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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인간 이승혁을 못잊는 까닭은

등록 2019-10-15 18:26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것이 사람의 길일까. 무엇이 아름다운 길일까. 어둠의 세상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주려는 듯 지난 12일 충북 괴산 칠성면 사은리 여우골엔 유난히 밝은 달이 떠올랐다. 이날 여우숲엔 ‘더불어이승혁’ 회원 20여명이 이승혁(1961~2015) 4주기를 맞아 그가 남긴 책 1천여권을 가져와 ‘이승혁문고’를 열었다. 이 모임엔 자식을 민주화 제단에 바친 고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씨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장남수 회장을 비롯한 유가협 회원 6명도 참석했다. 일반인에겐 낯설기만 한 이승혁이 대체 누구이기에.

이승혁은 신영복을 중심으로 모인 ‘더불어숲’을 만든 주역이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주)대우에 입사한 평범한 회사원이던 그는 1988년 서울역 앞 대우 본사 지하서점에서 신영복의 20년 옥중서신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대전교도소로 면회를 가 신영복을 만나고 사제의 연을 맺었다. 신영복이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엔 그와 지인들의 북한산 등반 모임, 목동파리공원 모임에 참석하다 2001년 대우건설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신영복과 함께하는 모임 더불어숲 가꾸기에 전념했다. 독신으로 살다 간 이승혁은 늘 자기보다 더 가난하고, 못 배우고, 힘들고, 고통받는 이들처럼 낮아져 함께했다. 지인들은 이를 ‘이승혁의 하방연대 정신’이라고 했다.

이승혁은 더불어숲에서 함께 헌신했던 후배 김우종이 2011년 아내와 두 아이를 남기고 세상을 뜨자 ‘더불어김우종’을 꾸려 후배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애썼다. 이날도 김우종의 아내 김나경씨와 아들 지훈군이 함께했다. 이승혁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신영복의 글귀를 늘 술자리에서 읊조리곤 했다. 이를 기억하는 지인들도 이승혁이 2015년 2월 암 진단을 받자 ‘이승혁과 함께 맞는 비’를 결성했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더불어이승혁을 꾸렸다.

그러나 더불어숲에서 그와 함께한 이들 중에도 그가 남모르게 민주화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까지 알뜰살뜰 챙겼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더불어이승혁의 정한진 대표는 “승혁 형이 떠난 후 어느 봄날 그가 너무도 보고 싶어 그의 유해를 안치한 모란공원 납골추모당을 찾았을 때, 역시 승혁 형이 그리워 찾아온 승혁 형의 친구이자 인권운동가인 박래군 형을 우연히 조우해 유가협 회원들을 남모르게 챙긴 승혁 형의 활동을 들으며 래군 형을 껴안고 한동안 오열했다”고 했다. 배은심씨는 “승혁 선생은 ‘(전태일 모친) 이소선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셨고, 농성하는 천막에도 와서 늘 밤까지 함께하고 어깨를 주물러주고, 사진을 찍어 작은 액자에 담아 선물로 주곤 했다”면서 “몸이 그렇게 아픈지도 모르고, 우리는 ‘예쁜 사람아, 언제 국수 먹여줄랑가’라고 하면 빙긋이 웃기만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승혁의 어머니 박금희씨는 유가협 회원들의 회고와 위로를 들으며 “승혁이는 나와도 할 말, 못 할 말이 따로 없이 다 나누는 친구였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경남 밀양에서 이승혁문고의 책장을 만들어 온 김인석씨는 “멀리 지방에서 왔다고 밥을 사주고 챙겨주었던 승혁 형이 바쁘다고 못 만난다고 한 날은 언제나 유가협 어머니들을 도와야 하는 날이었다”고 회고했다. 최윤경씨는 “차가 없던 승혁 형은 종종 차를 빌려 달라고 해서 보면 유가협 어머니들을 태워줘야 할 때였고, 디지털카메라까지 빌려 가서 유가협 어머니들을 찍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승혁은 그런 헌신을 내색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오랜 지인인 서순환씨는 “승혁 형은 특별하지 않은, 공기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중국 칭화대에 (주)대우 사원으로 지역전문가 양성 1년 과정 연수를 간 이승혁과 마침 그 대학에서 유학하고 있던 김동영씨가 만나 인연을 맺었는데, 김씨는 “취업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만 꽉 차 있던 내게 승혁 형은 세상 보는 눈을 틔워주었다”며 “승혁 형은 더 진보적인 사람이 덜 진보적인 사람에게 더 양보하고 다가서야 한다는 하방연대의 삶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정명신씨는 “신영복 선생님과 승혁씨가 같은 점은, 회원들이 하나같이 두분이 자신에게 더 친절하고 각별하게 대해줬다고 느끼는 점”이라고 했다. 자기에게만 이승혁이 너무도 특별하게 대해줬다고 생각했던 지인들은 이승혁의 장례식장에서 이야기하던 중 “나한테도 그랬는데”라며 희한해했다고 한다. 버스 기사인 성경식씨는 “딸 돌 때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집과 공원에서 우리 가족 사진을 찍어주던 분이어서 우리 부부는 ‘우리가 헤어질 수 있어도 승혁 형과는 헤어질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며 “나는 누군가를 위해 온전히 하루를 쓴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부끄럽다”고 했다. 건설노동운동가인 이희씨는 “너희 부부는 노동운동하느라 아이를 못 챙기니 안타깝다”며 “아이 학습지까지 챙겨준 형”이라고 했다. 이런 지인들의 끝없는 이야기 잔치에 이기훈 여우숲인문학교장 등 여우숲 회원 20여명도 ‘살아 있는 인문학’을 1박2일로 경청하며 ‘인간의 길’을 생각했다. 신영복이 말한 ‘더불어숲’을 ‘하방연대’로 살아낸 이승혁에 대해 신영복의 죽마고우 이창렬은 ‘신영복이 없이도 이승혁은 있었겠지만, 이승혁이 없었다면 신영복과 더불어숲이 존재했겠냐. 영복이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한다. 신영복의 옥중 스승으로, 이문학회를 꾸려 동양학을 가르친 노촌 이구영의 외손자 이식열씨도 이날 함께했는데, 노촌은 ‘승혁군은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라 평했다고 한다.

이승혁은 <윌든>의 저자 데이비드 소로처럼 숲의 삶을 동경했다. 그러나 고통받는 약자들과 함께 비를 맞느라 숲에 오지 못한 그를 대신해 그가 남긴 책들이 여우숲살이를 시작했다. 2012년 여우숲을 연, <숲에게 길을 묻다>의 저자 김용규 '여우숲학교 오래된미래’ 교장은 “인간은 독식하고 욕심껏 상속하고 들판에서도 한 작물이 독식하기도 하지만, 숲은 크고 작은 생명들이 모두 공존 공생해 더불어 살아간다”며 “내 꽃을 피우면서도 결코 나 혼자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다른 생명을 일으켜 세우는 숲속 생명들과 같은 이승혁의 삶이야말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좋은 삶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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