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활동하는 독서모임의 부름을 받았다. 손바닥 안의 액정만 켜면 재미있는 볼거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책 읽는 인구는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자책을 다운받아 읽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동네서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어쩌다 운좋게 살아남은 책방은 그 비결을 묻는 것이 뉴스거리가 되는 형편이다. 이런 현실 앞에 안타까움을 함께하는 뜻있는 이들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갑자기 쌀쌀해진 기온과 노천에서 오랫토록 앉아야 하는지라 모자와 목도리까지 챙겼다. 주말 단풍행락 인파로 인하여 길은 온통 정체의 연속이다. 천년 은행나무 밑에서 진행되는 색다른 행사는 가깝지 않는 거리 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내도록 만들었다. 황금빛 은행잎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광고장면을 상상하며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 뒤로 이어진 꼬리의 길이를 늘이는데 기꺼이 합류한 것이다. 넉넉하게 예상시간의 두 배쯤 여유를 두고 출발했지만 휴게소 한번 들르지 못한 채 부지런히 달려서야 겨우 약속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20여명의 독자와 5명의 패널들이 마주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은행나무 이야기도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1970년대‘수출입국’시대에는 은행나무 잎을 수집하여 의약품의 원료로 해외시장에 팔았다. 한방에서는 은행열매가 기침에 좋다고 하면서 구워먹도록 처방했다. 절집의 거대한 은행나무에 관한 전설은 다소 정치적이다. 신라망국의 한을 품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입산하며 꽂아놓은 지팡이가 은행나무가 되었다거나 혹은 나라에 어려움이 생기면 울음소리를 낸다는 영험을 강조하는 형식을 띤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신하면서 국태민안의 기도를 한 인연으로 나라의 안녕(寧國)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품고있는 영동 영국사(寧國寺)은행나무는 매년 가을 당산제를 통해 마을공동체 수호신 노릇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은행나무의 본가는 공자(BC551~479)집안이라 하겠다. 서원과 향교에는 하나같이 아름들이 은행나무가 약속이나 한 듯 자리잡았다. 공자께서 은행나무 그늘아래에서 평상을 펴고 제자를 가르켰다는 행단(杏壇)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최초기록인“공자께서...행단 위에 앉아서 쉬었다....제자들은 책을 읽고(..休坐乎杏壇之上.弟子讀書...)”라는 내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