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경구로 만나는 붓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에서든지 주체적 인간이 되어라. 그러면 그 자리가 모두 참되다.
임제선사(?~867)의 말씀이다. 수행자들에게 이 문장은 강한 매력이고 마력이다. ‘어느 때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아라, 흔들리지 말라, 주체적으로 살아라’는 메시지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향이고 지금 여기서 실현해야 할 참삶이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 인생의 자서전 쓰기>라는 주제로 암자에서 4박5일 공부모임을 했다. 이십대부터 칠십대까지 열두명이 모였다. 그런데 시작하는 날부터 사흘 동안 안개와 비와 바람이 멈추지를 않았다. 꼼짝없이 방안에서 강의, 토론, 글쓰기를 진행했다. 예정했던 산책과 등산을 포기해야만 했다. 부처님도 어찌하지 못하는 날씨 탓이었지만 내심 미안했다. 다행스럽게 나흘째 오후와 다음 날 오전은 쾌청했다. 그래도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날, 차담을 하면서 아쉬움을 전했다. 그런데 사람들 반응이 이구동성이었다. “스님, 무슨 말씀이세요. 전혀 아쉽거나 짜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언젠가 한번쯤은 외딴 곳에서 자발적 고립을 경험하고 싶었는데,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어요.” 오! 놀라운 역설과 반전! 일체유심조의 고수가 처처에 있다.
몸을 단정히 하고 구름과 안개비가 내리는 청산을 마주본다. 연잎 위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고요한 연못에 떨어지는 비는 음표를 만든다. 말을 줄이고 고요히 앉아보니 평소 일상이 분주하고 내면이 쓸데없이 시끄러웠음이 보인다. 늘 보던 것들이 새롭고 새삼스럽다. 그러니 이 어찌 좋은 시절이 아니냐고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이 내 마음에 꼭 들어맞아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찌할 것인가.”
글 법인 스님/실상사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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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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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채취하는 모습. 법인 스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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