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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브루더호프공동체는 새들도 공동체원들이다

등록 2021-06-10 20:00수정 2021-06-10 20:01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자가 새를 본다

유빈이가 촬영한 새
유빈이가 촬영한 새

망원경으로 새 관찰
망원경으로 새 관찰

“엄마 내일 아침 6시에 깨워 주세요” 유빈이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내일은 일요일인데? 늦잠꾸러기가 왠일이냐?”

“내일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허드슨 강가에 새를 보러 가기로 했으니 꼭 깨워주셔야 돼요.”

새 관찰하는 것이 뭐가 그리 좋길래 늦잠도 안자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나가는지 저도 한 번 마음먹고 아이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망원경을 목에 걸고 새가 놀라 도망가지 않도록 조용히 다가갑니다. 허드슨 강가엔 주로 오리 떼가 많이 오는데 종류가 뭐가 그리 많은지 아이들은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네요.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늘 새 관찰을 해서 그런지 새들의 이름뿐 아니라 날개 색에 따라 숫컷인지, 암컷인지(보통 새들은 수컷이 암컷보다 화려합니다), 1년이 채 안된 어린 새인지, 다 성장한 어른 새인지 구별을 잘 하네요. 이른 아침 시원한 강 바람을 맞으며 새를 관찰하는 것도 좋지만 난 그래도 일요일 아침 늦잠 자는게 더 좋아 그 이후론 같이 따라 나서지 않았지만 새를 관찰하는 유빈이의 열정은 끝이 없어 일요일만 되면 새 관찰을 좋아하는 공동체 형제 자매들을 따라 길을 나서고 망원경을 들고 수시로 숲과 연못가를 배회하며 새 관찰을 즐기고 기회가 되는 대로 새 사진을 찍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새 관찰을 취미로 하는 형제 자매들의 발길이 바빠집니다. 아직 푸른 잎이 나무를 무성하게 덮지 않을 때가 새 관찰하기에는 딱 좋은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메이플릿지 학교에서도 복도에 아이들이 관찰한 새 이름을 적는 리스트가 있어 매일 아침 아이들이 자기가 그날 새로 본 새들 이름을 적어 넣느라 신나합니다.

“난 오늘까지 98가지 종류의 새를 보았어”유빈이가 친구에게 말하면

“난 102가지 종류를 보았지.”하며 서로 경쟁하는 것도 이 맘 때 하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한국에서 참새와 비둘기, 그리고 까치 정도만 봤던 아내도 하루는 새 관찰을 즐기시는 애나리자 할머니를 따라 나섭니다. 숲에서 새를 관찰할 때는 주로 새들의 울음 소리에 기울여야 합니다. 새들의 울음 소리로 어떤 새인지 분간할 수 있으면 새를 찾기가 더 쉽습니다. 새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라 가면 쉽게 새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 울음소리를 분간할 정도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없이는 안되지요. 애나리자 할머니는 버튼을 누르면 새의 울음 소리를 들려주는 책을 가지고 계시는데 새가 울음을 그치면 그 새의 버튼을 눌러 울음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러면 숲에 있던 새가 동료 새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다시 울기 시작해 새를 찾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가끔 그 소리가 오히려 방해가 돼 멀리 달아나 버리는 경우도 있어 남용은 금물이라네요.

새 소리에 문외한인 저 같은 사람에게도 가끔 행운이 찾아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타 할머니가 숲을 걷다 회색 부엉이 새끼를 발견하자 3-4학년 아이들이 할머니를 따라 숲으로 가는데 저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다행히 아직도 나무 위에 부엉이가 앉아 있네요. 새끼라고 해도 몇 개월이 지나 등치가 아주 큰 부엉이 입니다.

부엉이를 봐서 마음이 행복해져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린이집 처마 밑에서 어린 아이들이 지붕 쪽을 쳐다봅니다. ‘뭐가 있길래 그러지’하며 나도 눈을 위로 돌리니 처마 밑에 울새인 로빈이 둥지를 만들고 그 위에 앉아 있습니다. 로빈이 먹이를 찾으러 날라간 사이에 지붕위로 올라가 틈새로 둥지 속을 보니 말로만 듣던 예쁜 파란색의 알이 4개가 있습니다. 그 이후로 어린이집을 지날 때마다 둥지를 보면 엄마 로빈이 꿋꿋하게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어느 날 다시 보니 그 사이에 4마리의 로빈 새끼가 태어나 둥지에서 먹이를 찾으러 간 엄마새를 기다리고 있네요. 다음날 다시 가보니 어미새가 입에 먹이를 물고 새끼 로빈에게 가까이 오니 새끼들이 갑자기 입을 쫙 벌리며 먹이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 한국에서 보던 동물의 왕국 다큐멘타리를 보는 것 같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얼마 후 다시 가보니 둥지가 텅텅 비워 있네요. 이젠 아기 로빈 새들도 자유롭게 날아 둥지를 떠났습니다. 이곳 분들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모두 부모 곁을 떠나면 ‘텅빈 둥지’라고 표현을 자주 하시는데 정말 텅빈 둥지란 말이 실감이 납니다.

