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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그래도 김치가 짜다면 주방장을 갈아야지”

등록 2008-09-04 18:29

[벗님글방/원철스님] 사랑이 식은 걸 알수 있는 건 음식만이 아니다

장로 대통령 ‘짠소금’ 먹고 오버하는 공직자들

  "김치가 짜다. 사랑이 식었나봐. " 얼마 전에 초로에 가까운 남정네가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독백처럼 내뱉는 광고언어다. 소비자의 경험적 감성에 닿았는지, 한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음식은 사랑과 정성이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어디 음식 뿐이겠는가. 모든 것이 그렇다. 60년대말 해인사 주지를 지낸 영암스님은 늦가을 김장할 때마다 절여놓은 배추잎 곁을 지키고 서서 소금을 팍팍 뿌려대는 것을 소임으로 여겼다. 김장김치 간을 맞추어주려 온 동네 아낙네들이 아무리 '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살림을 아끼기 위한 방편이었다. 짜야 김치를 덜먹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김장김치가 너무 헤픈 까닭이었다. 결코 대중에 대한 사랑부족은 아니었다. 바닷물은 3%의 소금만 필요, 한계치 넘으면 사해 지리산 실상사의 객실채 마루에는 집 크기에 어울리지도 않는 큰 괘종시계가 놓여 있었다. 사찰을 방문한 어느 단체가 기념으로 두고 간 것이다. 서까래에 닿을 정도로 너무 커서 마루 위에 그대로 기대다시피 세워놓았지만 멀리서도 시계바늘과 추가 잘 보였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시계바늘이나 추가 아니라 아래쪽에 흰 페인트로 써진 큼직한 설익은 서체의 글씨였다. 애물단지가 된 괘종시계는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눈에 거슬렸지만 써놓은 글씨는 볼 때마다 나를 훈계해준다. "화광동진(和光同塵)" 설사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빛을 감추고 속세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산다는 뜻이다. 노자도덕경의 말씀이긴 하지만 원효스님도 이 가르침에 따라 다리 밑에서 때국물 꼬질꼬질한 거지들과 함께 자주 어울렸다. 대중의 눈높이에 나를 맞춘 것이다. 어려운 일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별로 힘든 일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는 이는 누구나 이미 갖추어져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덕목이기 때문이다. 소금과 빛은 이 세상의 부패와 어둠을 벗어나게 해준다. 하지만 바닷물이 썩지 않는데는 3%의 소금만 필요하다. 한계치를 넘어가면 사해(死海)가 된다. 아무 것도 살수가 없다. 또 빛도 지나치게 넘치면 삼라만상 모두가 밤낮을 잃어버리게 된다. 러시아백야현상은 여름관광객의 구경거리는 되겠지만 살고 있는 주민에게는 편안한 밤을 빼앗아가는 또 다른 번뇌덩어리다. 그래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무엇이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것이다. 독선과 극우의 합작품인 ‘기계소금’은 위험 장로 대통령의 '짠소금'을 먹고 일부 철딱서니 없는 공직자의 오버액션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전자지도 만드는 하청업체 기술자까지 몽롱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천년 전통사찰까지 빼버린 이상한 미완성지도를 출시하게 했다.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의 세금이 포함된 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공복의 본분을 망각하고 짠소금 장사를 하니, 이들의 공인 자질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바로 퇴출감이다. 이명박 정부 등장이후 지난 6개월 동안 국민 눈에는 그렇잖아도 짠 김장독을 향해 줄줄이 '청기와표' 소금가마 지고 가는 사람들만 보였다. 하지만 소금이 배추잎까지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맛있는 김치는 여러 가지 이질적인 재료의 적절한 배합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금 역시 다양한 성분이 함께 녹아있는 천일염이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순도만 높은 기계소금은 제대로 짜긴 하겠지만 먹는 사람의 건강에는 별로 좋지않다. 독선적인 '원리주의'와 철지난 '극우주의' 합작품인 짜기만 한 소금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런 소금은 식용이 아니라 '아침부터 재수없다'고 침 뱉으며 대문 앞에 팍팍 뿌리는 용도로 제격이다. 누구나 맛과 향기가 있는 천일염과 눈에 거슬리지 않는 순하고 부드러운 빛을 원한다. 그래서 참다못한 불교계와 일반시민 수십만명이 8월27일 서울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종교차별방지법' 제정을 통한 정치-종교분리라는 헌법정신 회복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보아하니 이번에는 '소 귀에 경읽기'로 그냥 지나날 것 같지 않다. 이제 시작이라고 소매를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두행진을 하면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김치가 짜다면 주방장을 갈아치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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