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에서 불안의 원인과 극복안을 제시하는 이무석 교수
이무석 교수가 불안 극복을 위해 제시한 인터뷰를 토대로 정리한,
‘내가 나를 대하는 십계명’
1.인생 자체가 예측하기 어렵고, 불안하다는 것을 인정하라.
2.내가 처한 현실을 받아들여라. 그것이 정신건강의 징표다.
3.부모가 준 세발 자전거는 버리고 나 자신의 삶을 살라
4.지상에서 유일무이한 나의 가치를 긍정해줘라.
5.용기를 내 친구와 가족에게 속을 털어놓아라.
6.완벽하지않다고 다그치지 말고, ‘괜찮다’고 말해주라.
7.남과 비교하지 마라, 그에겐 그의 인생이 나에겐 나의 인생이 있다.
8.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믿으라, 절대자의 사랑을 믿는 것도 좋다.
9.바닥으로 떨어지면 공처럼 튀어올라라. 삶은 진행형이다.
10.타인의 박수를 받으려하지말고, 내 내면의 박수를 받아라.
이무석 교수가 상담실에서 정신치료를 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지난달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에서 40대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사건이 발행했다. 이 남자는 2년 전 실직한 뒤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하다 2억7천만원을 날렸다. 그러나 여전히 10억원대의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극빈자로서 자살한 송파세모녀와는 처지가 다르다. 현재 가진 것만도 빈곤층에겐 부러움을 살만한 정도기에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더욱 충격적이다.
빈곤층과 무직자, 실직자, 청년실업자 등이 느끼는 불안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거나, 비싼 아파트에 살고,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닌다고 불안이 없을까. 그렇지않다. 너나 할 것 없이 시달리는 ‘불안장애’의 원인과 치유책을 알아보기 위해 정신분석의 대가를 찾았다.
이무석(70) 전 전남대 의대 교수다.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지낸 이 교수는 <정신분석에로의 초대>,<성격 아는만큼 자유로워진다>,<30년만의 휴식>,<자존감> 등 베스트셀러를 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신분석가다. 지난달 30일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 광주천변에 있는 드맹빌딩 3층 ‘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에서 이 교수가 고요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무장을 해제해도 안심할 수 있게하는 미소다. 그래서 친밀하게 내면여행을 동행하며 ‘불안’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인생 자체가 불안한 것이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을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 이 교수의 조언은 ‘불안한 인생을 받아들여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면서 “정신분석학에서 볼 때, 불안에도 ‘정상적인 불안’과 ‘병적인 불안’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정상적인 불안’은 불안할 만한 일이 있어서 불안해 하는 것이다. 가령 돈은 없고 아내는 병 들고, 먹을 것조차 없다면 걱정되고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정상적인 불안’에 해당한다. 이런 불안이 있을 때는 그에 따른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병적인 불안’은 자기 마음에서 불안을 만들어낸다. 실제는 나뭇잎이 떨어졌는데, 마음 속에선 태풍이 부는 식이다. ‘공황장애’같은 것이 ‘병적인 불안’에 해당된다.”
이런 ‘병적인 불안’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 교수는 “‘병적인 불안’의 원인은 무의식에 숨어 의식 위로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원인을 자신도 잘 알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그 원인은 열등감에서 비롯되고, 열등감은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고, 이는 유년기의 상처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삶에서 뜻하지않는 실패를 경험했을 때, 내면에서 두가지 소리가 올라온다. 하나는 ‘괜찮아’라는 자기 위로다. 다른 하나는 ‘그럴줄 알았다’는 자기 비난이다. 똑같은 일을 당해도 자기 위로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이는 가혹하게 자기 비난을 한다. 자기 비난이 강한 사람들이 불안을 더 심하게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쉽다.”
자기 위로와 자기 비난의 분깃점이 이미 유년시절에 결정된다는 게 정신분석의 관점이다. 이 교수는 “어린시절 실수 했을 때 합리적인 꾸중을 들은 아이는 커서 자기 비난도 합리적인데, 비합리적인 대우를 받은 아이는 자기 비난의 소리도 비합리적이고 독선적이다”고 말한다.
