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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세종대왕이 광화문에 나와 받는 벌

등록 2020-11-04 10:11수정 2020-11-04 10:12

[ᄒᆞᆫ돌ᄐᆞ래이야기]

뿌리 깊은 나무

-나랏말ᄊᆞ미

사진 김정효 기자
사진 김정효 기자

나랏말이 무너지면

다른 나라 말을 갖다 쓰게 되는 것이니

나라의 뿌리가 흔들리는 건 당연한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기에,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 성하도다.’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뿌리를 ‘아리랑’과 ‘한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 년 내내 한글을 학대하는 신문과 방송을 보면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릴까봐 걱정이다. 꽃이 시들하니 열매도 맺기 어렵다. 외래어를 쓰지 말자는 게 아니라 한글을 학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행히 한글날이 되면 한글을 사랑하자고 방송을 해주니 그 하루만이라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가끔 서예가의 글씨를 보게 되면 이상하게도 우리 글자보다 중국 글자를 더 잘 쓰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중국 글자를 주로 쓰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마는 왠지 우리 글자에는 정성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씁쓸한 적이 있었다. 해마다 사자성어 한마디씩 하는 교수나 정치가들을 보면 씁쓸한 기분을 넘어 역겹다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다. 처음부터 우리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어려운 사자성어를 먼저 쓴 다음 그것을 다시 우리말로 설명해 주는 친절을 베풀고 있으니 말이다. 설사 그 사자성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가장 중요한 백성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결국 자기네들끼리 지식 자랑하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내 말은 사자성어를 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보더라도 한글은 뒷전이다. 술집 간판이나 과자 이름에 일본 말을 쓰는 것도 그렇고, ‘벗’이나 ‘동무’라는 예쁜 말을 놔두고 ‘친구(親舊)’라는 말을 쓰는 것도 그렇고, 일본말 ‘우동’, ‘오뎅’을 우리말처럼 쓰는 것도 그렇다. ‘물빛’ 역이라고 하면 참 예쁜 역이 될 터인데, 왜 굳이 ‘수색(水色)’역이라고 해야 하는지, 특히 ‘아내’라는 푸근한 말을 버리고 ‘와이프’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시 한번 그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게다가 방송과 신문이 앞장서서 우리말의 틀을 무너뜨리고 지나칠 정도로 줄임말을 쓰고 있으니 속상하다 못해 화가 나기도 한다. 내 말은 외래어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지 않는가. 영어도 하고 중국어도 하고 다 좋은데 왜 우리말을 학대하고 업신여기느냐 그 말이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무덤가에 한 쉰 살 정도 된 소나무가 있었다. 우리는 해마다 그 소나무 아래서 음식도 먹고 얘기도 나누고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소나무가 시들시들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소나무가 병에 걸려서 그리된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소나무는 멀쩡했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소나무가 죽은 원인을 알게 되었다. 무슨 넝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넝쿨이 소나무를 탱탱 감고 올라가면서 소나무를 죽였던 것이다. 갑자기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이런 나라들이 넝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칭칭 감고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넝쿨이라는 게 살살 감고 올라가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바로 그것, 살살 감는 그것을 느끼지 못해서 소나무는 넝쿨이 자기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듬해 산소를 찾았을 때는 소나무가 잘려있었다. 죽은 소나무로 서 있을 때보다 더 허전했다. 이제 우리 아버지 어머니 무덤은 누가 지켜주나?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버스 출입문 위에 ‘하차 시 오토바이 주의!’라고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내릴 때 오토바이 살피세요.’라고 썼으면 더 정겨울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그걸 보면서 우리 스스로가 넝쿨이 되어 우리말을 칭칭 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언자는 아니지만 머지않아 한글은 넝쿨에 칭칭 감겨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총 들고 나라를 지키면 뭘 하나? 우리말이 사라지면 우리 민족도 사라질 텐데.

어떤 방송국에서는 몇 년 동안 계속해서 프로그램 제목을 아예 영어로 못을 박아 놓았다. 덕분에 전 국민이 영어 한마디는 하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영어로 해보라고 하면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언빌리버블 스토리’라고 말한다. 아무튼 백성들에게 영어 교육을 확실하게 시켰으니 나라에서는 이 방송국에게 상을 줘야 한다. 그 방송뿐만이 아니다. 외국어로 된 프로그램 제목은 이 방송 저 방송에 창피할 정도로 많다. 참, ‘디지털미디어시티’라고 역 이름을 지은 사람에게도 상을 줘야 한다. 요즘에는 그 이름이 길다고 ‘DMC’ 역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지?

