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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좋은글

윤형중-남들이 내 주검을 보는 날

등록 2011-06-26 10:06

죽음과 중대한 병만큼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없다. ‘생명존재’가 멸실되어 주위의 모든 이와 작별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 앞에 서면,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성공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더 화해하고, 사랑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이 닥칠 때면 그런 후회는 때늦은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박기호 신부 등이 하는 예수살이공동체에선 배동교육을 하면서 윤형중 신부의<사말의 노래>를 들려준다.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변혁가이자 영성가였던 윤형중 (1902~79) 신부는 일제 때 불교도였던 최남선을 감화시켜 개종시켰고, <조선일보>에서 좌익 임화와 논전을 벌였고, 훗날 <사상계>에서 함석헌과 대논쟁을 벌였다. 그는 이미 30여년 전 안구를 기증했다. 그는 ‘죽음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짧은 한마디를 마치고 선종했다. 그가 지은 <사말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더 이상 때 늦기 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사말의 노래>다..      백년 천년 살 듯 팔딱거리던 청춘이라 믿어서 염려한 한 몸.  거기에도 죽음은 갑자기 덤벼 용서 없이 목숨을 끊어버린다.  죽음에는 남녀노소도 없고 빈부와 귀천의 차별도 없다.  하지만 설마 나도 그러랴 했는데, 이 설마에 속고 말았네.  실날같은 숨결이 마지막이니 염통까지 온몸은 싸늘히 식고,  보드랍던 사지도 돌같이 굳어 보기에도 흉측한 시체로다.  흰자위만 보이는 푹 꺼진 창백한 얼굴, 검푸르게 변색된 입과 입술,  보기에도 흉측한 송장이로다.  의지 없이 외로운 너의 영혼이 마지막으로 떠나던 그때,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였는지, 내 얼굴이 그대로 말하는도다.  지나가는 친구를 보기만 해도, 제 양심이 보채어 피해가더니,  천주 대전에 홀로 꿇어 얼마나 떨고 지냈나.  온갖 맵시 다 차려 모든 사랑을 제 한몸에 받으려 허덕이더니,  송장 봐라 지겹다 피해 내빼는 뭇사람의 영혼을 알고 있느냐.  남의 마음 끌려고 애도 쓰더니 참지 못할 독취를 내피우고 있어,  오는 이의 고개를 돌이켜주고 피하는 자 걸음을 재촉해주지.  신식이란 다 차려 양장을 하고 아양 떠는 얼굴에 간사한 웃음,  별난 몸짓 다 꾸며 저만 잘난 듯 뵈는 곳에 나서기 좋아하던 몸.  변화 없는 수의를 입고 누워서 널빤지 네 장.  집구석에 있기는 멀미가 나서 남의 눈을 피하여 쏘다니던 몸.  좁고 좁은 널 속에 갇혀 있어 갑갑하게 그처럼 파묻혀 있다.      땀 한 방울 흘리기를 사양하던 몸.  검고 붉은 초김을 흘려내려도 더러운지 추한지 알지 못하고,  막대같이 뻣뻣이 놓인 그대로.  화장품 한껏 들여서 예쁜 모양내려고 애도 쓰더니,  그 얼굴에 구더기 들썩거리고 흐늑흐늑 썩음을 알기나 하나.  보드라운 비단만 입으려 하고 입에 맞는 음식만 골라먹더니,  버러지의 양식을 준비해주려 그와 같이 몹시도 안달을 했나.  아리따운 자태는 형용도 없이 흥건하게 널 속에 고여 썩은 것.  화장품의 향내는 어디로 가고, 코 찌르는 독취만 가득하구나.  거울 앞에 앉아서 꾸미던 얼굴 구멍 세 개 뚜렷한 해골바가지.  신식치장 다 차려 모양내던 몸, 엉성한 뼈 몇 가락 이게 내 차지.    굶주리고 험주린 가난뱅이는 티끌같이 눈 아래 내려보더니,  잘났다는 제 몸은 얼마나 잘나 먼지 되고 흙 되어 흩어지는가.  어두운 하늘 유성이 스치고 가면 자취까지 다시는 볼 수 없듯이  번개같이 순식간 살던 내 몸은 이 세상에 영원히 사라졌도다.  성사 받기 너무도 싫어도 하고 도리 훈계 너무 염증 내더니,  그 모든 것 놔두고 휙 돌아서서 끝날까지 찾은 것 이것이더냐.  짧고 짧은 인생 맛보던 쾌락,  꿈이라면 아직도 다행이련만 허탈하긴 꿈깥이 허탈하여도  딸린 얼은 끝없이 걱정이로다.  토양 밑에 헤매는 작은 개미들도 겨울 준비를 할 줄 알거늘  만물 으뜸 훌륭한 사람이 되어 한이 없는 지옥 불 생각 못했나.  아마 떠난 내 영혼의 꼴이 너와 함께 멸망해 있지 않은지.  여보시오 벗님네, 이 내 말 듣소.  지금 말한 죽음 잊지 마시오.  님의 말로 알고 잊지 마시오.  그대 역시 조만간 당할 것이오.  이런 운명 당신은 피할지 아오.  하늘땅이 무너져 변할지라도 그대 역시 죽어서 썩어질 것이오.  중천에 뜬 해보다 더 분명하오.  재깍재깍 초침이 도는 소리는 우리 생명 그만큼 깎는 소리요.  한 치 두 치 나가는 해 그림자는 우리 일생 그만큼 덮고 나가오.  남의 부고 우리가 받지 않았소.  우리 부고 남에게 한번 갈 때에 남의 시체 우리가 보지 않았소.  우리 시체 남들이 한 번 볼거요.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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