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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삶의 고백이 가져온 황홀한 만남

등록 2021-09-01 00:35수정 2021-09-02 09:41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만남을 갈망한다. 모두가 애타게 진정한 만남을 갈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잘 만날 줄 모른다. 충만한 만남의 경험도 부족한데다가 무엇이 좋은 만남인지 식별할 줄도 모른다. 게다가 만남에 서툴기도 하다. 서로 연결되면 이유도 없이 상처를 주고받는다. 가해자도 없는데 스스로 상처를 입기조차 한다. 과연 진정한 만남이란 어떤 만남일까.

서울 중랑구립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책 읽고 글 쓰는 프로그램’에서였다. 한 여성이 자신이 쓴 글을 읽기 시작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읽고 공부한, 지난 모임의 후기로 쓴 짧은 글이다. 그는 글을 읽다가 한 지점에서 잠시 멈칫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사연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였다. 다시 읽어나가다가 오래 멈추었다. 그는 울먹이고 있었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여기저기서 여럿이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온라인 강좌였지만, 우리는 함께 무언가를 경험했다. 낭송을 끝낸 후 잠시 침묵이 흘렀고, 20명이 넘는 참석자들은 고요히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 시간의 감동이 그날 밤까지 온몸에 잔향을 풍겼다. 나는 그 경험을 며칠간 화두로 삼았다. 모두가 함께 체험한 이 감동의 정체는 무엇인가? 나는 이를 ‘만남의 황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황홀은 결코 감각적인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예측할 수 없이 찾아왔다. 그 황홀은 깊은 만남의 순간에 솟구치는 기쁨과 공감을 함께 느끼는 것이었다. 스피노자가 말한 기쁨의 정서란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체와 신체가 만날 때 그 사이에서 새로운 기운과 정서가 뿜어져 나온다고 했다. 그 공부와 만남 현장에서 긍정적 정서(affect)가 생성되어 함께 감동과 기쁨을 경험한 것이었다.

자기 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힘이 있다. 만남이란 한 사람의 스토리와 다른 사람의 스토리가 만나는 사건과 다르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스토리를 말해야 한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말하는 자신이 치유되고 아울러 다른 사람과 정신적으로 깊이 연결되는 기적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독일의 철학자 페터 비에리는 <자기 결정>이란 책에서 자기 자신의 삶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일은 강력한 힘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기억이 치유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 결정의 힘이 강화된다고 한다.

자기 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일종의 고백이다. 은밀한 이야기나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이야기만 고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모든 이야기가 고백적이다.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만이 아니다. 자기 삶의 이야기와 생각을 글로 쓰는 일, 문학 및 예술 작품에 자기 자신을 담는 일, 함께 수행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삶을 공유하는 일 모두가 고백적 만남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일은 공감의 경험이다. 가면을 벗고 역할극을 내던지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일이다. 서로를 열어야 한다. 만남의 황홀은 바로 거기서 일어난다. 서로가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바로 거기서.

황산/인문학연구자, 인문창작공동체 아트앤북 대표

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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