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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평등은 서로 같음이 아니라 다름에 있다

등록 2023-01-22 06:26수정 2023-01-22 06:27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1]

종이비행기는 아무리 잘 접어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 처음 종이비행기를 날렸을 때는 그저 날아가기만 바랐다 . 얼마나 오래 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설렜던 그 마음. 하지만 종이비행기는 얼마 날지도 못하고 툭 떨어졌지 . 점점 욕심이 생겨 언덕에 올라 힘껏 날려보기도 하고 학교 건물 위에 올라가 날려 보기도 했다 . 날아가지 못하고 꼬꾸라지면 종이가 시원치 않아서 그런 줄 알고 될 수 있으면 좋은 종이를 구해다가 자꾸만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

[2]

사랑을 접어 날려 보기도 하고 희망을 접어 날려 보기도 하고 꿈도 접어 날려 보기도 했지만 모두 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 우리 아버지도 나 잘되라고 희망의 종이비행기를 날렸을 것이다 . 아들이 판검사가 되길 바라며 날렸던 아버지의 종이비행기는 예상을 뒤엎고 노래의 길로 떨어지고 말았다 . 아버지는 아들이 노래의 길로 떠나자 한숨을 깊게 내리쉬며 딴따라는 되지 말라며 실망을 금치 못했지 . 사실 그때만 해도 딴따라는 직업으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 사람들은 좋은 쪽만 생각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슬픔보다는 기쁨을 , 불행보다는 행복을 . 하지만 기쁨을 대하듯 슬픔을 대하지 않고 행복을 대하듯 불행을 대하지는 않는다 . 만약에 똑같이 대해 주었더라면 세상살이가 조금은 편해지지 않았을까 . 내가 나를 평등하게 대해 주었더라면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을 것이다 .

[3]

어느 날 옛 동무가 찾아와 동네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 식탁에 앉은 젊은이들이 남녀평등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 한쪽에선 여자도 군대가 가야 한다 하고 한쪽에선 장관 자리를 남녀 반반씩 해야 공평하다 하고 남자도 애를 낳아 봐야 안다는 둥 그야말로 술안주 같은 토론을 하고 있었다 . 그 바람에 오랜만에 찾아온 동무와 나도 덩달아 평등에 대해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 과연 나라를 위해서 군대를 가겠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 그냥 의무니까 가는 사람도 있고 직업으로 가는 사람도 있겠지 . 오늘날에는 직업으로 군인을 택한 여자들도 많다 . 의무적으로 여자들도 군대를 가면 얼핏 남녀평등처럼 보이겠지만 그런다고 당장 평등이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다만 여자들도 군대에 가면 좋은 점이 많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 장관 자리도 그렇다 . 백성을 위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장관직을 맡아야 하는 거지 능력도 안 되는데 남녀평등을 내세워 반반으로 나눈다는 것은 아이들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 그러니까 여자든 남자든 실력 있는 사람들이 장관 자리에 앉는 것이 옳다고 본다 .

[4]

높은 산이 낮은 산보다 대접을 받는 것 같지만 실은 낮은 산도 대접을 받는다 .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산 속으로 들어가면 그냥 산일뿐 , 그래서 산 속에서는 차별도 없고 불평등도 없다 . 온갖 나무와 바위와 꽃들이 자기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 본분을 벗어나 남의 것에 자기 것을 맞추다 보니 불평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 여자이든 남자이든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면 되는 건데 처음부터 사람을 말하지 않고 여자와 남자를 따로따로 말하기 때문에 남녀평등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 평등은 서로 같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에 있는 것이다 .

[5]

대충 10 대 후반에서 20 대에 걸친 시절을 청춘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그 나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똑같이 청춘이라고 할 수는 없다 . 나이가 들어도 열정이 식지 않으면 청년이고 청춘이라도 열정이 없으면 노인이다 . 그러니까 나이를 기준으로 청년기 노년기를 나눈다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 열심히 일하는 노인을 나이가 많다고 해서 늙은이 줄에 세울 것이 아니라 열정이 없는 사람들을 늙은이 줄에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 청춘이라는 말에 속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시절에 뭔가 꽃이 피어날 거라는 착각을 하고 산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 꽃은커녕 푸른 잎도 돋지 않으니 인생의 봄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 계절마다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나무처럼 사람도 주어진 계절에 자기 할 일을 다 해야 한다 . 나는 내가 청춘이었을 때 저절로 꽃이 피어나는 줄 알고 세월만 보내다가 망했다 .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6]

종이비행기는 그냥 종이비행기인 것이다 .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았다고 마냥 종이비행기를 탓할 수는 없다 . 꿈이라는 종이비행기가 내가 원하지도 않는 곳으로 갔다면 내가 꿈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고 희망이라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는데 절망으로 떨어졌다면 그건 절망을 더 겪어보라는 뜻이고 청춘이라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는데 숲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나의 나무를 가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

[7]

험한 산을 기어오르는 사람은 소리 없이 험한 산을 넘는 비행기를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미워할 것까지는 없다 . 열심히 일해도 원하는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한번 따져봐야겠지만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누리는 사회는 올 것 같지 않다 . 그냥 기본적인 행복만 주어진다면 굳이 비행기 타고 산을 넘지 않더라도 험한 산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 지금까지 나는 종이비행기로 살았다 . 험한 산을 즐기는 것도 못해보고 인생을 낭비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 이제 비로소 안다 . 종이비행기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

[8]

1997 년 2 월인가 , 노래 작업 한답시고 중청산장에서 한 달간 머문 적이 있었다 . 하루는 한계령 쪽에서 모 기업 회장이 비서진을 데리고 왔는데 올라오다가 사고를 당했는지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었다 . 비서 한 분이 산장 직원에게 따뜻한 방을 요구하자 직원은 규칙상 안 된다고 하였다 . 그 광경을 바라보던 회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침상으로 내려갔다 . 비서는 담요를 두툼하게 깔아 놓고는 회장을 쉬게 했다 . 나는 그 회장한테서 평등을 대하는 멋짐을 보았다 . 직원이 규칙을 어기지 않도록 하였고 비서는 회장의 직함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산장 앞이 요란하여 나가보았더니 술이 덜 깬 어떤 사람이 직원하고 실랑이를 벌였다 . 난데없이 헬기를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 날이 춥고 내려가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자기가 검사라며 빨리 호출하라고 난리를 폈다 . 쓰레기를 운반하는 헬기가 있다는 걸 안다면서 그걸 부르라는 것이었다 . 저 사람도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었을 텐데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 ? 그날 헬기는 오지 않았고 그 검사도 회장도 다 내려갔다 . 사람들은 평등을 말하면서 높고 낮음을 따진다 . 멀리서 보면 높은 봉우리 낮은 봉우리 , 하지만 산속에는 그냥 산이 있을 뿐이다 .

넘어야 하는 이 험한 산을 우리가 가네
꿈을 찾아 사랑 찾아 행복을 찾아
구름 속에 비행기 소리 없이 이 산을 넘고
누구는 애를 쓰며 기어오르네
나도야 비행기 타고 날고 싶지만
내가 날린 비행기는 종이비행기
꿈을 접어 음음 사랑을 접어 행복을 접어
저 멀리 날려본다 날아라 청춘이여

-< 종이비행기> , 1988

글 한돌(가수·작사 작곡가)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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