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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더호프공동체의 모든 부서가 신나는 노동절 퍼레이드

등록 2021-05-20 08:44수정 2021-05-20 08:48

브루더호프 어린이집 기차행진.
브루더호프 어린이집 기차행진.

Happy May!

아침에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래층에 사는 두 살짜리 크리스티나가 엄마와 함께 작은 May 바스켓에 초코렛을 넣어 가지고 와서는 “Happy May!”하며 환하게 인사합니다. 잠시 후에 는 옆집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코너가 라일락을 담은 메이 꽃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는 우리 테이블에 놓습니다. 코너의 누나인 3학년 아니타는 봄 냄새가 물씬 나는 보라빛 꽃잎으로 예쁜 화관을 만들어서는 제 아내에게 선물했습니다. 오늘은 5월 1일 May day로 봄을 맞이하는 축제의 날 입니다. 크리스티나의 밝은 미소와 코너와 아니타의 정성스런 손길에 제 마음에도 꽃 피는 봄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메이 데이는 독일에서 봄을 맞이하고 악령을 쫓아내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축제로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5 월 1 일은 모든 독일 주에서 공휴일로 정해 곳곳에서 성대한 축제가 열립니다. 저희 공동체도 독일의 전통에 따라 해마다 5월 1일이 되면 메이 데이 행사를 엽니다.

올해는 노동자들의 퍼레이드로 메이 데이의 막을 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메이 데이 때 노동자들의 퍼레이드가 있을 것이라 광고를 하자 공동체 모든 부서들에서 다들 시끌벅적 아이디어를 짜느라 신이 났습니다. 드디어 퍼레이드가 시작 되었습니다. 메이플릿지 공동체 대표 비즈니스인 어린이 가구를 만드는 ‘커뮤니티 플레이띵스’ 에서 일하는 형제, 자매들이 트럭 뒤에 앉아 열심히 손을 흔들며 옵니다. 자세히 보니 특별히 공장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들 쇼파에 앉아서 열심히 손을 흔드시네요. 늘 열심히 일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박수 갈채를 보냅니다.

그 뒤를 이어 세탁소에서 일하는 자매들이 빨래줄에 옷들을 널어 놓고는

“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칼로리를 소비하고 있어요.”

“세탁실에 옷걸이를 가져오는 걸 잊지 말아요!”

“공동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생각하지 말고, 당신이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세요!”등등 재미 있는 피켓을 들고 퍼레이드에 참여합니다.

이곳 병원에서 일하는 팀들은 수레에 사람만한 인형을 만들어 눕혀 놓고는 링겔을 꽂고 행렬에 참여합니다. 그 뒤론 배관공 일을 하는 형제들이 자동차에 변기와 어떻게 만들었는지 사람 키만한 뚫어뻥을 전시하고 샤워 부스를 설치해 형제 한명이 샤워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 배꼽을 자아냅니다. 정말 공동체에서 없어서는 안될 형제들입니다. 그 뒤론 전기를 담당하는 형제들이 자동차 밴 위에 큰 스피커를 매달고는 따라 옵니다.

퍼레이드를 지켜보니 한가지 재미 있는 것은 어른들만의 퍼레이드가 아니라 아이들도 부모들의 직업에, 분장을 하고 함께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곳곳에 수선과 건축을 담당하는 매튜도 아이들을 밴에 태워 차 문에 아이들이 직접 만든 “우린 뭐든지 고칠 수 있어요.” 사인을 붙여 퍼레이드에 참여합니다.

메이플릿지 공동체 농사를 담당하는 던컨은 남자 아이들만 6명이 있는데 아이들 모두를 존디어 트렉터가 끄는 트레일러 태워 행진을 하는데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 뒤로는 동물 농장에서 젖소에서 우유를 짜는 형제, 자매들도 젖소 복장을 하고 행진합니다. 매일 우리에게 신선한 우유를 공급하는 고마운 팀입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팀들도 식당 광고로 트럭을 도배하고 소시지를 만드는 형제들도 만든 소시지를 나누어 주며 열심히 선전합니다.

형제 지간인 알렌과 조는 수제 맥주 만드는 것이 취미라 맥주 드럼통을 트렉터에 실어 아이들과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구두를 수선하는 대니 할아버지는 부인인 질 할머니와 함께 수선할 구두들을 수레에 달랑달랑 매달고는 수레를 끌고 행진하는 것이 참 보기 좋습니다. 발러리 할머니도 자신이 타는 전동 휠체어에 풍선을 매달고는 그 뒤를 따릅니다.

공동체 식당과 예배실,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자매들은 수레 위에 변기를 올려 놓고 인형을 만들어 변기를 닦는 모습을 재현하고서는 머리 위에 청소용 대걸레를 뒤집어 쓰고는

“우리가 생각하는 슈퍼볼은 변기 스스로 청소하는 것이예요”

“우리의 목표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고, 당신의 목표는 우리를 돕는 거예요!”라며 신나게 외칩니다.

