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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나의 소유가 아니다

등록 2023-06-18 08:12수정 2023-06-18 08:13

픽사베이
픽사베이

#같은 내용이 수차례 반복되는 영어문장을 읽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이런 내용이다. “그것을 증명하는(testify) 길은 그것을 실현하는(realize) 데 있다.” ‘그것’(it)의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도(道, tao), 사랑, 미움, 거짓, 진실… 여기 나오는 동사 “실현하다”를 “깨달아 알다”로 읽어도 되고 어쩌면 그래야 한다. 실현했어도 본인이 그것을 알지 못하면 아무 한 게 없는 거니까. 인간 세상이란 온갖 바르고 그르고 깨끗하고 더러운 것들이 끝도 없이 진열되는 지구별 박람회장인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 아닌 걸 안다는 뜻이니 실은 그래서 따로 버릴 무엇이 없는 세상인 거다.

#"In a essence is the Essence." 실제로 이런 문장이 가능한 건지 모르나 뜻은 “한 본질 안에 본질이 있다.”로 새길 수 있겠다. 이 문장을 읽다가 “됐어. 여기까지!” 큰소리로 말하며 꿈을 벗는다. 한 본질은 눈으로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아무개나 두려워하는 누구처럼.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두려움이나 사랑처럼. 그런데 이 둘을 갈라놓을 수도 없고 섞어놓을 수도 없다. 그래서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라는 거다.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라고 하신 예수, 그분이 말씀하신 아들은 한 본질이고 아버지는 본질이다. 그분은 당신이 아버지의 아들임을 잊지 않고 오로지 아버지께서 당신으로 살기를 원하셨던 참사람의 모델이시다. 그분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듯이 내가 너희 안에 있게 해다오.” 아, 무슨 말을 덧붙이랴? 진심으로 아멘이다. 하지만 저는 못합니다, 당신이 하십시오. 당신 앞에서 저는 없습니다. …커서 찬송가 가사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아민의 비뚤배뚤 서툰 글씨로 화답해주신다. “내 주님 여기 개시내(계시네), 주님 여기 개시내, 주님 여기 개시내, 사랑으로.” 옴! 이 몸을 당신 사랑의 도구로 쓰십시오.

#혼잣말인지, 누구하고 주고받은 말인지, 내용은 이런 것이다. “흔히들 ‘이건 내 생각인데’라고 하지만 이 말에 오류가 있다. 생각을 자기 소유로 잘못 아는 거다. 그렇지 않다. 생각은, 그게 어떤 생각이든, 한 사람의 소유일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이 어느 한 사람 것일 수 없듯이. 그러니까 제대로 말하려면 ‘이건 나한테서 나오는 생각인데’라고 해야 옳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와 ‘이건 나한테서 나오는 생각인데’는 크게 다르다. 전자는 그 생각에서 자유롭기가 무척 어렵지만, 오히려 그것을 변명하고 지켜야 하지만, 후자는 그 생각에서 자유롭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자기 생각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물론 그걸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한테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되는 다툼질로 아까운 세월을 보내는 것이겠지만.” …언제 어떻게 꿈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둘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 걸까?

#천우신조(天佑神助)라는 말이 있다. 하늘과 신령이 돕는다는 뜻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직 아닌 말이다. 사람이 저를 주인으로 착각한 데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신령이 제 조수(助手)나 하인쯤 된다는 얘기 아닌가?

#‘XX졸’이라는 이름의 약이다. 만병통치! 못 고치는 병이 없다. 그런데 약성(藥性)이 워낙 강해서 맨손으로 잡으면 손에 화상(火傷)을 입는다. “그러면 그게 독약이지 무슨 약이야?” 한마디 하고 꿈에서 나온다. 누가 속삭인다. “맞아, 그래서 이 약으로 산 건 죽이고 죽은 건 살리지.” …어젯밤에 “너희는 다만 그렇다 할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다 할 것은 아니다 하여라. 그 밖의 모든 말이 악에서 나오는 말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그러니까 눈앞의 현실을 미국의 바이런 케이티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조건 없이 긍정하거나 일본의 키요자와 만시처럼 누가 뭐라 해도 그건 아니라고 조건 없이 부정하라는 말씀인가? 이런 생각을 했더니 이런 꿈이 찾아온 모양이다. 누가 무슨 말을 했다. 이미 했으니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은 하느님의 다른 이름. 그런즉 현실을 배척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저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배척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그런 거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말했으면 말했기 때문에 아니다. 말로 표현되는 도(道)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닌[道可道非常道] 까닭에 그렇다. 현실은 하느님의 다른 이름. 하느님이 아니다. 그래서 무조건 아닌 거다. 완전부정이자 완전긍정인 자리, 마침내 가서 닿아야 할 데가 거기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너는 바이런 케이티 쪽이냐? 키요자와 만시 쪽이냐? 답한다, 그걸 나눌 수 없다는 얘기 아닌가? 됐다, 생각은 여기까지! 어차피 사람의 말로 가서 닿을 수 없는 경지인 것을.

#환갑 무렵에 쓴 글을 읽는다. “누가 만일 눈앞에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맘에 안 들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아니 아예 그런 생각조차 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하늘’을 닮은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이 문장 앞에서 가벼이 웃게 되는 건 지난 이십여 년 허송세월은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 때문일 게다. 맘에 쏙 드는 것도 별반 없지만 맘에 안 드는 것도 없는 건 사실이니까. 아무렴, 하늘이 하시는 일에 어찌 허사(虛事)가 있겠는가? …2008년에 출판된 ‘오늘하루’(삼인)를 어제오늘 이틀에 걸쳐 읽는다. 이 책을 내면서 더는 글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것이,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다행이었던 것 같다. 뭐라고 썼더라면 갈데없고 하릴없는 중언부언이었을 테니까.

글 관옥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배움터 마루 김민해 목사가 펴내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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