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계를 받는 행자들 사진 <조계종 총무원> 제공
이 세상의 엄마는 모두 바보다
합천 해인사 사하촌에는 한가위 고향방문을 환영하는 알림글을 향우회에서 내걸었다. 더불어 지역을 빛낸 인물인 성철스님의‘탄신 백주년 기념전’이 열린다는 현수막도 함께 펄럭였다. 두 가지 펄침막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진걸 보면서 비로소‘제2의 고향’에 도착한 걸 실감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이 지역에 주민등록을 둔지도 벌써 몇십년이 되었다. 지금이야 무덤덤해졌지만 추석무렵이면 나타나곤 했던‘서늘한 가슴’을 다스리느라고 한동안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 무렵에 입산했기 때문에 나타나던 일종의 추석증후군이었다.
출가수행자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인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회고록이 최근(9월 하순)에 나왔다. 성철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불필스님이 생생했던 기억을 정리했다.
그동안 주변의 제3자들에 의해 전설처럼 들어왔던 구전(口傳)된 내용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1차자료였기에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읽었다. 가족사(家族史)인 동시에 근대백년사였고 또 현대불교사이기도 했다. 한가위 무렵이라 그런지 많은 이야기 속에서 특히 가족사 부분은 흡입력이 강했다.
불필스님은“이 세상의 엄마는 모두 바보다!”라고 한마디로 단언한다. 그 이유는 불필스님의 엄마가‘3년만에 도를 깨치고 돌아오겠다’는 딸의 말만 믿고서 진짜로 기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출가 이후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나 역시 절에 온지 10년쯤 되던 어느 날 모친에게서“이제 그마이 해봤으니 집에 오면 안되긋나?”는 말을 들었다. 아마 모르긴해도 가출(?)하면서 내가 그런 언질을 했던 모양이다. 말한 사람은 애시당초 지킬 생각이 없기에 말한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는데, 들은 사람은 지켜야 할 약속처럼 기억하고 있는 이런 이중적인 대화가 세상에 또 있을까?
불필 스님 <영원에서 영원으로>에서
성철 스님 뒤에 불필 스님 은사인 인홍 스님과 묘엄 스님, 불필 스님(왼쪽부터)사진 <영원에서 영원으로>에서
성철스님의 어머니 역시 ‘10년후에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집을 나간 아들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록 무소식인 자식을 보기위해서 물어물어 찾아갈 때는 천생 어머니 모습 그대로 였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기던 모습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움 마저 풍겼다고 이 책은 전한다. 어머니는 준비한 물건을 절 앞에 있는 바위에 올려놓고 산 아래로 내려간 뒤, 한참 후 다시 올라와 바위 위가 깨끗하면 아들이 가져간 걸로 생각하고 기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올려놓은 물건이 널브러져 있으면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앞이 캄캄하여 하늘과 땅마저 분간되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해엔 금강산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며느리가 전해달라는 편지는 아들의 불같은 성격을 아는 까닭에 내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집이 가까워지자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두발을 더 이상 앞으로 옮길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절집의‘바보엄마’역사는 결코 짧지않다. 당나라 동산양개(洞山良介 807~869)선사는 어머니를 하직하는 글인‘사친서(辭親書)’를 남겼다.‘아들은 이미 출가했으니 이제 없는 자식처럼 여기시라’는 내용이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 뜻은 아랑곳없이 당신 스타일대로 답장을 했다.
“자유포모지의(子有抛母之意)나 낭무사자지심(娘無捨子之心)이라 자식은 어미를 버릴 수 있겠지만, 어미는 자식을 버릴 마음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