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어머니는 평생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늘 걸리던 것이 하나 있었다. 5살 무렵에 친정어머니가 재가를 한 일이다. 이 일은 평생 가슴에만 담아두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한으로만 남아 있었다. 4살 때 당신의 아버지가 일본 순사에게 잡혀가 죽음을 당한 뒤 친정어머니는 스무 살도 더 많은 새아버지에게 개가를 했다. 아버지를 일본 순사에게 뺏겼듯이 어머니도 할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이소선은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했다. 고집을 부리며 절대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할 수 있는한 반항을 했다.
“우리 아버지가 일본한테 저항했던 일 때문에 일본 순사가 우리 아버지를 뒷산에 가서 죽이고 우리집을 불태워서 나하고 오빠, 엄마는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고향을 떠나도 일본 놈들이 계속 감시를 했어. 그러니까 엄마는 오빠가 조선에 있으면 아버지처럼 죽게 되겠다 싶어 일본에 있던 외삼촌 집으로 보내려 했던 거야. 그런데 아무것도 없으니 어떻게 보내. 그래서 스무 살도 많은 의붓아버지에게 개가를 했던 거지. 우리 오빠를 밀항선이라도 태워 일본에 보내 목숨이라도 구하게 하려고 조건부로 그랬던 거야. 어렸을 땐 어떻게 그것을 알아. 내가 우리 엄마를 얼마나 미워하고, 원망했는지….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그때는 봉건시대잖아. 여자가 일부종사 못하면 이부부터는 창부라고, 그런데 엄마는 왜 그랬는지. 하지만 내가 결혼하고 애 낳고 살다보니까 우리 엄마만큼 대단한 사람도 없어. 자식 하나 살리려고 자기를 버렸다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자식을 위해 희생했는데 내가 철모르고 그랬으니 우리 엄마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나. 내가 이 일을 하고 보니까 우리 엄마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식을 위해서 나 같으면 그렇게 했겠는가. 아마 못할 것이야.”
하지만 ‘자식을 위해서’ 이소선 어머니만큼 한 사람도 없을 듯하다. 죽어가는 자식(전태일)이 부탁한 일을 들어주기 위해서 친자식하고 같이 산 22년보다 더 많은 39년의 세월을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아오면서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으니까.
‘공지영에서 문익환까지, 24인의 삶을 스케치하다’<그사람에게 가는 길>(기독교사상 엮음,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기독교사상>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 동안 매호 선정한 표지이야기의 주인공들인 공지영, 권정생, 장영희, 문익환, 안병무, 원경선 등 24인의 인터뷰를 묶었다. 한종호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박명철 <아름다운동행>편집장, 이영란 <기독교사상>기자가 인터뷰했다.
이 책 뒷표지에 있는 ‘추천사’
<기독교사상>은 ‘기상’이라는 줄임말이 더욱 더 매력적이다. 오산학교의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의 후손인 홍성 풀무학교 설립자 이찬갑 선생이 새벽 닭울음 소리를 “꼭, 깨요!”라고 했다는데, 기상도 잠든 한국 기독교와 사회를 흔들어 깨우기 위하여 ‘기상!’을 외쳐왔다. 1960~70년대 함석헌의 <사상계>와 함께 양심적 지성인들의 양대 잡지였던 ‘기상’의 목소리를 가장 생생히 들려준 얼굴이 바로 표지 인물들이었다. 문익환, 권정생 같은 표지 인물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어떻게 ‘기상!’을 외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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