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 화상의 백납가
不求利 不求名 이익도 구하지 않고 이름도 구하지 않으니
百衲懷空豈有情 누더기 납승, 가슴 비었거니 무슨 생각 있으랴.
一鉢生涯隨處足 바룻대 하나로 어디 가나 족하니
只將一味過殘生 그저 이 한 맛으로 남은 생을 보내리.
고려(高麗) 31대 공민왕(恭愍王) 때의 왕사(王師). 초명은 원례(元惠). 속성은 아(牙). 호는 나옹ㆍ강월헌(江月軒). 영해(寧海) 사람. 중국(中國) 서천(西天)의 지공(指空)을 따라 심법(心法)의 정맥(正脈)을 이어받았음. 고려(高麗) 말(末) 선종(禪宗)의 고승(高僧)으로서 조선(朝鮮) 시대(時代) 불교(佛敎)에 크게 영향(影響)을 끼침. 서예와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지공(指空)ㆍ무학(無學)과 함께 삼대 화상(三大和尙)이라 일컬어짐. 시호(諡號)는 선각(禪覺). 혜근(惠勤). (1320~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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