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인간이란 거의 없다.
인간의 개성 속에는 어딘지 어린이와 같은 감정적인 동요가 남아 있다. 이 동요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인간적 완성에 이르는 길과 합치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적인 완성이 이루어질수록 감정의 동요는 작아진다. 인간적인 완성이란 자기 스스로의 안심(安心)을 의미하는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감정의 동요를 누르고 인간적인 완성에 이르려면 첫째 자기 일은 자기 손으로 처리해야 된다는 독립적인 책임감을 분명히 가지는 데 있다. 부모들은 흔히 아이들을 응석받이로 키워서 의뢰심이 많은 사람을 만들어 세상에 보내기 쉽다. 부부 싸움을 하고 걸핏하면 친정으로 달아나는 여자가 있다. 이런 여성은 자기 일을 자기가 처리하지 못하고 친정 부모들의 마음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자기 마음 속에서 생긴 문제는 자기 마음 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법이다. 어떤 감정적인 동요로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술에 의뢰하는 어린애와 같은 심리다. 자기의 독립정신만이 자기를 구원하므로 자주적인 챔임감, 무엇보다도 이것을 마음 속에 깊이 지닐 필요가 있다.
인간적인 완성의 둘째 조건은 무엇이든지 남에게서 받기를 기다리지 말고 자진해서 준다는 데 있다. 어린애의 특징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부모가 해 주기를 바란다. 성숙하지 못한 인간일수록 이런 어린이의 특징을 마음에 깊숙이 지니고 있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대체 나에게 무슨 도움을 준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이 모든 일에 있어서 판단 기준이 되어 버리면 모든 일을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 욕망의 구렁텅이에서 몸부림치게 되고, 끝없는 불만과 갈증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이 되고 만다.
<젊은날의 사색>(데카르트외 지음, 휘닉스 펴냄)에서.
위 글을 쓴 신들러(1795~1864)=오스트리아의 바이올린 연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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