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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생각의 알을 품으면 날마다 새날이 된다

등록 2021-05-10 04:01수정 2021-05-10 04:08

새나알뫼

날마다 알을 품는 새로운 나

어항 속 물고기들. 사진 픽사베이
어항 속 물고기들. 사진 픽사베이

평화란, 꽃을 위하여 잡초를 뽑는 것이 아니라

꽃도 살고 잡초도 사는 것이다

[1]

따사로운 이사빛이 얼굴에 닿으면 내 마음은 넓은 들판이 되고 바람에 실려 오는 들꽃 내음은 메마른 나의 영혼을 적신다. 나는 그럴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사람인양 하늘을 향해 고마움을 전한다. 하지만 이사빛이 사라지면 모든 근심 걱정 품어 주었던 들판도 사라지고 꽃 내음 가득한 나의 영혼에도 그늘이 진다. 마치 세상이 나를 미워하여 약을 올리는 것 같다. 하긴 내가 잘못해 놓고 세상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 미움을 사랑하자고 날마다 다짐을 하건만 그게 잘 안 되는구나. 미움을 없앤다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걸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걸까. 미움도 사랑도 서로 사이가 좋아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아닌가. 평화란, 꽃을 위하여 잡초를 뽑는 것이 아니라 꽃도 살고 잡초도 사는 것이거늘.

[2]

사람은 누구나 미움을 지니고 살지. 딸아!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너의 인생 영화에 아름다운 장면이 많아야지 미움으로 절반을 채우면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되지. 미움을 너무 괄시하지 마라. 살다보면 그 미움이 너를 인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미움한테 미안하다 하지 말고 하루하루 조금씩 미움을 사랑해 보아라.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도저히 그 짓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냥 잊는 노력이라도 해 보아라. 하긴 사랑하기도 힘든데 잊는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지. 언젠가는 알게 될 거다. 미움은 사랑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지금 내가 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얘기를 너한테 하고 있구나.

[3]

나한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거나 이해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용서해 주면 마음에 박힌 미움이 사라질 것 같아서 용서를 해 주었는데 사라지기는커녕 더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냥 용서해 주면 되는 것을 용서를 도구 삼아 미움을 뽑아내려 했으니 그리 된 것이다. 어느 날 나에게 해를 끼쳤던 사람이 저 세상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했던가? 나는 내 발을 따라 문상을 갔다. 살아생전에 용서해 주었더라면 내 마음도 편했을 테고 그 사람도 편히 갔을 텐데 이제 와서 천만번 용서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미움 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핀다는 것을 함께 봐야 하는 건데…

[4]

어릴 때 쓴 글과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보면 별 차이가 없다.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낱말을 선택하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그렇게 생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렇다면 나의 생각이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말이군.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폐라는 울타리에 갇혀있는 내가 슬프기도 하다. 어릴 때 쓴 글이 창피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해서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지만 어제를 창피하다 여기면 오늘도 하제도 그리 될 것이기에 그냥 곱게 간직하도록 하였다. 생각이 다른 아이들을 나무라지 말고 눈높이로 사랑해 줘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5]

또 한 해가 저문다. 뒤돌아보니 목적도 없이 걸어왔구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이 또 헛되이 보냈구나. 새해의 다짐이 얼마 못가서 흐지부지 되는 것은 새해 기운이 일 년 동안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날마다 새날맞이 하면 한 해를 보내는 명분도 있고 새해맞이 할 명분도 있는 건데 새해 해돋이 한 번 본 것으로 일 년을 살 생각을 하였으니, 그래서 그렇게들 산과 바다로 줄지어 떠나는가? 사람이 백년 살면 새해맞이를 백번 할 수가 있지만 날마다 새날을 맞이하면 삼만 번 이상을 새롭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결국 마음산을 오르는 것이니 새해맞이 하러 굳이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날마다 새날맞이를 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

[6]

언제였던가, 봄내에 살고 있는 동무랑 대룡산 산행을 마치고 그 동무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아침이 되어 거실 유리창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거실에서 자고 있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보았다. 그때 멀리 궁둥이처럼 생긴 봉우리에서 황금빛 해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운 채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까 마치 산이 하늘을 향해 똥을 누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보니 산도 똥을 누는군.’

다시 자려고 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해를 바라보았다. 고새 봉우리에서 해가 떨어져 나갔다. 앉아서 보면 해인데 누워서 보면 똥이로구나. 그때 내 입에서 이상한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새날뫼!’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

‘아니다, 저것은 똥이 아니라 알이다!’

지금까지 해돋이를 여러 번 보았지만 이번처럼 산이 알을 낳는 광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 알을 내 가슴에 품어 부화를 시킨다면 나는 맑고 건강한 영혼을 지니게 되겠지.’

내 욕심이 너무 지나친 건가? 하지만 아무리 내가 그러고 싶어도 알을 품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냥 산을 바라보며 두 팔 벌리고 해를 맞이하면 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해의 빛깔이 연해질 무렵 나는 내 생각이 달아날까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횡재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처럼 아무 노력도 없이 거저 얻을 생각만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7]

우리 동네에 아주 작은 산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아침 일찍 그 산에 올랐다가 뜻하지 않게 해돋이를 보았다. 멀리 삼각산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큰 행운을 만난 것처럼 기뻤다. 낮은 산에서도 얼마든지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제야 비로소 해돋이를 보러 멀리 떠나려고 했던 마음이 참으로 어리석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문득 ‘새날뫼’라는 말이 떠올랐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세 해 만에 다시 떠오른 것이다. 그래, 그때 산이 알을 낳는 모습을 보았지. 그런데 ‘새날뫼’에서 ‘알’은 어디에 숨은 거지? 알 듯 모를 듯 아무리 생각해도 뜻풀이가 잘 안 되어서 나는 천천히 떠오르는 말들을 정리해 보기로 하였다. ‘새로운’, ‘날’, ‘산’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알’이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날’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날’을 풀어 보니 ‘나알’이 되었다. 그때 갑자기 눈이 크게 떠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맞다, 바로 여기에 숨었군.’

