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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내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등록 2021-05-27 07:55수정 2021-05-27 08:01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1.

어렸을 적,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보는 시간이면 이다음에 커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친구들은 꼭 있었다. 나는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기는커녕 콧구멍 한번도 벌름거리지 않았는데 크고 나니 이따금 대통령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내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해변에서 폭죽놀이 엄격금지! 어선에서 버려지는 해업쓰레기 강력단속 및 규제! 비닐봉지 유료화, 유통되는 모든 비닐은 생분해 성분! 건강보험료 기준 재조정! 18세부터 투표권 부여, 80세 이상 투표권 말소! 등등…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는 대통령의 꿈.

이런 꿈을 이야기하면 대통령이 웃을까? 그러면 나는 ‘웃을 일이 아니고 울 일이에요.’라고 말해야지. 그리고 같이 울고 웃었으면 좋겠는데…

2.

어디까지가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고

어디서부터는 내 주장인 것일까.

얼마만큼이 나의 생각이고

얼마만큼이 나의 아집일까.

어느 만큼이 감정의 표현이고

어느 때부터 징징거림이 되는 걸까.

도통 모르겠어진다.

도통. 도통. 도통.

3.

몹시 당혹스런 상황 앞에서 가장 먼저 든 대처방안이 ‘회피와 도망’이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두손두발 다 들었다.

물론 그것을 아는 사람은 나 뿐이지만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이틀 밤잠을 설쳤다.

다른 이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처럼 마음이 불편해서 혼이 났다.

4.

언제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 뿐이구나.

쥐어짜내도 다른 게 없었다.

마지막이 아니라고 여기며 살아서 이렇게나 험하고 험난한 걸까.

5.

나의 기죽은 마음은 언뜻보면 차분함처럼 보일 때가 있다.

부디 내가 속지 말아야 할 텐데…

6.

룩이(우리 개)는 헛짖음이 없다. 사람으로 치면 허튼 말이 없을 테지.

룩이가 짖으면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알만한 이유도 있고 가끔은 알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룩이가 짖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이 드니 짖는 일에 큰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저 ‘짖을 일이 있으니까 짖겠지.’ 한다.

개가 짖던 말던 상관치 말자는 다짐도 무관심도 아닌 허투루 짖는 일은 없다는 생각과 신뢰.

<신뢰>라니…

자주 쓰이는 단어인데도 갑자기 본 것처럼 놀랍다.

어머나, 어떻게 이런 게 세상에 다 있을까.

무형인데 뜨거워!

7.

배회하고 싶은 기분.

산책도 드라이브도 아닌 배회를 하고 돌아온다. 멀리멀리 느리게 돌아서 집으로 돌아. 왔다.

산책처럼 걷고 드라이브처럼 차를 몰아도 그것이 배회였다는 걸 나는 안다.

속일 수 없기도 하지만 때론 속고 속이기가 쉬운 나 자신.

8.

지는 해.

노을을 보면 고개를 쳐들던 마음이 잠시나마 흐물거린다. 잘난 줄 알고 산 하루가 머쓱해진다. 그래서 서해에 사는 것이 더 좋았다.

아무래도 좋다. 서해가 아니라도. 다만 이따금 한 번씩 노을을 바라보지도 않고 생활한다면 나는 얼마나 더 반성을 모르는 인간이 될까…

반성이라는 것도 뭘 알아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진짜로 아는 게 없어서 큰일이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9.

아마 반 평 쯤 될법한 작업실에 붙은 쪼그만 테라스에 참새처럼 작은새 한마리가 죽어있었다. 매우 깨끗한 모습으로.

처음에 보곤 놀라서 가만히 보고만 있는데 바람이 불어서 작은새의 작은 깃털이 흔들렸다.

‘우리집 마당과 텃밭, 뒤뜰까지만 보아도 이백 평도 넘고 그 뒤로 바로 이어지는 뒷산까지 본다면 네 세상은 제법 넓은데. 어떻게 요 코딱지만한 반 평짜리 테라스 위에서 잠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는 외출하려고 나서는 중 마당에 작은새가 죽어있는 걸 발견한 적이 있다.

작년엔 아랫집 개 때지가 침을 질질 흘리고 절룩거리며 우리집 마당에 찾아왔던 일, 두텁이가 죽을 걸 처음 발견하고는 집으로 달려와 소식을 전했던 일.

또, 재작년엔 마을 앞 도로에 이웃집 개, 장사가 죽어있는 것을 본 짝꿍이 삽을 가져가서 근처에 묻어 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제껏 만난 죽은 동물들은 모두 짝꿍이 묻어주었다.)

동물들이 마지막 순간에 우리집에 와서 죽는 일, 우리 눈에 띄어주는 일들이 축복과 사랑 같아서. 꼭 그런 것 같아서.

10.

경칩에 깨어난 개구리가

논으로 풍덩하는 소리를 듣는 입춘.

뭉클한 밤산책.

11.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마음만 닮아 손대지 못하던 그림을 마주하고 만졌다. 더 멀어졌는지. 더 가까워졌는지.

그 두 가지가 같이 일어날 수도 있는지…

12.

우리가 서로에게 내는 마음보다 서로가 아닌 이들이게 내는 마음이 더 너그러울 것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봐주기가 가장 어렵고 각박한 것처럼.

13.

정성을 들이는 것과 시간을 쓰는 것.

정성과 시간은 종종 ‘같다.’

14.

객관적으로 보면~ 이라는 웃긴 말.

이 말이 붙으면 웃기기만 하고 재미나 즐거움은 없다는 걸 잠시나마 깨닫는다.

개개인들이 모여 객관을 말하다니 얼마나 웃긴지 몰라.

15.

대보름

훤한 달빛에

반짝이는 동백 잎사귀들

윤기가 자르르르르르

16.

나도 모르게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했음을 눈치채었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흉을 보아 버렸다는 걸 눈치채었다.

후회할 일들과 후회스런 말들.

다음날의 나는 어쩌면 좋아?

17.

과거는 사라지지도 지나가지도 않았고 ‘그대로’ 있다.

그 때에, 그 시간에. 거기에 모두 그대로 있다.

단지 나는 ‘여기’에 있을 뿐이고, 나는 ‘지금’에도 있고 또 ‘저기’에도 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억이라고 부를법한 것이 떠오를 땐 이다지도 생생하고 낱낱이 그대로 떠오르는 것인가봐.

그대로 있구나… 그리고 또 그뿐이구나.

그리로 갈 필요가 있을 때만 가자.

아니라면 어서 여기에 있자.

18.

달은 있지만 ‘달빛’이라는 건 없구나!

‘밤의 햇빛’이 있는 거구나!

(달은 스스로 발광하지 않고, 해가 달을 비춘다는 현재 정보의 전제에서)

언뜻보면 말장난 같아도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라 밤산책 내내 흥분했다.

달은 있지만 달빛은 없어요~

달이 빛나도 달빛은 없어요~

룰루랄라 룰루랄라~

19.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위로 오르는 굴뚝의 연기와 담배 연기를 보며 즐겁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비를 맞아도 연기는 비를 맞지 않는다니 어머 신기해라. 어머어머 정말 신비해.

20.

계획과 즉흥이 공존하는 생활이 좋다.

그런 면면들을 나에게 엿보일 때에는 아 좋다.

글 짜잔/순천 사랑어린마을공동체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마을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만드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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