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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미성숙이란 터널을 통과해 성숙되어간다

등록 2021-08-19 07:43수정 2021-08-19 07:43

관옥 이현주 목사의 ‘정처없는나그네의가난한산책’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대리석을 연마하면 속 무늬가 더욱 두렷해진다. 연마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무엇이 보인다는 얘기다. 사람을 대리석처럼 연마할 수 있나? 자기를 고운 사포로 갈고 닦아서 지금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는 앳된 새댁을 본다. 아는 누구 같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하다. 예쁘게 반짝이던 앞니가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사람을 겉모양으로만 보면 서로 다르다. 하지만 피부 한 겹만 벗겨도 이 사람과 저 사람을 구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바울로가 사람 몸을 하느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집이라 하고, 달라이 라마가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자기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사람의 겉모양이 아니라 그 속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겉모습에 걸리지 말고 눈길을 그 너머 또는 그 속으로 돌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봄. 여기에서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을 보는 눈이 열릴 수 있겠다. “천지가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한 몸”이라는 수상한 말이 그래서 있는 거다. 어제 읽은 바이런 케이티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무엇이 오면 그게 그녀가 바라는 것이고 무엇이 가면 그게 그녀가 바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모든 것으로부터 초탈(超脫)해 있다. 모든 게 그녀에게는 괜찮다. 그것이 가고 올 때 그녀는 그것을 사랑한다. 그녀는 그 모든 것과 하나다(She is one with it all).” 여기서 ‘그녀’는 노자(老子)의 성인(聖人)이다. 도(道)를 깨쳐 만물과 하나 된 사람! 도둑을 보고도 “나여!”라고 부르는 사람!

자신의 호인 관옥을 따 만들어진, 순천사랑어린학교 관옥나무도서관에서 책을 살펴보고있는 이현주 목사. 사진 조현 기자
자신의 호인 관옥을 따 만들어진, 순천사랑어린학교 관옥나무도서관에서 책을 살펴보고있는 이현주 목사. 사진 조현 기자

◇재소자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하나씩 자루 속에서 당구알만한 공을 꺼낸다. 공에 숫자가 적혀있다. 1이 와서 공을 꺼낸다. 숫자 3이 적혀있다. 판사가 말한다, 너는 석 달 뒤에 석방이다. 1이 담담하게 물러난다. 2가 공을 꺼낸다. 2가 적혀있다. 판사가 말한다, 너는 이태 더 살아야 한다. 2가 풀이 죽어 물러난다. 3이 공을 꺼낸다. 3이 적혀있다. 판사가 말한다, 너는 삼십년 뒤에 석방이다. 3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밝은 얼굴로 물러난다. 4가 공을 꺼낸다. 1이 적혀있다. 판사가 말한다, 너는 한평생 살아야 한다. 4가 좋아서 박수치며 물러난다. 누가 말한다, 불공평하다, 어째서 같은 3인데 누구는 석 달이고 누구는 삼십년인가? 누가 답한다, 세상에 불공평은 없다, 불공평이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평한 무엇이 있다면 누구도 자기한테 닥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득 꿈에서 깨어난다. 알겠다, 지구별은 감옥이다. 인간들이 시간과 공간과 중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혀 사는 곳이다. 재소자들은 주어지는 현실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자유가 있다. 자기에게 닥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거절할 수 없는 그것을 징징거리고 투덜거리며 받아들일지 아니면 박수치며 기꺼이 받아들일지 그도 아니면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일지, 그 방법을 선택할 자유다. 자유 하나가 더 있다. 일단 자기한테서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자유다. 그런데, 그 자유를 제대로 찾아서 행사하는 사람이 참으로 드문 세상이구나.

◇뉴스 시간에 초심에서 45년을 언도받은 죄수의 형기가 재심에서 2년 줄었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본다. 가슴이 저리듯 아프다. 화도 난다. 그러고 있는데 고맙게도 두 분이 속삭여준다. 하나는 사막의 교부 안토니우스, 다른 하나는 친구 신부 리처드 로어. 어제 만보가 주고 간, ‘사막 교부들의 말씀’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이다. “안토니우스 성자가 주님께 여쭈었다. 주님, 어떤 사람은 어려서 죽고 어떤 사람은 나이 들어 질질 끌면서 죽지 않으니 무슨 연고입니까? 또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누구는 나쁜 짓을 하는데도 돈이 많고 누구는 착하게 사는데도 가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때 이런 답이 들려왔다. 안토니, 네 일에만 신경 써라. 모든 일이 하느님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것들에 대하여 안다 한들 그것은 너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리처드 신부도 말한다, “그 어떤 사람, 사물, 집단 또는 기구들에 대하여도 험담하지 마라. 그것은 너를 더 낮은 수준의 에고로 계속 머물러있게 하고, 그러면서 자기가 우월하다고 착각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가장 흔한 잘못이다. 하지만 너는 성숙치 못한 조직이나 기구들을 피하고 말없이 그것들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 오직 무엇에 반대하느라고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만 마라. 세상에 필요한 것은 무엇에 대한 부정적 비판보다 긍정적 에너지다.”

순천사랑어린학교 이현주 목사와 김민해 목사가 공동체원들과 함께하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순천사랑어린학교 이현주 목사와 김민해 목사가 공동체원들과 함께하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사랑어린마을인생학교 마음공부. “조바심이 사라지지 않을 때는 어떡하나요?” 조바심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을까 해서 생기는 마음이다. 마음이 엉뚱한 데 가 있어서 그런 조바심이 드는 거야. 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지금 여기로 불러와라. 우선은 그렇게 해서 괜한 일로 마음 고생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게다. “신기하게도 비오는 날은 멍을 때리게 돼요. 할아버지도 그런가요?” 아니, 할아버지는 비가 오거나 말거나 멍을 때리지는 않는다. 아니, 그러려고 하지. 멍 때리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얼이 빠진 건데 어쩌다가 일부러 마음먹고 한두 번 해보는 건 괜찮겠다만 자주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뭐든지 자주하면 버릇이 되거든. 비오는 날 얼빠지는 게 버릇으로 되면 곤란하지 않겠니? “단순 소박한 삶에 대하여 알려주세요.” 그렇게 살고 싶다는 거냐? 그거 참 좋은 소식이다. 그래, 단순 소박한 삶이야말로 옛 스승들이 적극 권장한 삶의 방식이지. 그게 어떤 건지는 사는 동안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놓지 않으면 저절로 알게 될 거다.

◇아이 모양을 한 종교가 사람(어른)들에게 환희를 안겨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큼의 환멸을 맛보여준다. 둘이 처음 만날 때의 눈부신 환희는 햇살 쨍쨍, 언제부턴가 스멀스멀 시작된 환멸은 찬바람 씽씽. 이게 뭔가? 아, 알겠다, 종교든 사람이든 미숙한 것들이 성숙으로 가는 길을 어김없이 걷고 있는 거다. 미성숙이라는 터널을 마침내 통과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를 수 없는 경지가 인간 성숙이다. 사람의 스펙트럼은 실로 엄청난 것. 위로는 천사보다 높은 사람이 있고 아래로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있다. 이것들을 고루 섭렵하며 무수한 “그렇다”와 “아니다”를 경험하고 초월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없는 큰 “그렇다”의 하늘나라다. (이 생각을 언제 했던가?) “인생의 목적은 생명의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르고 가장 깊은 자리에 내려가 인간의 지평을 넓히고 인생의 모든 영역을 통과하여 자기를 잃어버리고 마침내 자기를 찾는 데서 완성된다.”(하즈라트 이나야트)

이현주 목사/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선생님.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만드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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