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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애초에 타인이란건 없다

등록 2021-11-10 15:59수정 2021-11-10 17:16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검붉은 갈색 알밤이 지천으로 깔린 언덕에서 밤나무 한 그루로 얼마의 돈을 벌어들이는지 계산하고 계산하다가 깨어난다. 깨어나 오줌을 누는데 한 생각이 떠오른다, “열매를 계산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열매에서 씨를 보지 못하면 인생이 허망해진다. 먹으면 바로 고픈 것이 사람의 배인 까닭이다. 먹는 것은 조금도 그릇됨이 아니로되 먹으면서 감동하지 않는 것은 조물주를 모독하는 짓이다.” 묻는다, “어째서 그러한가?” 답한다, “씨와 열매는 같은 모양이지만 열매는 하늘에 있어서 눈에 보이고 씨는 땅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씨가 보이는 열매로 되는 데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만 열매가 씨로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 없다. 설날이 섣달그믐으로 되는 데는 365일이 걸리지만 섣달그믐이 설날로 되는 데는 눈 깜박할 짬도 없다. 보이는 땅에서 보이지 않는 하늘을 보는 눈에 복이 있느니, 그가 하늘나라 백성이기 때문이다.” 아아, 보이는 것들에 눈길이 막히지 않고 그 뒤를 볼 수 있기를! 순간마다 조물주를 기억하여 모든 날이 감사로 충만하기를! 그렇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하늘에 있지 않고 땅에 있다. 먹으면 열매고 먹히면 씨다. 오, 한님, 제가 당신을 먹고 산 세월이 길었습니다. 언제고 때 되어 당신께 먹힐 그날을 기다리면서… “네가 네 이웃한테 먹히는 바로 그 순간이 내가 너를 먹는 순간이다! 네가 말하는 ‘그날’은 저기 어디쯤에서 오고 있는 날이 아니라 지금 여기 코앞에 있는 날이다. 하늘나라가 네 안에 있다. 날마다 순간마다 먹으면서 먹혀라!” 아멘.

#대통령 선거에 관심 있는 사람들 모임에서 노래 한곡 부르고 말씀 한마디 하란다. 윤극영의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부르고 이어서 말한다. “일흔 넘도록 살다보니 세상에 별의별 사람 다 있더라. 사람의 스펙트럼이 하도 커서 천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짐승만도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러니 누가 무슨 엉뚱하고 역겨운 짓을 하더라도 저게 사람이라서 저러지, 생각하고 그냥 봐줘라. 딴에는 자기 나름 진화의 길을 그 모양으로 걷고 있는 거다. 남들의 언행에 휘말리지 말고 부디 너나 잘해라. 스스로 물어라, 네가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진짜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 What you really do when you do what you do?” 언제 꿈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갈수록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 같다.

#구약 신명기나 민수기쯤 되는 어디를 읽는다. 아이들이 자라면 권투선수가 되는데 권투하기 전에 오이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한 개만 먹어야 한다. 두 개 세 개 먹으면 이길 수 없다. 웬 노파가 권투선수인 손자에게 오이를 하나만 준다. 아이가 더 먹겠다는데도 고집스럽게 하나만 먹인다. “여보, 이 딱한 할망구야, 성경의 오이를 먹는 오이로 아는 거요?” 노파가 묻는다, “그럼 오이가 오이지 뭐란 말이오?” 말해준다. “그게 남자 물건이오. 그러니까 오이를 먹는 건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 하는 거지. 권투란 고달픈 인생을 말하는 거고. 고달픈 인생 살려면 아이가 어른으로 되어야 하는데 그게 오이를 먹는 거란 말이오. 권투선수가 색을 너무 밝혀서야 힘을 쓸 수 있겠소? 그러기에 마누라는 하나만 두라는 그게 그 말이오. 당시에는 일부다처가 상식이었지. 그러니까 일반 상식을 좇지 말라는, 예수 말씀으로 하면, 많은 사람이 가는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는 그런 말이오.” 그래도 노파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바꿀 생각이 도무지 없다. 둬라. 스스로 망하겠다는데 누가 말릴 것이냐? 괜히 웅얼거리다가 눈을 뜨니 어느새 꿈 바깥이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말한다. “늙은이와 젊은이는 서로 다르다. 늙은이는 살아온 날이 길고 살아갈 날이 짧은데 젊은이는 살아온 날이 짧고 살아갈 날이 길다. 둘 다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 여기까지 말하다가 멈춘다. 누가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니다, 둘 다 장(長)이 있을 뿐 단(短)은 없는 것이다. 빛과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은 오직 빛이다. 누가 더 밝고 누가 덜 밝을 수는 있어도 누가 더 어둡고 누가 덜 어두울 수는 없는 것이다. 빛에는 촉수(燭數)가 있지만 어둠에는 그런 것 없다. 어둠의 짙고 옅음을 결정하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빛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더 밝은 사람 덜 밝은 사람은 있어도 더 어두운 사람 덜 어두운 사람은 없다. 무엇이 나쁘다는 말은 그것이 좋지 않거나 덜 좋다는 말이다. 없는 것 보지 말고 있는 것이나 보며 남은 세월 살아라. 세상이 손가락질해도 괜찮다.” 꿈이 벅차면 숨이 가쁘고 숨이 가쁘면 헐떡이며 꿈에서 깨어나는 법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진영을 갖추고 빙 둘러 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불붙은 방망이들이 각 진영으로 날아와서 떨어진다. 방망이마다 ‘네거티브’라는 찌지가 붙어있다. 어떤 건 연기만 나고 어떤 건 계속 탄다. 그렇게 투표일까지 불방망이들이 날아다니다가 투표가 마감되어 선관위 사람들이 각 후보의 방망이들 수를 세어본다. 쌓인 방망이들이 가장 많은 후보가 대통령이다. 누가 말한다. “보라, 가장 많은 하나가 덜 많은 여럿의 얼굴이고 덜 많은 여럿이 가장 많은 하나의 얼굴이다. 당선은 낙선들의 얼굴이고 낙선들은 당선의 얼굴이다. 그러므로 당선 곧 낙선, 낙선 곧 당선이다. 이 단순한 진실을 모르고 허둥대는 인간들이 참으로 많구나.”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든다.) 한 소년이 실종되었다. 부모를 비롯하여 많은 수색대원들이 공원을 뒤지고 야산 숲을 훑는다. 또 누가 속삭인다. “보라, 하나의 실종으로 여럿이 헤매지 않느냐? 한 아이의 실종이 수많은 어른의 실종이다. 하나가 모두요 모두가 하나니 이 진실을 깨치면 따로 무엇을 이루지 못할까 걱정하랴?” 옳다, 하나에서 하나 아닌 여럿을 보고 꽃에서 꽃 아닌 모든 것을 본다면 세상 누구를 탓하며 무엇을 원망할 것인가? “그동안 인생은 우리에게 충분한 자극을 주었다. 이제는 무의식으로라도 그것을 순화하여 통합시켜야 한다. 이 단계에서 침묵과 시(詩)가 우리의 더 자연스러운 음성, 더 아름다운 귀로 바뀐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고상한 상징으로 되어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사소한 사물들이 다른 모든 것의 중요한 은유들로 보이기 시작한다.”(리처드 로어). 그리하여 오직 대자대비(大慈大悲), 모든 것을 큰 자비 큰 슬픔으로 마주할 따름이다.