“초등학생이 접시를 깨뜨렸을때 합리적인 엄마라면 ‘에휴. 조심 좀 하지’ 정도로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엄마가 ‘집안 말아먹을 놈’이라고 욕하며 매를 때리며 ‘그릇이 1만5천원이니 한끼에 5천원씩 세끼를 굶어라’고 윽박지르는 식의 경험이 계속 쌓이면 조그만 잘못을 해도 큰 처벌이 올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죄책감을 많이 느껴 처벌 불안에 시달려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다. 늘 비난을 두려워해 ‘책임이 남들 때문’이라고 회피하려 하는데, 실은 남들이 자신을 비난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너는 망할거야’,‘거지가 되고 말거야’,‘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거야’라고 자신을 비난하는 자학적인 성격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자학적인 성격이 되면, 시험도 합격하고 승진도 하고 잘 나갈 때는 잘 모르지만, 구조조정으로 실직을 당하거나 아이가 대학시험에 떨어지거나 부인이 유방암에 걸리는 등 스트레스 상황을 맞으면 곧바로 내면에서 ‘올 것이 왔구나’,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자기 비난’으로 지진이라도 난 것같은 충격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유아기 때 형성된 이런 성격이 무의식을 통해 평생을 지배한다면 두려운 일이다. 이 교수는 유아기의 ‘엄마 거울’이 결정적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벙긋 웃으면 활짝 웃어주고 안아줄 때 아이가 ‘아, 나는 예쁜 아이구나’,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자존감이 생기는데, 품을 파고들어도 밀치는 외면을 경험하면 ‘엄마는 나를 싫어하는구나’, ‘선생님들도 나를 싫어할거야’라며 자존감이 낮아진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는 ‘자기 이미지’가 없었는데, 어려서 처음 대한 ‘엄마 거울’ 통해 이런 ‘자기 이미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처 기억하지 못해도 어릴 때 이런 경험이 무의식에 입력돼 ‘자기한테 자기가 주는 점수’인 자존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도 3분2가량은 치유가 된다. ‘엄마 거울’은 자기를 찌그러지게 보여줬다하더라도, 아빠나 선생님들이 가치를 긍정해지고 소중하게 여겨주면 ‘자기 이미지’의 수정이 돼 자존감을 회복한다.”
서재의 이무석 교수. 서재에 정신분석의 원조인 프로이드의 사진이 놓여있다.
광주천변 드맹빌딩 1층에서 부인 문광자씨와 화가인 아들이 그린 대형 그림 앞에 선 이무석 교수. 드맹빌딩 3층에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가 있고, 1층엔 패션디자이너인 문씨의 매장이 있다.
문제는 회복하지 못한 나머지 3분의1이다. 이들은 세살 때 어머니가 자신에게 준 세발자전거를 30살, 40살이 되어서도 타고다니고 살아가며 고통받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들을 위한 치유의 길로 ‘자기 고백’과 ‘자기 위로’를 제시한다.
“감정들은 언어로 표현되면 밖으로 나간다. 나쁜 감정들은 고백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고, 위로의 말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치유될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그래서 속마음을 털어놓는게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은 열등감 때문에 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가 나같은 사람을 좋아하겠어’, ‘친구들도 뒤에 내 흉을 볼꺼야’라는 식으로 ‘자기 비난’때문에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치유의 기회도 갖지 못한다. 그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이 때 가족이나 친구들이 작은 말 한마디라도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게 필요하다. 신앙을 통해 절대의 사랑을 통해 자기 가치를 발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교수는 삶의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게 ‘탄력성’이라고 한다. 탄력성은 공을 놓았을 때 바닥에서 다시 튀어오르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바닥에 떨어뜨린 돌처럼 바닥에 그대로 나뒤구는 게 아니라 공처럼 튀어오를 수 있어야 역경을 버틸 수 있다"며 “자존감이 높을수록 ‘타인들이 내게 호감을 가질거야’라는 믿음이 커 탄력성이 좋다”고 설명한다.
외적으로 스펙이 그럴듯하고, 직위가 높고, 돈이 많으면 탄력성이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게 이 교수의 말이다.
“나도 처음 정신과의사를 할 때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고 재산도 없고, 신체 불구자들이 자존감이 낮은줄 알았다. 또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고 성형수술을 하면 자존감이 회복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간판으로 상처를 가릴 수는 있지만, 내적인 열등감은 그대로 갖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은 지나치게 경쟁과 투쟁의 사회가 되어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중심적인 자기애적 사회로 변하면서 열등감을 가져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아픈 진단을 내놓았다.
“세살 때 세발 자전거를 버리고, 엄마로도 아빠로도 살지 않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것인데, 한국에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보다는, 모두가 타인의 박수를 받는 스타로 살아가길 바란다. 일본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한국 엄마들은 ‘지지 마라’고 가르친다. 인간 도리를 지키는 삶에 박수를 쳐주지않고, 수능점수만 높으면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행동까지도 합리화해준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대들고, 말은 못하지만 자식한테 맞고사는 엄마가 많은 것이다. 스펙을 쌓고, 고위직에 오른 이들조차 언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자기보다 성공한 사람 앞에선 초라해하고 열등감에 휩싸여 모두가 심리적 패배감 속에 살아간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백점 아니면 빵점’이라는 식의 완벽주의를 버리라고 현실적인 처방을 전한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고 자신을 다그치지 마라. 현실을 수용해줘야한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그에겐 그의 인생이 있고, 나에겐 나의 인생이 있는 것이다. 그에겐 그의 현실이 있고, 나에겐 나의 현실이 있음을 받아들여라. 인생은 공사중이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일류대학을 안나왔어도, 가난했어도, 쌍가풀 수술 안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라. 죽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죽지않고 나름 최선을 다하며 여기까지 오지않았느냐고 자신을 위로해 주라.”
광주/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