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휴심정 좋은글

군림하는 종교는 구라다…참회하고, 겸허해라

등록 2009-07-29 10:53

인간 내면의 성찰기능 긍정하지만…

‘성전’은 권력처럼 ‘밥줄 싸움’이다

진리의 선교 목적은 눈속임일 뿐

 

어떤 거인이 한 우리 안에다가 미국인, 러시아인, 일본인, 독일인을 넣었다. 잠시 후 그들을 꺼내보니 얼굴, 팔, 다리 등 신체가 성한 곳이 없었다. 그 거인은 이런 모습이 재미있어서 다음엔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교인, 불교인 등 종교인들을 역시 같은 우리에다 넣었다. 어떻게 되었나 보려고 문을 열어보았더니 한 사람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종교는 구라다>에서 지은이가 든 예화다. ‘구라성 예화’임엔 틀림없지만, 십자군 전쟁이나, 유럽의 종교전쟁, 마녀사냥,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등 종교인들이 타자들을 학살한 처참한 역사적 사실을 엄밀히 따져보면 이를 ‘구라’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지은이는 송상호 ‘목사’다. 2001년부터 경기도 안성시 일죽에서 청소년쉼터를 운영하다가 2004년부터 안성 금광면의 시골 흙집에 살며 <오마이뉴스>와 <뉴스앤조이> <당당뉴스> 등에 글을 쓰고 있는 논객이기도 하다. 같은 기독교 목회자로서 서구 기독교의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낸 조찬선 목사의 <기독교죄악사>만큼 충격적이진 않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처절한 자성적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어려서부터 가난으로 배를 곯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고등학교를 1년 만에 중퇴한 지은이는 신발공장, 의자공장, 식당을 전전하다 군대에 갔는데 그 시절 집이 붕괴돼 어머니를 여의는 아픔을 겪은 인생살이만큼이나 치열한 ‘진리 실험’을 담아냈다. 일면식도 없는 그의 원고를 받아든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삭개오작은교회 목사와 ‘탁발순례’의 도법 스님이 ‘추천의 글’을 쓸 마음을 냈다. 기독교와 불교의 명사들이 그의 글을 단지 구라로만 여기진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 목사가 말한 대로 “종교에 종사하는 분들, 그중에서도 기독교 지도자들과 ‘복음주의적 정통교회’에 다니는 신도들에게는 각별한 인내심이 요청”된다. 자신의 종교를 가장 성스럽고 숭고하게 여기며 이를 위한 선·포교를 지상 최고의 선행으로 여기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을 가장 참을 수 없게 하는 것은 그런 성전(聖戰)들이 모두 ‘밥줄 싸움’이라는 분석일 성싶다.

 

지은이는 “서양의 식민지 정복 역사의 선두에는 항상 기독교가 있었는데, 영국도 프랑스도 스페인도 독일도 한결같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침략과 살생의 전진이 무엇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들은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가 절대적 진리이며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이기에 목숨을 걸고 거짓의 다른 종교를 물리치고 하느님의 땅을 확장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것은 바로 세력 확보의 문제였고, 영역 확대의 문제였으며 밥줄의 문제였고 생존경쟁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종교와 권력은 쌍둥이”라고 본다. 속세에서 ‘성공’한 종교가 ‘훌륭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고, 권력의 속성을 아주 기가 막히게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데도 사람들이 종교에 기대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친숙한 대상이나 문제에 대해선 두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 대상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나 정보나 감각이 없을 때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면서도 여전히 왕성한 선교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코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으며, 만일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모두 다 알고 있다면 지금의 기독교는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가 사라져야 한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지은이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했던 마르크스와 종교를 ‘집단적 망상’이라고 말했던 도킨스의 견해를 수용하면서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종교무용론’엔 특히 그렇다. ‘모든 종교는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다’는 ‘구라적 요소’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종교로 전락하는 ‘종교적 역기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파스칼의 말처럼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근본적 해답과 안전을 제시해왔던 것도 종교라는 게 지은이의 견해다.

 

지은이는 카를 융의 말대로 종교가 인간의 분열된 자아와 균열된 의식과 무의식을 재통합하고 치유하여 온전한 자리로 개성화해 나가는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천 명에겐 천 명의 종교가, 만 명에겐 만 명의 종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종교는 존재의 깊이, 거룩의 높이를 제시해 주는 매개체인 것이지 종교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니다’라는 폴 틸리히의 말처럼 겸허한 자리에 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휴심정 많이 보는 기사

두번째 화살을 맞지않으려면 1.

두번째 화살을 맞지않으려면

홀로된 자로서 담대하게 서라 2.

홀로된 자로서 담대하게 서라

착한 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3.

착한 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천도재도, 대입합격기도도 없는 사자암의 향봉스님 4.

천도재도, 대입합격기도도 없는 사자암의 향봉스님

고통이 바로 성장의 동력이다 5.

고통이 바로 성장의 동력이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