이렇게 지붕 밑에 심지어는 현관 앞 선반 위의 신발 속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가 자라는 것을 지켜 보는 재미도 솔솔하지만 새들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새집을 만들어 나무나 기둥에 거는 것도 이곳 사람들의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다비드 할아버지는 청동색의 푸른 빛이 도는 퍼플 마틴이라 불리는 제비를 위해 이 새가 좋아하는 새들의 아파트 같은 특별한 집을 짓고 새집에 확성기를 달아 퍼플 마틴의 울음 소리를 틀어 놓고 해마다 몇 마리의 새들이 돌아오는지 계수하십니다. 이안 할아버지는 매년 수 십 개의 새집을 만들어 가로수에 매달아 놓는데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새집으로 파랑새가 열심히 짚을 날라 둥지를 만드는 것이 보입니다. 아이들 역시 작년 가을에 기른 박에 동그란 구멍을 뚫고 예쁘게 색칠해 나무에 걸고는 새들이 둥지를 틀기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저렇게 새를 사랑하는 이곳 형제들의 열정을 못 따라 가는 저 같은 사람도 나름대로 쉽게 새를 관찰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새집을 집 가까이에 설치하는 것입니다. 옆집에 살던 스티브 할아버지는 거실 앞 베란다에 아예 넓은 판자를 설치해 새 먹이를 놓으니 온갖 새들이 착륙해 먹이를 먹는 새들의 공항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에도 그 전에 살던 형제가 우리 집 창문 밖에 새집을 설치했는데 너무 낡아서 2년전 크리스마스때 새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새집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뚝딱뚝딱 멋있게 잘도 만들던데 직접 해보니 각도를 맞추어 만드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네요. 결국은 옆집 형제가 만든 것을 가져다가 그대로 복사해 만드니 근사한 새집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 새집은 벽에 못으로 박지 않고 창문틀 틈새로 끼워 넣어 이동과 청소가 편리하게 되어 아내가 무척 좋아하네요.

새집에 아침에 먹다 남은 빵 조각이나 야생 새들을 위한 씨앗들 넣어주니 파란 날개에 검은 색이 줄이 그어진 블루제이, 노래 소리가 청아한 작고 귀여운 캘로라인 렌, 카톨릭 추기경이 입는 빨간 망토를 연상케해 추기경이란 이름을 가진 빨간색 카드널, 머리를 쫑긋이 세운 팃 마우스 새들이 몰려 듭니다. 특별히 겨울엔 소기름을 망에 넣어 달아놓으면 지방이 필요한 딱따구리들이 바로 찾아와 기름을 쪼아 먹습니다. 이 새들은 일년 내내 집 주위를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 갔다가 꽃피는 봄이 되면 이곳으로 다시 찾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는 특별한 새들을 보는 기쁨만큼 비교할 것이 없습니다

해마다 5월 1일이 되면 아내는 오렌지를 잘라 새집 기둥에 걸어 놓습니다. 밝은 오렌지 빛 나는 오리올 새를 보기 위해서 입니다. 이 새는 과일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오렌지를 좋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신기하게도 5월 1일 오렌지를 걸자 마자 그 날 창 문 밖으로 빛나는 오렌지 빛의 오리올 새가 오렌지를 먹으러 우리 집 창가 새집으로 날아 왔습니다. 찬란한 오렌지 빛에 눈이 부시기까지 합니다. 유빈이가 잽싸게 사진기를 가져와 멋진 사진을 남겼네요. 어떤 날은 두 마리씩이나, 정말 대박입니다. 며칠 후엔 하얀 몸에 장미빛 가슴을 가진 Rose breasted grosbeak(붉은 가슴 밀화부리) 새가 날라 왔습니다. 새색시 마냥 장미빛 가슴을 하고는 패션쇼 하는 모델처럼 빙글빙글 돌며 한참을 우리 새집에 머물다 가는 동안 유빈이가 또 다시 찰칵! 같이 일하는 형제에게 이 새가 우리 집에 왔다고 하니 자기는 2년동안 못 봤다며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큰 대박은 인디고 번팅 새입니다. 인디고 블루 빛을 내는 인디고 번팅 새는 숲에서만 볼 수 있어 저도 운 좋게 마틴 할아버지를 따라 숲에 갔다가 멀리서 망원경으로 한번 봤을 뿐인데 이 멋진 새가 어느 봄날 우리 새집에 찾아와 먹이를 먹고 가더니 계속 찾아 옵니다. 우리 층에 사는 모든 아이들이 살금 살금 우리 거실 창문 가까이 와 숨죽이며 푸른 빛의 인디고 번팅을 지켜 봅니다. 이런 특별한 새들을 바로 코 앞에서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로토 맞은 기분으로 하루 종일 싱글벙글해지고 다른 형제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습니다.

