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자신의 침묵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낸다면, 두려움 없이 당신 마음의 홀로 있음 속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진다면, 그리고 외로운 이들과 더불어 그 고독을 나누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면, 당신과 하나님은 모든 진리 가운데서 한 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잇는 능력과 빛을 되찾게될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의 물음에 누가 이처럼 명쾌하고 용기 있게 답할 수 있을까. 이 시대가 낳은 세기의 영성가 토머스 머튼(1915~68)이다. 머튼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교황청은 수도사인 그에게 ‘관상적 삶의 의미에 관해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를 작성하는데 협력해 달라’며 그의 지혜에 손을 내밀었다. 이 글은 그가 교황청 관계자에게 곧바로 보낸 개인 서한이다.
요즘 서양에서도 가장 지혜로운 인물로 간주되는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가장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눈 인물로 꼽을만큼 동서양을 넘나든 현자였던 그의 삶과 영성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기도의 사람 토머스머튼>(청림출판 펴냄)이다.
머튼은 프랑스에서 화가인 양부모에게서 태어났으나 어머니는 6살에, 아버지는 16살에 세상을 떴다. 대부분이 일찍 부모를 여읜뒤 삶과 죽음을 고뇌하면서 출가한 우리나라 고승들의 궤족을 닮아 있다. 컬럼비아 대학시절 젊은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중세 스콜라 철학에 심취하는가하면 불교 승려와 교분을 맺기도 한 그는 26살이던 1942년 옷가지들을 하렘의 흑인들에게 나눠주고 겟세마니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된다.
머튼은 1948년에 자신의 영적 여정을 담아 펴낸 자서전 <칠층산>으로 일약 국제적인 명사가 되었지만, 세속적 명망은 그의 비움과 침묵을 훼손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안다. 하지만 어떻게 위험을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한 위험이 내게서 빼앗아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두렵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을까봐.”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길까봐 두려움에 떨 때 머튼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침묵과 가난과 ‘홀로 있음’의 축복을 즐겼다. 따라서 모든 인간과 자연이 그에게 이르러서는 하느님과 다름이 없었다.
“홀로 있음은 내가 건드리는 모든 것들이 기도로 바뀌는 곳이며, 하늘이 나의 기도가 되고, 새들이 나의 기도가 되고, 나무에 스치는 바람도 나의 기도가 되는 곳이다. 하느님은 그 모두시니 말이다” 김기석 옮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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