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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전두환을 사랑하라던 장일순

등록 2018-07-09 19:22

風雨豈能籠淸香(풍우기능농청향). 서울 종로구 옥인동 길담서원 한뼘미술관에 전시중인 ‘무위당장일순서화전’에 걸린 서화다. ‘비바람이 어찌 맑은 향기를 가둘 수 있으리’란 뜻의 이 서화는 구법모(57) ‘무위당사람들’ 이사가 결혼할 때 주례였던 장일순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번 전시회엔 구 이사가 소장한 장일순의 서화 10 점이 걸려있다. 

 장일순(1924~94)은 가톨릭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와 함께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했고, 이후 한살림을 설립하며 생명평화운동을 개척했던 선구자였다. 그는 저작을 남기지않았고, 오직 서화만을 남겼다. ‘나는 미쳐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무엇을 이루려하지마라’ 등의 서화엔 장일순의 풍모가 생생히 살아있다. 20살때 장일순을 만나 스승으로 모셨던 애제자이자 서화 소장자 구 이사를 만났다.

 구이사는 서울에서 고교 1학년때부터 흥사단 활동을 하며 함석헌 등의 강의를 들고 일찍부터 투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년 재수 뒤 연세대원주캠퍼스 영문과에 진학했다. 구 이사는 원주지역 민주화운동가들의 단골집이던 ‘천하태평’이란 식당에서 장일순, 이창복, 김지하, 김민기 등을 통해 민주화의 세례를 받았다. 가톨릭 모태신앙인 그는 대학2학년 뒤 가톨릭원주교구대학생연합회를 조직했고, 1984년 첫직선제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돼 시위를 주동했다. 당시 다른 시위주동자들처럼 그도 응당 감옥행을 예비한 몸이었지만 그 때마다 방패막이 되어준 것은 지주교와 장일순이었다. 그가 민주화운동청년연합으로부터 입수한 ‘광주사태일지’를 터트리겠다고 나서자, 지 주교는 ‘내가 해야지 아무나 할 수 없는 건’이라며 직접 폭로했다. 또 구법모의 구속을 막기 위해 관계당국자들을 주교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기도 했다. 

 장일순이 가톨릭 세례교인이었지만, 동학의 2대 교조 해월 최시형의 생명사상을 사숙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구 이사도 장일순이 밥과 소금을 앞에 놓고 여러명이 맞절을 하도록 하며 ‘밥이야말로 우주의 조화로운 결정체이고,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했던 것을 회고한다. 장일순이 ‘선천은 폭력이 주도했지만 후천은 상생의 시대’라고 한 것도 해월의 생명사상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구 이사는 지금껏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장일순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장일순은 ‘선사(禪師)’다. 구법모가 처음 원주에 간 스무살 때 장일순을 처음 만나 던진 질문은 “원주가 민주화의 성지라고해서 왔는데, 왜 이리 조용하냐”는 거였다. 그런데 장일순의 일성은 “전두환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구데타와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분기탱천해 있던 열혈청년의 귀를 의심치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장일순은 “만약 네가 전두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것 같니?”라고 물었다. 그리고 장일순이 말했다. "거울 앞에서 죽도록 뛰어봐라. 네 모습이 제대로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 그것이 장일순이 구법모에게 준 첫 화두였다. 그리고 장일순이 그에게 읽어보라고 처음으로 권한 책은 사회과학서적이 아니라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이었다. 그런 다음엔 권한 책을 읽어보았는지 반드시 물었다. 그는 운동권 친구와 선후배들을 데려가곤 했으나 그들은 장일순의 선문답에 손사래를 저으며 두 번 다시 가려하지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석에 끌리듯 장일순을 찾곤했다. 의문 많고 질문 많던 청년이 찾아서 온종일 질문을 퍼부어도 장일순은 싫은 기색 한번 없이 답해주었다고 한다.

 “언젠가는 ‘비행기가 뜰려면 뭐가 있어야하느냐’고 물어요. ‘활주로가 있어야 하죠’라고 했더니, ‘요즘 사람들은 활주로가 너무 작아 날 수가 없다’고 해요. 그러며 ‘독재는 이제 곧 끝난다’며 ‘그 뒤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어요.” 장일순은 ‘조급해하지 말라’거나 ‘미래를 준비해야한다’는 답 대신 그렇게 화두를 주었다고 한다. 구 이사는 “그런 화두로 발심이 돼 대학졸업 뒤 서울 방배동에 탄허불교문화재단이 설립한 삼일선원 등에서 불교공부를 하며 지금까지도 삶과 세상 문제의 해법을 불교와 선(禪)에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구 이사는 “전시된 서화에도 선사로서 장일순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고 했다. 서화 중엔 서산대사가 ‘만국의 도성들이 개미집에 불과하다’고 한 시가 담겨있다. 그는 장일순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땀을 흘리며 서화에 집중했는지 잘 알고 있다. 1988년 인사동 민에서 장일순서화전을 할 때는 3김씨가 다 올만큼 성황이었다고 한다. 장일순은 원주의 유지라고 부고가 많이 왔는데 부의금도 못내고 예만 표했을만큼 생계가 곤란했는데도 서화전에서 모인 수천만원을 한푼도 안빼고 한살림에 다 내놨다. 이것이 한살림 창립의 밑천이 됐다는 것이다. 또 민주화운동 구속자 가족들에게도 서화들을 써줘서 이를 팔아 쓰도록 했다고 한다.

 “박정희의 5·16 구데타를 비판했다가 사회안전법에 걸려 평생 원주지역을 벗어나지 못한채 살아야했던 선생님이 그린 난은 단순한 난이 아니지요. 그 때는 어려서 그렇게 귀한 것을 주셔도 그 가치를 몰랐어요.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걸 보면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나요." 그가 운동권 동지들과 달리 에스케이와 케이티 상무 등으로 사업 일선에서 일하면서도 이한열기념사업회, 장준하기념사업회,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 이사로 힘을 보태온 것은 말과 삶이 관통했던 장일순을 떠날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서화전은 18일까지 열린다. 14일 오후 3시 길담서원에서 구 이사가 ‘소장자와 대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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