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킹의 발소리
“똑똑똑”
“옷걸이 있으면 주세요, 쓰레기 봉투도 가져갈 수 있어요”
초등학교 1-2학년 꼬마 아이들이 아침에 우리 집 거실 문을 두드립니다. 보통 저희 공동체에서는 세탁을 집에서 하지 않고 세탁실에 일주일에 한번씩 보내는데 셔츠를 걸어야 하는 옷걸이가 제때에 수거되지 않아 세탁실에서 애를 먹을 때가 많아 일주일에 한번씩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옷걸이를 수거하러 오더니 요즈음은 고맙게도 쓰레기까지 가져갑니다. 고사리만 손으로 옷걸이를 받아 밀대에 걸고 가는 꼬마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 아내는 멋진 자동차그림이 그려진 통에 사탕을 넣어 아이들이 집어가게 하니 어느 날은 아이들 선생님이 제게 와서 하는 말이 아이들이 우리 집 가는 걸 제일 좋아한다고 합니다. 역시 친구를 사귀려면 뭔가를 먹여야 하나 봅니다. ^^
아이들이 떠난 후 집 밖으로 나와 보니 딴 세상이 되었습니다. 간 밤에 진눈깨비 내리더니 날씨가 영하로 떨어져 진눈깨비가 나무에 달라 붙어 온 세상이 크리스탈 같은 보석이 달린 얼음 왕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10년 전에 나무가 얼음에 쌓여 몇 시간 동안 반짝 빛나던 것을 잠깐 경험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입니다. 아이스 킹(Ice King)의 손길이 온 세상을 터치한 것 만 같습니다.
햇빛이 떠올라 나무를 비추자 마치 크리스탈 보석 전등을 켜 놓은 듯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이 입이 쫙 벌어지면서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건 어느 궁전의 상틀리에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조물주의 솜씨에 머리 숙여 경배할 따름입니다.
얼음 보석에 쌓인 솔가지, 능금나무 가지, 화살촉 나무 등 하나 하나 감탄하며 구경을 하는데 언덕 위 자작나무는 가지가 다른 나무에 비해 연해서 그런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몸통이 땅을 닿을 듯 휘어 그 밑을 지나가는 것이 마치 크리스탈 보석으로 된 휘장을 지나가는 것 만 같아 “아이스 킹의 발자국”이란 노래가 절로 입에서 흥얼거립니다.
얼음 왕의 발소리 들려오네
숲속의 나무들이 떠네
손에는 얼음 활이 들려 있고 얼음 화살 허리에 찼네
토끼들과 들쥐들 문을 닫고
여우들과 곰들의 굴을 막고
강의 소리를 감싸네
얼음 왕이 궁으로 돌아오네
수정 같은 우박을 뿌리며
왕복에는 무도회 고드름이 보석같이 빛나고 있네
바람이 호수와 들판에 불면
고드름이 청아한 음악을 내며 부서지네
오전 내내 얼음 왕국으로 변해버린 온 세상에 제 마음도 동화속 나라에 있는 듯 들떠 있다가 오후에 유치원 아이들부터 모이는 미팅에 참석했습니다. 오늘 모임은 특별히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아이들이 “Sun Heart Question”에 답하는 날입니다. Sun Heart Question은 아이들이 하나님과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 이웃들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처음 독일 자르네츠에서 시작되었을 때에 에버하르트 아들 하인리히와 그의 친구들이 방과후에 자기들끼리 모여 ‘Sun Heart’라는 모임을 만들어 예수님을 어떻게 따를 것인지 이야기 나누고 여러가지 일들을 도모했는데 에버하르트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간섭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길을 찾도록 격려하곤 했습니다. 저희 공동체에서는 그 때의 전통을 이어받아 아이들이 어린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어릴 적 친구들과 농장 다락방에 몇 십년 된 오래된 물건도 갖다 놓고 동물 박제도 걸어 놓고 나무로 만든 멋진 의자를 만들어 놓고 초를 켜 친구들과 자주 모임을 가졌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을 사랑하겠냐는 질문 하나 하나에 자기 이름을 말하며 힘차게 대답하는 어린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 집에 옷걸이와 쓰레기를 가지로 온 아이들이 그곳에 모두 있네요. 벌써부터 이웃을 사랑하는 걸 실천하고 있으니 모든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자격이 충분히 있네요. 아이들의 순수하고 해맑은 얼굴과 대답에 제 마음도 어린 아이같이 되어지는 것 같은 정말 기쁜 미팅이었습니다.
날씨가 며칠 동안 계속 추워지자 얼음 왕국은 마술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며칠간 동화속 나라에 사는 것이 황홀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나무 가지가 얼음에 쌓여 있으면 그 무게로 인해 나뭇가지가 끊어져 나무가 쓰러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공동체 마을 곳곳에 부러진 나무들이 보이고 숲에 있는 나무들도 여러 나무들이 부러져 지나 가는 길이 위험하기도 합니다.
또한 전봇대와 전선이 얼어 붙어 전기가 들어 오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집에 발전기가 없는 경우에는 지금 같은 날씨에 집에서 난방없이 지낼 수가 없게 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얼스터 카운티는 이번 진눈깨비로 인해 피해를 크게 입어 44,000명의 사람들이 집을 나와 카운티에서 마련한 대피 장소로 가야 했습니다. 제가 사는 메이플릿지와 옆 동네의 우드크레스트, 마운트 공동체에서는 며칠째 샌드위치와 쿠키를 만들어 보내고 있는데 토요일 공동 식사 후 샌드위치 만들기 도와달라고 광고를 하자 공동체의 할아버지, 할머니, 청년들,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이웃에서 식사에 초대되어 온 손님들도 자원해서 남아 손을 보태니 그 많던 샌드위치가 순식간에 만들어져 이재민들을 위한 대피 장소로 보내졌습니다. 하루 빨리 전기가 들어와 모든 사람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길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 박성훈/부르더호프공동체 미국 메이플리치 거주 공동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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