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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 앞에서 차마 ‘홀로아리랑’을 부르지못했다

등록 2020-11-30 10:02수정 2020-11-30 10:03

고려인들이 정착한 곳 하나인 우스리스크의 고려인들이 펼친 고려인 잔치. 사진 조현 기자
고려인들이 정착한 곳 하나인 우스리스크의 고려인들이 펼친 고려인 잔치. 사진 조현 기자

두만강 건너 우수리강 유역에 아리랑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1863년 즈음이다. 생활이 어려워진 농민들이 두만강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1910년 이후에는 나라를 빼앗긴 민초들과 항일 독립 운동가들도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나중에는 그 수가 15만을 훌쩍 넘을 정도로 아리랑꽃은 군락을 이루었다. 그러던 1937년 9월 어느 날 느닷없이 아리랑꽃이 강제로 뽑히고 말았다. 힘들게 일궈놓은 정든 집과 터전을 남겨두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 것이다. 워낙 급작스러운 일이라 가족들끼리 서로 연락도 취하지 못하고 쫓겨나듯 떠나야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태워진 기차는 가축을 실어 나르던 칼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화물열차였다. 고려인들은 그렇게 짐짝처럼 태워져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실려 가야만 했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굶어 죽은 사람, 병들어 죽은 사람…

40여 일을 달려 도착해서 내린 곳, 그곳은 말 그대로 얼어붙은 지옥이었다. 차라리 척박하거나 황폐한 곳이었다면 어딘가에 묻혀있을 희망이라도 찾아볼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죽음의 땅이었다. 설사 희망을 찾았다 하더라도 얼어붙은 희망은 아무 소용이 없었으리라. 고려인들은 기차에서 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냥 허허벌판에 쓰레기처럼 내팽개쳐진 것이었다. 어떡하든 살아야 했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언 땅을 파서 눈 집을 만들었다. 그때 만난 구세주! 싹싸울 나무였다. 땅 위에서는 보잘 것 없었지만 땅 밑으로 뿌리를 뻗어 살아남은 나무였다. 그렇게 얼기설기 자란 뿌리는 훌륭한 땔감이 되어 주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 꿈도 얼어붙었고 청춘도 얼어붙었다.

1910년 8월 29일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고 일본은 조선 땅뿐만 아니라 간도 러시아에도 진출해 있었다. 러시아는 고려인을 일본과 내통하는 적국으로 여겼다. 속 터지는 일이었지만 졸지에 적성민족이 된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눈엣가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쓰레기처럼 버려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싹싸울 나무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뿌리를 내렸지만 또다시 유랑길을 나서게 되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여러 위성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민족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겨우 뿌리를 내리고 살던 고려인들은 또다시 배척을 당하고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돌아갈 조국도 없었다.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소련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기네 민족을 조국으로 귀환시켰으나 어찌된 일인지 대한민국은 고려인들을 귀환시키지 않았다. 국적도 없이 떠돌이 민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것인지는 더 말해 무엇 하랴.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고려인들은 50여 년간 피땀 흘려 가꾼 터전을 모두 버리고 다시 연해주로 돌아갔다.

고려인 초기 이주했을 당시의 모습.
고려인 초기 이주했을 당시의 모습.

2009년 가을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사할린을 가게 되었다. 잘 아는 동무가 사할린에서 김치 축제를 하는데 가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공항은 우리나라 시골 기차역처럼 고즈넉했다. 초라하지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풍경, 나는 사할린에 대해서 무얼 알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알고 있는 게 없다. 그래서 그런가, 내 마음이 자꾸만 화를 내고 있었다.

일본한테 강제징용으로 사할린까지 간 우리네 할아버지들, 거기서 다시 또 일본으로 강제징용 된 할아버지들, 전쟁이 끝났는데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무국적자로 살아야만 했던 세월, 왜 우리나라는 그토록 힘이 없었나? 고려인은 조국을 잊은 적이 없다. 하지만 조국은 고려인을 버린 것이다.

