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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민족고는 ‘분단’이다”

등록 2020-11-09 19:38수정 2020-11-10 09:23

[짬] 영천 은해사 회주 법타 스님

조계종 대종사 법타 스님은 지난 5일 인터뷰에서 10년 넘게 방북길이 막혀 있는 사이 굶주리고 있을 북녘 동포들과 연로한 원로 스님들의 안위를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조계종 대종사 법타 스님은 지난 5일 인터뷰에서 10년 넘게 방북길이 막혀 있는 사이 굶주리고 있을 북녘 동포들과 연로한 원로 스님들의 안위를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법타 스님은 1989년 평양축전 때 방북한 이래 30여년간 100여차례나 북한을 다녀왔다. 1992년엔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를 창립해 국수공장과 빵공장을 지어 굶주린 동포들을 도왔고, 지난해 2월엔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승려로서는 최초로 북한학 관련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가 최근 박사논문을 다듬어 ‘조선불교도연맹을 해부하다’란 부제를 단 <북한불교백서>(조계종출판사 펴냄)를 출간했다.

2017년부터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이자 경북 영천 은해사 회주인 ‘북한 박사’ 법타 스님을 지난 5일 서울 인사동 조계사 부근에서 만났다.

올봄 동국대 첫 승려 ‘북한학 박사’
학위논문 바탕 ‘북한불교백서’ 출간
‘조선불교도연맹을 해부하다’ 부제

1989년 평양축전부터 30여년 방북
굶주린 동포들에 빵공장·국수공장
“이명박정부 이후 길막혀 안타깝다”

법타 스님이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논문을 풀어쓴 책 ‘북한불교 백서’의 표지. 사진 조계종출판사 제공
법타 스님이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논문을 풀어쓴 책 ‘북한불교 백서’의 표지. 사진 조계종출판사 제공

“한민족의 민족고(苦·고통)는 분단이다. 민족이 갈라진 분단의 해결이 바로 민족고의 해결이다.” 그는 그런데도 불교계에서 행동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자신이 나섰다고 했다. 북쪽에도 전통사찰들은 산중에만 남아 있어서 시골로 찾아 다니다보니, 그는 누구보다 북녘 사람들의 배고픈 속사정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1997년 황해남도에 금강국수공장을 지었고, 2006년엔 평양에 금강산빵공장을 열었다. 금강국수공장에선 인천에서 남포로 보낸 밀가루로 하루 7700명분의 국수를 생산했다. 2천여만명 동포들이 하루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천안함 피폭 사건, 연평해전이 줄지어 터지고 2010년 5·24조처로 남북교류가 막히는 바람에 지금은 국수공장과 빵공장의 가동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사상과 종교가 무엇이건간에 인간은 우선 먹어야 산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그나마 주던 걸 끊으면 굶어죽는 수 밖에 없다. 이명박 같은 대통령이 나왔다는 게 대한민국의 불행이고, 민족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1억 달러어치만 보내주면 굶어 죽지는 않을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당에서 주던 배급이 끊긴 이후 그나마 밀무역으로 버티고 있던 북한 국경지역 주민들이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내몰려 있을 것”이라며 굶주림을 걱정했다. “북이나 남이나 위정자들이 자기 정권을 보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당리당략으로 접근할 뿐, 진정으로 국민의 안위와 민족의 미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덧붙였다. 북한 정권도 미사일 한 번만 덜 쏘면 밥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는데도 무기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주민들의 허리띠를 조이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김정은 정권이 문재인 정부를 무시한 채 미국하고만 대화하려 하지만, 미국은 오직 동아시아 지배 역학 관계만 계산할 뿐, 그나마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는 건 남쪽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법타 스님이 더욱 안타까워하는 것은 북녘의 존경스러운 큰스님들이 그사이 열반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북에서 묘향산 보현사가 가장 큰 절인데, 주지 최원오 스님은 해방 전 출가한 원로 스님으로 대화를 나눌 때마다 마음에 깊은 인상이 남았다. 지금쯤 돌아가셨을 것 같다.”

그가 파악하기로, 북녘엔 해방 전 500곳을 헤아렸던 사찰이 지금은 65곳만 남아 있다. 기독교의 교회는 해방 전 2천개가 넘었으나 공산화 이후 씨가 거의 마른 데 비해 사찰은 그나마 여건이 나은 편이다. 이들 사찰엔 300여명의 승려가 있는데, 현대 출가자들은 대부분 6개월 과정의 불교강습소 출신이지만, 최원오 스님이나 박태화 전 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 등 해방 전 출가자들은 전통 불교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김일성의 가계가 크리스찬으로 이어져 왔음에도, 정권 수립 이래 기독교를 ‘미제의 앞잡이’라며 탄압했다. 그나마 불교는 명맥을 잇고 있지만, 종교를 부정하는 체제의 특성상 인간을 위로하고 심성을 맑게 하는 종교의 고유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그는 김일성 주석도 두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1992년 미국 유학시절 현지 동포들과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생일 리셉션장에 초청 받은 적이 있다. 악수를 했는데 김일성의 손이 생각보다 너무 부드러워 놀랐다.” 그는 또 “그때 남쪽에선 김정일의 권력 이양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현장에서 보니, 김정일이 선글라스를 끼고 4명의 경호원에 둘러싸여 현장을 장악하며 일일이 진두지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에도 북녘 동포에 대한 관심을 한시도 놓지 못하고 있는 그는 북한 이탈 주민들과 결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내려온 이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굶주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탈북했다. 중국과 동남아를 거치면서 극심한 인권 유린을 당한 이들도 많다. 중국에서 팔려다니며 신음하고 있는 탈북여성들도 있다. 죽을 고비를 넘어 왔는데, 남쪽 사람들은 ‘북에서 사람고기 먹지 않았느냐’ 같은 속된 말로 고통을 가중시킨다. 이주노동자들은 돌아갈 데라도 있지만 이들은 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다. 3만5천명의 탈북민도 못 끌어안으면 어떻게 2천만 북녘 동포와 통일을 할 수 있겠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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