는 “사람들이 친교하며 그 안에서 평화를 나누는 것”이란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박 신부는 “관심”이라고 했다. 그는 “사제관 화재 뒤 동료 신부들이 초인종을 누르면 불빛이 반짝이는 조명을 달아주었다”며 “관심은 숨고 싶고 닫히는 마음을 열어줘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힘을 준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성당 가운데로 악셀로드 신부의 팔을 감고 나오던 박 신부가 “신랑 신부가 행진하는 것 같지 않으냐”고 수화로 말하자 악셀로드 신부가 파안대소를 한다. 진짜 장애란 관심을 거두고 친교와 사랑을 거부하는 마음이란 걸 두 신부의 미소가 전해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