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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어떻게 ‘나’를 뛰어넘는 삶을 살아갈까

등록 2021-05-06 09:48수정 2021-05-06 12:03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오늘 출근길에도 구순 노모는 대문 앞에 나와 내 차가 골목길을 돌아나갈 때까지 눈길을 떼지 못합니다. 가슴에 성호를 긋고 우리 아들 무탈하게 해주십사, 술 좀 덜 먹게 해주십사 빕니다. 옛날 어머니들도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사발 떠 놓고 오매불망 자식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지요.

하느님께서도 참 힘드시지 싶습니다. 우리는 맨날 당신께 안 아프게 해 달라, 자식 시험 붙게 해 달라, 이걸 가지게 해 달라, 저 나쁜 놈들을 망하게 해 달라 빕니다. 이 지구 별에 호모사피엔스가 생겨난 지 수십만 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당신께 요구하고, 제대로 안 들어주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고 원망한 기도들이 도대체 그 얼마였을까요. 심지어 제 개인 욕심 접고 당신만을 찾겠다고 나선 이들도‘제가 착한 이가 되게 해주세요, 성인이 되게 해주세요’하고 역시 저를 위해 열심히 빌었을 터이니 말입니다. 당신께서는 ‘나’를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며 몸소 십자가에 달리셨는데도 우리는 열심히 나를 위해 빕니다.

사실 우리도 힘듭니다. 이렇게 전체이신 당신께로부터 떨어져 나와 개체가 됨으로써 나 먹고 살자고 다른 생명도 죽여야 하고 남을 이겨야 하니 말입니다. 또 저마다 생각과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안 싸울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개체인 나 자신의 생각과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남과 조화롭게 살라십니다. 우리 주제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걸 하라 하시니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들어선 이 길은 고생문이 훤히 열린 길입니다.

그림 픽사베이
그림 픽사베이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칼 라너라는 학자 신부님이 쓴 책을 어렵사리 읽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이란 책인데 ‘입문’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정말 어렵더군요. 20년 전에 사서 앞에 조금 읽다가 책장 구석에 처박아 두었었는데 이제 떠듬떠듬 읽혀집니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지나가면서 나를 예뻐해 주던 어른들 다 돌아가고, 나를 좋아해 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갑니다. 이래저래 그저 슬픈 일만 늘어가지만, 세상을 보는 이해력은 쬐끔 늘어나는 거 같아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라너 신부님 말씀을 내 식으로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개체로 태어나 한계가 명확합니다. 우리가 개체인 한에서 다른 개체들과 경쟁하고 다른 개체를 먹어야 살고 나를 존속시키기 위해 열심히 자식 낳아 키웁니다. 그렇지만 이 유한한 개체 안에는 이 개체를 뛰어넘어 전체이신 당신께로 나아가는 초월의 성품이 들어 있습니다. 신부님의 독일어 표현으로는 ‘Sich selbst gegeben Sein’. 직역하면 ‘자기 자신을 마주한 자기’ 유인원이나 코끼리 같은 짐승들도 자기 자신을 어렴풋이 인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람은 진화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또 다른 나. 스님들도 참선에 들어가 외부세계 정보를 일체 끊고 “이 뭣꼬?“하며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를 찾아 나섭니다. ‘이 뭣꼬’의 그 무엇을 진여(眞如)라 부릅니다.

나와 남이 구별이 안 되는 짐승들은 문자 그대로 무아지경 속에서 다른 짐승을 잡아먹고 제 새끼 낳아 대를 이어갑니다. 여기엔 선도 없고 악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짐승들과는 달리 본능에 매이지 않고 ‘나’라는 개체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유로부터 책임, 선악이 당연히 뒤따라 나오지요.

자기 성찰을 통한 무한으로의 초월. 그래서 우리는 바로 하느님의 모상 (Imago Dei)입니다. 그렇습니다. 개체의 유한성에 갇혀있는 우리지만 한편으로 이 ‘나’를 뛰어넘어 또 다른 개체인 ‘이웃’과 전체이신 ‘당신’을 바라봅니다.

마이스터 엑크하르트 신부님은 무엇이 되게 해달라거나 어떤 걸 가지게 해달라고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 하셨지요. “하느님, 당신이 뜻하시는 것과 당신이 행하시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주지 마옵소서.”

글 <공동선> 발행인 김형태 변호사.

***이 시리즈는 격월간 잡지 <공동선>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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