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백가기행’, 집 읽어내는 안목 탁월
재테크로 분주한 세상의 모든 집은 ‘불난 집’
명동 한복판에서 복닥거리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강원도 산골로 숨어버린 지인에게서 우편물이 왔다. 뜯어보니 조용헌 선생의 『백가기행』이란 책이었다. 농사짓다가 심심하면 파적 삼아 읽으라고 얼마 전에 보낸, 2010년 문광부 우수도서로 지정된 나의 건축기행집인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있네』를 받은 것에 대한 답례였다. 요즘 부쩍 심해진 견비통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최근에 일간지에서 저자가 쓴 ‘몸공부’에 대한 칼럼을 읽은 터라 그 책이 더욱 반가웠다. 마음을 다스려 몸을 고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나에게 몸을 고쳐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도 필요하다는 그 말씀에 필이 꽃혀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자수성가한 재야고수로 일가견 이뤄
물론 이 책 이전에도 저자의 글을 좋아하여 열심히 읽고 있는 글팬이기도 하다. 내세울 만한 별다른 제도권 교육 없이 독학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체득하여 완성한 강호동양학에 매료된 탓이었다. 자수성가 내지는 재야고수로서의 일가견을 이루었고 사주 풍수 한의학의 해박함은 물론 유불도를 함께 아우르면서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독특한 문체 때문에 이규태 선생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젊을 때부터 한중일 삼국을 넘나들며 방외지사(方外之士)로 살 수 있었던 그의 배짱과 후광이 때론 부럽기까지 했다. 남들에게 출가했답시고 항상 자유로운 것처럼 입으론 떠들어도 여기저기 또다른 인연에 얽혀 옴짝달싹도 못하고 살고 있는 내 신세와 대비된 까닭이다.
남의 집구경이 취미인 나의 성정을 알아차리고 그 지인은 오랜만에 서울 나온 김에 일부러 서점에 들러 한 권 사서 보낸다는 메모의 정성 때문에 백가기행을 단숨에 읽어내렸다. 전통과 현대의 모든 집들을 아우르고, 한 칸 띠집에서 99칸짜리 기와집은 물론 현대저택·아파트까지 망라된 수작이었다. 건축주의 집에 대한 사랑과 철학을 읽어내는 그의 탁월한 안목에 참으로 공감했다.
내가 직접 짓는 집, 누구나 할 수 있다
법화경에 삼계화택(三界火宅)이란 말이 나온다. 온 세상을 불난 집이라고 진단했다. 새로 짓는 목 좋은 아파트로 혹은 오피스텔로 몰려다니면서 “1가구 2주택” 운운하며 부동산으로 재테크에 열중하는 이에게는 그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집은 분주하기만 한 ‘불난 집(火宅)’일 뿐이다. 이와 반대로 저자의 ‘집안에 구원이 있다’는 가내구원론(家內救援論)은 차원이 다른 언어였다. 새로운 구원론인 까닭이다. 그런 집에서 사는 사람은 이미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그 자체인 까닭이다.
집장사가 지어준 집이 아니라 내가 직접 집을 짓는 것이 결코 여유있는 사람이나 호사가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닌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임을 알려주기에 내집마련이 화두인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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