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민다나오 등 제3세계 오지에 85개 학교 손수 짓게해
자재만 내놓고 나머지는 자체 해결 이끌어 주민이 주인으로
▲법륜스님과 제이티에스가 인도의 불가촉천민촌 둥게스와리에 지은 수자타아카데미
필리핀 민다나오의 정글 알라원에서 구호단체 제이티에스(JTS) 법륜 스님과 원주민들이 마주앉았다. 큰길에서 무려 18km나 정글 숲을 들어와야 하는 이곳까지 온 한국의 구호활동가가 무슨 선물 보따리를 내놓을지 원주민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그가 수천 년간 문맹 속에 살아온 오지 마을 여기저기에 학교를 짓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그가 이 오지에도 얼마나 멋진 학교를 지어줄 지 원주민들의 눈길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런에 법륜 스님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이곳에 학교를 지으면 누구 아이들이 공부를 하나요?”
“…”
원주민들이 말이 없자, 법륜 스님이 다시 물었다.
“제 아이가 공부하나요?”
“아니요. 저희 아이들이 공부하겠지요.”
“그렇지요. 저는 출가자입니다. 장가도 안갔고, 아이도 없어요. 여기서 공부할 아이들은 바로 여러분들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므로 학교도 여러분의 손으로 지어야합니다.”
법륜 스님은 여기서 공부해 혜택을 볼 아이들은 제 아이가 아니라 여러분의 아이이므로 자기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학교를 지을 땅도 내놓으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학교를 지을 뜻이 있다면 벽돌과 자재는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원주민들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자신들이 마음을 내지않는다면 아이들도 영영 까막눈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알라원에서 5~12살 어린이 70명 가운데 글자를 깨친 이는 한명도 없었다. 감자 몇알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이 자식 공부를 위해 정글 밖으로 자녀를 유학시킬 수도 없었다. 글조차 모르니 이 아이들은 커도 자신들처럼 일당 몇천 원짜리 날품팔이 외엔 벌어먹고 살 길도 막막할 것이 분명했다.
한 원주민이 아이들을 공부만 시킬 수 있다면 자기 땅을 내놓겠다고 나서자, 다른 주민이 자기도 땅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 부지가 마련되자, 법륜 스님은 “여러분의 손으로 직접 학교를 지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럴 뜻이 없다면 그냥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원주민들은 “자재만 대주면 우리 손으로 학교를 짓겠다”고 했다.
그 때부터 제이티에스가 마련한 벽돌을 나르는 노역이 시작되었다. 온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이 무려 40~50리 정글 숲 안으로 벽돌 한장 한장을 날랐다. 그렇게 1년 동안 헌신한 끝에 5년 전 알라온부족학교가 세워졌다. 그렇게 피땀을 흘려 지은 학교는 법륜 스님이나 제이티에스의 학교가 아니라 자신들의 학교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토록 고생해 지은 학교에 애착을 보였다.
민다나오는 수백년 동안 스페인과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기에 서구의 구호물품도 적지않았다. 하지만 구호단체가 지은 어떤 건물도 끝내 구호단체의 것이었을 뿐, 그들의 것은 되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이 실린 건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법륜 스님은 무엇인가를 주기보다는 그들의 내면의 힘을 끌어냈다. 무엇가를 주고,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을 지어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고싶은 가진 자의 욕구를 벗어놓고, 땀내나는 현장에서 그들과 만나고, 그 속에서 그들 자신이 그 땅과 그 학교의 주인임을 깨닫게 했다. 그것이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을 내려놓고, 그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법을 알게하는 ‘법륜 스님의 사랑법’이었다.
법륜 스님과 제이티에스는 그런 방식으로 민다나오에 30여개를 비롯 필리핀과 인도 등 제3세계 오지마을에 85개의 학교와 16개의 유치원을 손수 짓게 했다.
▲ 손만 벌릴 뿐 스스로 할 줄 모르는 오지인들을 만날 때 법륜 스님은 눈물로 설득하곤 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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