이 외에도 소방차, 시설 관리하는팀등 행렬이 끝이 없습니다. 공동체에 이렇게 많은 부서들이 있다니 참 놀랍기만 합니다.

퍼레이드에는 학생들도 많이 참여를 했는데 고등학생들은 학교 버스에 마운트 아카데미 고등학교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 리본과 풍선을 매달고 학교 상징인 독수리를 가지고 “GO EAGLE”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여서 손을 흔들며 퍼레이드에 참여합니다. 중학교 2학년인 쉐인은 자신이 직접 만든 작은 자동차에 수레를 매달아 동생을 태우고는 할아버지가 하시는 엔진 수리를 선전합니다.

초등학교 5-6학년 남자 아이들도 자신들이 만드는 학교 잡지를 마이크를 잡고 열심히 선전합니다.

“그동안 미국인들이 기다리던 잡지가 왔어요.”

“더 이상 뉴욕 타임즈는 필요 없다구요!”

유치원 아이들도 꼬마 농부, 카우보이로 분장해 어린 양을 안고 마차를 올라 타서 신이 나서 행렬에 참여하고 어린이집 아이들도 드럼통을 잘라 만든 꼬마 기차에 타서 함께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이안 할아버지와 자넷 할머니입니다. 할아버지는 작은 트렉튀 뒤에 마차를 메달았는데 마차에는 할머니가 메이퀸이 아닌 코비드 퀸(19)이 되어 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패러디한 할아버지의 위트는 끝이 없습니다.

퍼레이드 처음부터 끝까지 형제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배꼽잡고 웃자 어느새 퍼레이드가 끝나고 모두들 잔디밭에 우뚝 서있는 메이폴(Maypole) 앞에 모여 메이폴 댄스를 시작합니다. 메이폴 댄스는 5월1일 메이데이에 하는 댄스로 독일에서 유래되어 인근 유럽과 영국에 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독일의 많은 사람들은 4월 30일과 5월 1일에 모닥불을 피우고 밤을 보내면서 자기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를 잘라 마을 중앙에 세워 여러 색의 리본을 다는데 보통 마을끼리 키가 더 큰 나무를 세우기 위해 경쟁하곤 합니다. 독일의 젊은이들은 이날 결혼하고 싶은 소녀의 정원에 화려한 리본으로 싸인 가지를 놓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가장 스릴 있는 부분은 마을끼리 다른 마을의 메이폴을 훔치는 전통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메이폴이 뺏기지 않도록 밤낮으로 세심한 감시를 해야 하는데 나무를 도난 당하면 다음날 훔쳐간 마을에게 상당한 양의 맥주와 음식을 나무 몸값으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놀라운 도난은 2004년에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인 Zugspitze에 박아 놓은 높이가 20미터가 넘는 메이폴을 몇몇 도둑이 헬리콥터를 이용해 가져간 것으로 이 일이 알려지자 메이폴 반환에 대한 협상으로 많은 양의 음식과 맥주가 밤새도록 자유롭게 흘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살던 비치그로브 공동체에서도 메이 데이 때 메이폴을 도난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날 청년들이 가장 긴 나무를 구해 땀을 흘리며 열심히 세웠는데 다벨 공동체에 있던 청년 두 명이 밤에 몰래 들어와 잘라버린 것 입니다. 며칠 후 메이폴을 자른 다벨 공동체 청년 두명이 비치그로브 공동체에 건너와 미안하다고 사죄하며 비치그로브 공동체를 위해 나무로 뚝닥뚝닥 포장마차를 만들더니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실 독일 전통대로 한다면 비치그로브에서 이 많은 것을 그들에게 제공해야 하겠지만 일부로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그랬는지 덕분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이곳 메이플릿지 어린이집에서도 할머니들을 초대해 키 작은 나무에 리본을 매달고 메이폴 댄스를 추는데 어린 아이들이 추는 춤이 귀엽기만 합니다.

메이폴 댄스는 여러 사람이 메이폴에 달린 리본 끝을 붙잡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춤을 추며 돌면 리본이 엮이면서 패턴을 만들게 됩니다. 메이데이 음악이 흐르자 어린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청년들의 손을 잡고 리본을 잡고 열심히 메이폴 주위를 돌며 춤을 춥니다. 여러 번에 걸쳐 춤을 추자 메이폴의 리본들이 아름답게 나무에 감겼습니다. 이제 이곳에서도 봄의 기운이 퍼져 올 한해도 푸르고 많은 열매를 맺는 해가 되길 기원하면서 오월의 노래를 불러 봅니다.

“ 오월이 여기 있네, 온 세상이여 즐거워하세,

대지도 미소를 띄며 그녀에게 인사를 하네

나무들과 들판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꽃들과 나뭇잎도 그녀를 만나려 달려오네.

행복한 오월, 즐거운 오월

겨울의 지배는 지나갔다네

행복한 오월, 즐거운 오월

겨울의 지배는 지나갔다네 ……”

박성훈/브루더호프 공동체 형제(미국 메이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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