에스비에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에스비에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일본은 우리 민족을 말살시키려고 별 짓을 다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지독스러운 일이 우리말을 없애는 거였다. 우리말을 지키려던 한글 학자들을 탄압하고 학교에서는 우리말로 말하는 것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치욕의 역사를 겪은 우리가 지금은 스스로 우리말을 천대하고 있으니 우리나라를 엿보고 있는 미국이나 중국,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셈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 뿌리가 깊어져 이제는 그 뿌리를 뽑아내기도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나라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도대체 나랏말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는 것인지. 정권이 바뀌거나 당 대표가 바뀌면 그들은 현충원 가서 고개를 숙이고 온다. 고개 숙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오는지 모르겠지만 세종대왕한테도 가서 인사를 하고 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한글이 이 나라를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현충원만 가지 말고 세종대왕한테도 갔다 오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하면 백성들도 달리 볼 것이고 나라의 기운도 되살아날 것이다. 언젠가 술집에서 본 풍경, ‘건배’와 ‘위하여’의 틈바구니 속에서 ‘치어스’라는 말이 새롭게 등장했다. 뿌리 깊은 나무에 병이 들었음을 알았다.

나랏말이 무너지면 다른 나라 말을 갖다 쓰게 되는 것이니 나라의 뿌리가 흔들리는 건 당연한 것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세종대왕한테 고마움도 전하고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조차 그렇게 하지를 않으니 뿌리 깊은 나무에 병이 들어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파주에 있는 어떤 학교는 새해가 되면 세종대왕한테 가서 인사하고 오는 걸로 알고 있다.

어느 나라건 나라를 지탱해 주는 축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리랑과 한글이 축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아리랑도 시들하고 한글도 시들해졌다. 이러다간 결국 두 축이 무너져 우리의 모습을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글을 사랑하자는 한글날의 그런 형식적인 방송은 제발 그만 하고 그냥 평소에 한글 학대나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동네 이름도 되살리고 생활 용어도 정리해 보고 그렇게 조금씩 우리말을 되살려 보자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오히려 방송과 신문들이 먼저 앞장서서 한글을 뭉개고 있으니 넝쿨에 휘감겨 죽어가던 소나무가 떠오른다.

군인들이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한다고 똑똑한 대학생들이 데모도 하고 그랬는데 한글이 학대를 당하고 짓밟히고 있는 오늘날에는 신문이나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똑똑한 대학생조차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심지어는 나라마저 여기에 대해서 아무 말 하지 않으니 한글이 참으로 불쌍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일본에서는 한국 자동차를 볼 수 없는데 일본한테 짓밟혔던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리 일본 자동차가 많이 굴러다니는지 그대는 아는가?

옛날에는 사람이 죽은 뒤에라도 큰 죄가 드러나면 무덤에서 관을 꺼내 다시 참형에 처했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광화문 광장에 끌려나온 걸까? 마치 세종대왕한테 항의라도 하듯 방송국과 신문사들이 앞장서고 그에 맞장구치는 백성들이 한글을 내다버리고 짓밟고 있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보라고 아주 커다랗게 동상까지 만들어 놓았다. 한글을 만들었다는 죄로 세종대왕은 날마다 한글이 학대당하는 광경을 바라봐야 하는 형벌에 처해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잔인한 민족이었던가? 그나마 이순신 장군이 세종대왕을 보호하고 있으니 그것이 다행이라면 아주 큰 다행이다. 두고 보라! 지금은 우리가 잘난 것 같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 제 나라의 뿌리를 갉아먹는 민족을 어느 나라가 알아주겠는가? (세종대왕의 은덕을 기리며 지난번 썼던 글을 다시 고쳐 씀)

퀭한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넝쿨이 너의 몸을

칭칭 감았구나

푸르던 잎사귀

하나둘 떨어지고

빛나던 너의 모습

넝쿨에 휘감기누나

다시 일어나 꽃피우자

뿌리 깊은 나무야

-「뿌리 깊은 나무」, 2014/처음 제목 : 슬픈 한글날

글 한돌 작사가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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