해방이 되어 나라가 혼란스러워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엔 왜 이들에게 귀국선을 보내지 않았는가? 한 맺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88올림픽을 보고, 올림픽이 열리는 저 나라가 바로 우리 조국이라며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내가 화나는 건, 잔인한 일본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내 나라 때문이다. 우리는 도대체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왜 고려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는가?

이주 초기 고려인들의 삶.
이주 초기 고려인들의 삶.

김치 축제가 끝나던 날, 사람들은 나에게 홀로아리랑을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화가 가라앉지 않아서 도무지 부를 수가 없었다. 가다가 힘들면 손잡고 같이 가보자던 그 노래. 그런데 나는 왜 고려인들의 아픔을 모르고 있었나?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때 어떤 노인이 다가와서, 이 먼 곳까지 와줘서 고맙다며 나에게 술을 권했다. 그리고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는 어서 빨리 내 조국이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이 나라를 갈라놓은 것도 아닌데 괜히 눈물이 나왔다.

다음 날 시장에 갔는데 시장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남조선에서 온 걸 금방 알아보았다.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당근이 많이 들어간 야채샐러드를 먹어보라며 주었다. 맛이 괜찮아서 뭐냐고 물으니 ‘까레이스키 살랏’이란다. 러시아 사람들이 그걸 먹어보고 맛있다면서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러시아 사람들 입에는 그냥 샐러드의 일종이었겠지만 고려인들한테는 김치가 그리워서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다.

일본에 사는 동포는 재일동포, 중국에 사는 동포는 조선족, 러시아에 사는 동포는 고려인, 미국에 사는 동포는 재미동포… 나는 그것이 못마땅하다. 같은 민족을 왜 그렇게 이름을 달리해서 부르는가. 이름이 다르면 우리의 혼도 그렇게 흩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지 말고 어떻게 한 가지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을까? 그러면 혼도 흩어지지 않고 한겨레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언젠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날이 오겠지. 나에게 그 이름을 지어보라면 단연코 ‘아리랑’이라고 하겠다. 이 세상 어딜 가나 우리는 아리랑 민족이니까.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인 최재형 지사의 기념탑을 건립한 뒤 최재형의 손자 최발렌틴(오른쪽에서 세번째) 등 고려인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인 최재형 지사의 기념탑을 건립한 뒤 최재형의 손자 최발렌틴(오른쪽에서 세번째) 등 고려인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조현 기자

여행을 하다보면, 똑같은 해와 달도 나라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 것처럼 온 세계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삶도 지역마다 다르다. 아무리 조국의 바람결이 그리워도 중국에서 부는 바람은 중국 바람이고, 일본에서 부는 바람은 일본 바람이고, 러시아에서 부는 바람은 러시아 바람이다. 이렇듯, 남의나라 바람 속에서 살다보면 거기도 고향이 되는 거고 사람의 모습에서도 그 나라의 정서가 묻어 나온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딜 가도 김치가 있으니 우리는 언제나 한 겨레인 것이다. 김치 속에는 아리랑이라는 유산균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화물열차에 태워졌지

그리고는 찬 벌판에 쓰레기처럼 내팽개졌지

돌아갈 수도 없는 고향, 얼어붙은 세월이었어

칼바람에 베인 청춘, 잃어버린 나의 꿈이여

낯선 하늘 바람 속에서 곱게 피어난 아리랑꽃

모질게도 피었건만 또다시 유랑 길을 떠났지

찬바람에 실려 가는 고달픈 하얀 민들레

어디까지 떠가려나, 늙어버린 나의 봄이여

어디서 날아왔을까 꿈에 본 하얀 나비

내 마음 시린 곳에 그리움 하나 두고 가네

푸른 하늘 꿈길 따라 하얀 나비 멀어져가네

나비야 나도 같이 가자, 그리운 내 고향이여

-「까레이스키 살랏」, 2014

글 한돌(<홀로아리랑>,<개똥벌레> 작사·작곡가)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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