#동화작가 권정생이 살던 방의 절반쯤 되는 한 칸 방이 관옥 연구실이다. 우주와 인생의 도리를 연구하는 거창하고 미미한 방, 자그마한 출입구 하나에 창문은 보이지 않는다. 깔고 누울 요 한 장, 작은 책상 위 노트 몇 권이 유일한 가재기물이다. 방 자체가 유성처럼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다. 사방 어디에도 창문은 없지만 언제든지 밖을 볼 수 있다. 연구실 외벽에 수많은 센서들이 부착되어 있고 그것들이 포착하는 정보가 연구실 한쪽 둥근 벽에 실시간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좁은 방 안에 있지만 밖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 평도 못되는 좁은 방이 그대로 우주공간이다. 거기서 무얼 했는지, 하기는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 밥상에서 효선이 말한다, “생각해보면 죽을 때 나한테 있을 건 빵 굽는 오븐 하나에 작은 테이블 하나,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 대꾸한다, “사람이 산에 오를 때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발로 밟을 공간은 좁아지고 눈에 들어오는 세상은 넓어지는 법. 운신(運身)의 폭은 갈수록 좁아지고 마음의 품은 갈수록 넓어지는 여기에 사람답게 늙는 사람의 길이 있는 거라.”

#상대편 장군 이름은 한니발이었던 것 같은데 로마 장군 이름은 꿈에서 깨어나니 모르겠다. (주인공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힌트?) 두 번째 전쟁이 벌어졌는데 지난 번 전투에서 완승을 거둔 로마군이 이번에는 지리멸렬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패전이라는 말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완전 붕괴다. 먼젓번 전투에서 장군의 잘못으로 두 아들이 비명횡사 아깝게 죽은 데 앙심을 품은 부장(副將)이 적군과 내통하여 반역한 것이다. (로마군 쪽으로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들이 모두 로마군이 적군에 팔아넘긴 화살이었다.) 어수선히 끝나는 전투 마당에서 한 말씀 듣는다. “언제 어디서나 너의 가장 큰 적은 네 안에 있다. 문제도 답도 저기 어디 ‘누구’가 아니라 지금 여기 ‘너’한테 있기 때문이다. 절기종타멱(切忌從他覓)이라, 남한테서 찾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덧붙여 들리는 한마디 말씀. “남한테서 찾지 말라는 건 처음부터 남이라는 게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아멘.

#철제 침대를 만든다. 스프링 대신 얇은 철판으로 격자무늬를 만들어 침대 바닥을 채운다. 땜질하는데 팔팔 끓는 쇳물이 무늬 사이로 괴어든다. 땜질은 끝났지만 쇳물이 거품을 물고 바글거린다. 침대를 두 사람이 마주 들어 하나 둘 셋 신호와 함께 둘러엎는다. 쇳물이 줄줄 흘러 땅에 떨어진다. 됐다! 이제 매트리스 깔고 누우면 된다. 기억나는 꿈은 여기까지. 어김없이 한 말씀 들려주신다. 그 모든 작업을 누가 했느냐? 무엇이 쇳물을 아래로 끌어내렸느냐? 답한다, 중력(重力)이지요. 딩동댕, 맞다. 중력이다. 중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침대를 만들고 거기 눕게 하는 거다. 네 몸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지 중력의 작용인 것을 잊지 마라. 언제 어디서나 조물주를 기억하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중력이란 실로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지극히 작은 물건조차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저 큰 바다처럼…

이는 사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마음 놓고 떨어지라는,

네 무게를 참을성 있게 신뢰하라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21. 8. 29)

글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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