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리얼리즘과 영의 신학
기독교계에서 오늘날 문제되는 것은 신앙을 단순히 전통의 고수로만 생각하고 누구의 모방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점이다. 만일 신앙을 모방으로 해석한다든지 누구에게 기대는 것으로 풀이한다면 그런 기독교 이해가 한 인격의 독자성을 몰각한 노예 종교로 전락시켜 버리고 만다.
예수가 원래 전한 메시지의 근본 의도는 인간을 노예처럼 다루자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 자유로운 인격으로 소중히 여기자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가 독립해서 자기 나름의 창의력을 발휘하여 그 생을 꽃피우도록 하는 인격의 해방에 본뜻이 있는 것이다. 예수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할 때는 그를 모방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그분이 그처럼 창조적으로 생을 영위했듯이 우리도 우리 나름의 창의력을 가지고 생을 의미 있게 승화시키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기 바로 전에 ‘제 십자가를 지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신 지음, 이은선 이경 엮음, 동연 펴냄, 1만6천원
이신(1927~1981)=전남 돌산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건너가 부산 초량상고(부산상고 전신)를 다녔다. 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뒤 곧바로 은행에 취직했고, 해방의 해에 혼인을 했다. 하지만 1946년 신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서울행을 감행 감리교신학교에 입학한다. 1950년 5월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충청도 전의에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한다. 6·25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활동한다. 당시 초대교회로의 환원을 통한 교회 일치를 주장하는 자생적 기독교운동인 ‘한국그리스도의 교회환원운동’에 함께 한다. 충북 괴산 수리교회 목회와 서울 돈암동교회를 거쳐 마흔살 늦깍이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그림을 그려 팔아 고학을 해 한국의 처자식에게 생활비를 보내며 고학을 한다. 미국의 명문 밴더빌트대학교에서 신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1971년 귀국한다. 하지만 주요 교단 출신이 아니어서 주요신학대에서 외면을 받으며 산동네에서 목회했다. 이은선 세종대 교수(전 여신학자협의회회장)과 이정배 감신대교수(기독자교수협의회장) 부부가 딸과 사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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