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은 `고통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보다는 `그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다.
고통이나 갈등, 불확실성에 대한 `무의식적 방어기제"는 스스로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실제 삶을 얼마든지 가공하고 왜곡할 수 있다. 방어기제란 아주 기본적인 생물학적 과정에 대응하는 정신세계의 현상이다. 예를 들어, 상처가 나면 몸 안에서 평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반응에 따라 피가 응고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의 방어기제는 감정적인 기복을 따라 출렁인다. 혈액의 응고 때문에 과다출혈로 사망할 수도 있는 반면 그것이 관상동맥을 막으면 심장바비로 이어지기도 하듯이, 방어기제 역시 우리를 구원할 수도, 나락으로 이끌 수도 있다. 방어기제는 `정신병적 " 방어기제에서붙 `미성숙한" 방어기제, `신경증적인" 방어기제, `성숙한" 방어기제까지 네 범주로 분류된다.
우리가 흔히 정신병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은 대부분 방어기제를 현명하게 발달시키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방어기제를 잘 활용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양심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창의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방어기제를 부정적으로 이용하면, 정신병 진단을 받고 이웃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사회에서도 부도덕적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대부분의 `정신병적" 방어기제들은 걸음마 시기 아이들에게 나타나며,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은 유아기가 끝날 즈음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사춘기에 이르면 성숙한 방어기제보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두 배나 더 사용하며, 50~75세 사이에선 이타주의나 유머가 훨씬 더 빛을 발하게 되는 반면, 모든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은 거의 사라져간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노화를 예견하는 일곱 가지 주요한 행복한 조건들이 있다. 첫번째는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이고, 이어서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금연,금주,운동,알맞은 체중이다. 50대에 이르러 그 중 5,6가지 조건을 충족했던 하버드 졸업생 106명 중 절반은 80세에도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였고, 7.5펴센트는 `불행하고 병약한" 상태였다. 반면, 50세에 세 가지 미만의 조건을 갖추었던 이들 중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0세에 적당한 체형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세 가지 미만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80세 이전에 사망할 확률이 네 가지 이상의 조건을 갖춘 이들보다 세 배는 높았다.
그렇다면 `행복한 인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은 어떤 것인가. 50세 때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노년의 건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회에 순응하는 능력도 대학이나 성인기 초반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만, 그 중요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져간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지적인 뛰어남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다. 행복의 조건에 따뜻한 인간관계는 필수적이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형제자매나 친척, 친구, 스승과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 47세 즈음까지 형성된 인간관계는 방어기제를 제외한 어떤 다른 변수들보다 훨씬 더 이후의 인생을 예견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형제자매간의 우애가 특히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 65세까지 충만한 삶을 살았던 연구 대상자들 중 93펴센트는 어린 시절 형제자매들과 친밀한 관계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다.
`하버대대학교 인생성장보고서"<행복의 조건>(조지 베일런트 지음, 이시형 감수, 이덕남 옮김, 프런티어 펴냄)에서.
조지 베일런트=세계 최장기 성인발달연구를 맡아온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1934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하버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보스튼 브리검여성병원 정신의학분과 연구소장. 하버드대에서 3개집단 성인 72년간 지속적 관찰 결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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