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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써가며 인위적 성지 조성, 탈종교시대에 할 일인가

등록 2022-09-06 14:59수정 2022-09-06 15:09

[선사종가1080]
천진암이라 쓰고 천주당으로 읽는다
관에서 쫓기는 천주교 신자들을 불교 스님들이 숨겨 주었던 암자 천진암에 천주교 측의 성지화 사업으로 ‘평화의 성모상’을 세웠다. 천진암 누리집 갈무리
관에서 쫓기는 천주교 신자들을 불교 스님들이 숨겨 주었던 암자 천진암에 천주교 측의 성지화 사업으로 ‘평화의 성모상’을 세웠다. 천진암 누리집 갈무리

강학우천진암주어사(講學又天眞庵走魚寺)/ 설중이벽야지(雪中李檗夜至)/ 장촉담경(張燭談經)

천진암 주어사에서 강학할 적에/ 이벽이 눈 내리는 밤에 찾아오자/ 촛불을 밝혀놓고 경을 담론했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쓴 권철신(1736~1801)의 묘지명에서 인용한 글이다. 〈다산시문집〉제15권에 실려있다. 천진암과 주어사라는 사찰 이름이 등장한다. 천진암을 거쳐 주어사로 간 인물은 이벽(1754~1785)이다. 1779년 기해년 겨울의 일이다. 경을 담론한 기간은 10일이며 참여 인원은 5~10여명으로 추정된다.

# 해설

① 해답은 공공 성지이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에서 준비한 대규모 세미나가 두 번에 걸쳐 마무리되었다. ‘다종교현상과 종교공존’(8월22일)과 ‘세계공공성지 운영현황’(8월29일)이 그 주제였다. 현재 한국 특정 종교의 일부 인물들이 주도하는 합의되지 않은 일방적 ‘성지사업’으로 인하여 전국 곳곳에서 이웃 종교와 무종교인,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주민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졌던 것이 현실이다. 도로가에 설치한 뜬금없는 다수의 새로운 성지 표지판은 보는 이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관광객 유치를 염두에 두고 국민 세금을 사용했다는 지역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변명도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천진암·주어사 문제도 그중 하나다.

특히 불교계와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현안인 경기도 광주 지역 천진암·주어사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 이번 세미나의 주된 취지였다. 천진암·주어사 사건의 팩트는 불교 사찰에서 호기심 많은 유생들이 모여 유가서와 서학(西學·개론서 일부가 포함된)을 학습한 일일 뿐이다. 가감 없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정견(正見)에서 출발해야 한다. 천진암이라 쓰고 천주당으로 읽는 어리석음을 지방자치단체가 방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결국 역사를 왜곡한 일이라는 비난만 오랫동안 남을 근시안적 행정 처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관계 종교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공 성지 조성이 해답이라 하겠다.

② 잘못된 전제 하에 이루어진 모든 일은 허업(虛業)이다.

어쨌거나 ‘성인’과 ‘성지’는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합의와 공감이 필요한 영역이다. 이러저러한 업적이 있기 때문에 성인이며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에 성지라고 설명했을 때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 못한다면, 이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사업으로 해야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각 종교가 정의하는 성인과 성지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종교 사회이며 또 무종교인이 과반수를 넘는 나라이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주문자 부착방식의 ‘메이드 인 로마’표에 생각 없이 동의한다면 ‘영혼없는’ 공무원 소리를 들어도 변명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인간의 복잡다단했던 생애를 거두절미하고 서학을 믿기 위해 태어나고 죽은 사람이라는 식의 프레임 속에 가둔다면 이 또한 큰 오류를 부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잘못된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업은 허업(虛業)에 불과하다. 혹여 ‘내 종교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눈곱만큼이라도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다면 그것이 바로 직권남용인 것이다.

③ 탈종교시대는 이미 대세가 되었다

조선 말 동아시아 내외 정세와 관련된 일련의 종교적 사건에 대한 모든 정보가 객관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닫힌 시대가 아닌 것이다. 성지란 누가 지정하고 만들고 선포한다고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정치인과 공무원, 종교인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일부 진짜 성지를 제외하고 기존의 세계적인 유명 종교 성소들도 이미 텅텅 비고 찾는 이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 실제상황이다. 인위적으로 억지로 만든 새 성소의 미래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이제 탈종교시대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성인이 없거나 성지가 모자라서 탈종교 사회가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야마니 석유장관은 오래전에 이런 명언을 남겼다.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 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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