‘날’을 ‘나알’로 풀어보니 ‘나’와 ‘알’이 생겨났다. 비로소 ‘날’의 숨은 뜻을 알게 되었다. ‘나’와 ‘알’이 함께 해야 하루가 된다는 것. 그렇다면 ‘알’은 무엇일까? 아마 생각을 뜻하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몸뚱이로 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몸뚱이 더하기 생각이 있어야 비로소 나의 하루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새날뫼’보다는 ‘새나알뫼’로 하는 것이 맞다. ‘날마다 알을 품는 새로운 나!’, 이렇게 뜻풀이를 하고나니 저절로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때 떠오르는 풍경, 엉뚱하게도 거기는 내가 가본 적도 없는 티베트였다. 달라이라마의 빛이 내 마음에 닿는 순간이었다. 밤과 새벽 사이는 없다. 멀리서 날아온 빛이 어둠에 닿아 새벽이 되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새벽이 움텄다.

산에서 맞는 해돋이. 사진 픽사베이
산에서 맞는 해돋이. 사진 픽사베이

[8]

별을 보려고 일부러 하늘을 올려다 본 건 아닌데 우연히 별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별빛은 얼마나 먼 데서 날아왔을까? 이렇게 되면 우연이라는 말은 우리 인생에서 필요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먼 데 사는 달라이라마의 빛이 오랜 세월을 지나 내 마음에 닿은 걸 보면 사람의 마음도 별처럼 빛나는가 보다. 물론 매스컴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달라이라마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늘도 멀리 떨어진 태평양 외딴 섬이나 아프리카 깊은 산 속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의 빛이 내 마음을 향해 날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9]

큰딸아이가 자그마한 어항을 가져왔다. 어항 속에는 아주 작은 물고기 네 마리가 있었다. 시어머니가 손녀를 위해서 어항을 선물했는데 막상 아이가 물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딸아이가 시키는 대로 하루에 한 번 먹이를 주고 일주일에 한 번 물을 갈아주었다. 뜻하지 않게 물고기 노는 모습을 보니 생명이란 참 고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달이 못 돼서 물고기 한 마리가 죽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한 마리가 죽었다. 왜 죽었을까 생각을 해 보았지만 좀체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하루도 먹이를 거른 일이 없었는데 어인 일일까? 며칠 뒤 남은 두 마리마저 죽었다. 도대체 무엇이 저 물고기들을 죽게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깜짝 놀랐다. 물고기를 죽게 한 범인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나는 기계적으로 먹이를 주었을 뿐 고기에 대한 자비심은커녕 예뻐하는 마음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마음에 무자비가 들어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 무자비가 물고기를 죽였다고 생각하니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무자비’에서 ‘무’자만 빼면 ‘자비’인데 나는 그 쉬운 것도 모르고 여태껏 혼자 잘난 체하며 산 것이다.

[10]

산이 알을 낳는 모습을 본 뒤부터는 산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그냥 산에 올랐지만 이제는 알을 품기 위하여 오르게 된 것이다. 어떤 날은 제비뽑기를 하러 산에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은 알 속에 어떤 시간표가 들어있을까? 오늘은 무슨 생각이 나를 놀라게 할까? 내가 자비가 없는 사람이니 알 속에 자비의 씨앗이 들어있기를 바란 적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용서의 씨앗이 들어있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나쁜 생각하면 나쁜 알을 품을 것 같고 좋은 생각하면 좋은 알을 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나쁜 생각은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알 속에는 내가 모르는 생각과 나의 하루 시간표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알을 품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알을 품었다 해도 부화시키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내 인생의 하루가 그냥 사라지는 것 같아서 죄 지은 사람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실 알을 품는 것보다 알을 부화시키는 일이 더 어려웠다. 알을 잘 부화시키면 알 속에 들어있던 생각들이 내 마음에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면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자그마한 기쁨이 하늘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알을 부화시킬 때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되고 심호흡을 하게 된다. 스님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는 것도 알을 부화시키려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싶다.

[11]

달라이라마의 빛이 내 마음에 들어오고 나서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순천에서 학교 교장을 하는 벗을 찾아갔다가 뜻밖에도 달라이라마를 보았다. 벽에 걸린 사진에서 벗과 달라이라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달라이라마한테 인사를 시키려고 벗이 그 먼 곳까지 갔다 왔구나. 사진을 한참 쳐다보니 달라이라마가 나한테 자비와 용서의 씨앗을 건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메마른 마음에 도저히 그 씨앗을 움트게 할 자신이 없었다. 티베트가 중국에 속해있긴 해도 중국은 결코 티베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별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티베트의 독립을 꿈꾼다. 거기가 우리들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를 점령한 중국을 용서해 주는 것도 모자라 중국인들을 같은 형제라고 하는 달라이라마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경의를 표했다.

새나알뫼 새나알뫼

새나알뫼 새나알뫼

용서하세 용서하세

용서하세 용서하세

새나알뫼 새나알뫼

새나알뫼 새나알뫼

자비하세 자비하세

자비하세 자비하세

새나알뫼 새나알뫼

새나알뫼 새나알뫼

-「새나알뫼」, 2021

글 한둘/<홀로아리랑>,<개똥벌레>,<조율> 등의 작사·작곡가, 치유음악가.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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