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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시대 혜월선사의 재테크를 생각한다

등록 2021-06-06 17:35수정 2022-06-26 21:23

혜월 선사의 재테크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해남 대흥사 소속의 작은 암자에 머물고 있었다. 암자의 살림은 매우 곤궁했다. 그 암자는 신심이 깊은 어느 서울 불자가 사재를 보시하여 만들었다. 창건주는 수행하는 스님의 최저 생계를 위해서 몇 마지기의 논을 암자 이름으로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그 논을 경작하고 있는 분이 얼마간의 사용료를 해마다 쌀이나 돈으로 지불하고 있었다.

암자의 소임자로 들어간 첫 해 가을, 경작자는 사용료로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왔다. 막상 앞에 펼쳐든 돈을 보니 몹시도 불편했다. 그는 비바람과 뙤약볕을 감내하면 농사를 지었을 터였고, 나는 단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손발 한번 움직이지 않고 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지주가 되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먼저 차와 과일를 대접했다. 그리고 조금은 긴장한 그분과 농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암자가 소유한 논의 소출량도 넌지시 물었다. 암자의 전임자가 계약한 금액대로 납부 영수증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십만원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드렸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일하지 않고 거저 받아야 하는 심정이 그리 편할 수는 없었다.

불로소득은 사회의 공정한 질서를 위해서 바람직 하지 않다. 그리고 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내가 노력한 만큼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많은 대가와 결과를 바라는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것도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좋지 않다. 이른바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대박’을 꿈꾸는 풍조가 염려된다. 매우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며 하루 아침에 어마어마한 돈을 꿈꾸고 있다. 이런 사회 풍조에서 문득 바보스런 재테크를 한 어느 한 사람이 떠 오른다. 절집에서는 그를 천진도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개간 선사’라고도 부른다. 그의 법명은 혜월(1862~1937)이다.

그는 평생 동안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생활을 실천하였다. 가는 곳마다 불모지를 개간하여 논밭을 만들었다. 그래서 ‘개간(開墾) 선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혜월 선사는 매우 천진하고 자비심이 넘쳤다. 까치와 까마귀 등 산새들이 날아와 혜월의 몸에 앉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1921년 61세의 혜월은 부산 금정산(金井山) 선암사(仙巖寺) 주지를 맡았다. 이때에도 그는 산지를 개간해 논을 만들려고,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팔아 그 돈으로 일꾼들을 고용해 밭을 일구었다. 이때 일꾼들이 그의 설법에 정신이 팔려 일이 진척되지 않아 겨우 자갈밭 세 마지기를 개간했을 뿐이었다. 이에 제자들이 불평했다. “다섯 마지기를 팔아 겨우 세 마지기를 만들면 손해가 아닙니까” 이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자갈밭 세 마지기가 더 생겼으니 좋지 않으냐”

혜월선사
혜월선사

또 내원사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대중들과 함께 몇 해에 걸쳐 황무지 2,000여평을 개간하여 논으로 만들었다. 이를 욕심내는 마을 사람의 요청에 따라 그 가운데 세마지기의 논을 팔게 되었다. 그런데 겨우 두마지기 값만 받고 팔았다. 그러자 제자들이 힐책하였다. 이때도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논 세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여기 두 마지기 논값이 있으니, 논이 다섯 마지기로 불어버렸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도 많으냐! 중의 장사는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혜월 선사의 재테크는 늘 이러했다. 그에 비해 우리들의 재테크는 어떠한가? 노력하지 않고 돈을 원한다. 노력한 만큼의 마땅한 돈을 원하지 않고 넘치게 원한다. 주택, 부동산, 가상화폐, 이런 것들을 놓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대박을 꿈꾼다. 단순 상식으로 묻는다. 땀 흘리지 않고 뭘 원하는 게 맞는 일인가? 노력한 이상으로 과도하게 뭘 원하는 게 맞는 일인가?

글 법인 스님/실상사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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