봄날에 찾아오는 새 중에서 위의 새들처럼 특별하지는 않아도 새끼 손가락처럼 아주 작고 귀여운 새가 있는데 바로 허밍버드(Humming bird, 벌새)입니다. 허밍버드는 가장 작은 철새로 다른 새들처럼 무리로 이동하지 않고 한번에 최대 500마일까지 혼자 여행합니다. 이 새는 뒤로 날 수 있는 유일한 새로 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서 허밍버드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허밍버드는 꽃의 넥터를 빨아 먹는데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루비아 꽃에 허밍버드가 앉아 꿀을 빨아 먹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허밍버드는 이곳 동전인 니클 보다 가볍고 초당 약 13번 혀를 안팎으로 움직여 꿀을 마셔 하루에 체중을 두배로 늘릴 수 있는 알수록 재미있고 신기한 새입니다. 이 허밍버드를 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빨간 꽃모양 받침을 한 플라스틱 통에 설탕물을 넣어 새를 유인하는 방법입니다. 이때 설탕과 물의 비율은 3:1로 해야 합니다. 설탕을 너무 많이 넣으면 허밍버드의 건강을 해치기 됩니다. 아내가 설탕물을 만들어 빨간 꽃모양 플라스틱 통에 넣어 걸어 놓으니 바로 윙윙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고 귀여운 벌새가 날아옵니다. 이 놈은 자기의 영역 구분이 철저해 다른 놈이 꿀물을 먹으려고 하면 대번 싸움이 일어납니다. 재미 있는 것은 자신이 먹지 않아도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다른 놈이 오면 바로 잽싸게 날아와서 쫒아버리는 것이 아무래도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는 우리 조상들의 넉넉한 마음을 배우도록 한국에 귀향이라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주말 오후 몸이 나른해져 방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데 새들의 노래소리가 들립니다. ‘저건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것이 Cat bird고, ‘피터 피터’ 하며 부르는 것은 팃 마우스 새이고, 구슬피 우는 저 새는 슬피 운다는 뜻의 Mourning dove고…. , 잠깐 잠을 청하는 사이 웬 놈의 새들이 이렇게 많이 와서 잠을 방해하나’ 하고 창문 밖을 보니 글쎄 이 모든 새의 노래 소리는 ‘조롱하다’라는 뜻을 가진 마킹 버드(Mocking bird)의 소행이었네요. 이 마킹 버드는 수십 마리의 새의 울음 소리를 흉내 낼 수 있고 심지어 개나 사이렌의 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고 하니 참 놀랍기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원제목은 ‘To kill a mocking bird’로 변호사인 애티커스가 아들 스카우트한테 ‘마킹 버드를 죽이는 것은 죄란다. 왜냐하면 이 새는 단지 자기의 노래를 불렀을 뿐이지 다른 사람들을 결코 해하지 않는 때문이다’라고 한 대목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도 내 단 잠을 설친 마킹 버드를 용서해야겠지요.

이곳에 와서 수 많은 새들을 보며 한국에 있는 새들이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새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어 잘 몰랐는데 그 때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것이 이제와 후회가 됩니다. 3년전 큰 아들 하빈이와 한국을 3주간 잠깐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하빈이는 한국의 새에 관한 책을 이곳에서 구입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 하빈이는 가는 곳 마다 망원경을 가지고 가 새로운 새들을 발견할 때마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한국에 살았으면서도 대부분 생전 처음 보는 새들이네요. 참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저도 어떤 새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 봐야겠습니다.

새 관찰을 좋아하는 드와이트 선생님에게 왜 새 관찰을 하냐고 물었더니 새를 관찰하다 보면 자연의 놀라운 신비에 대해 저절로 경외감이 들면서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감사함이 생긴다고 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자연을 사랑한다면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고 말한 ‘초원의 집’ 작가 로라 잉걸스의 말처럼 내 마음에도 새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채워 세상 어디를 가든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날들만 가득하길 소원해 봅니다.

글 박성훈/미국 부르더호프공동체 메이플릿지 공동체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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