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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좋은글

문제는 고타마 싯다르타 자신뿐

등록 2011-10-29 09:51

   싯다르타가 우연히 성문 밖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고통을 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다시 반대로 눈가리개를 씌웠다. 쾌락의 면을 가리고 오직 고통만을 좇아 고행에 나섰다. 인간의 한계 끝까지 고통을 주며 오직 고행으로 고통을 넘어서려 했다.    싯다르타가 쾌락의 가리개도, 고행의 가리개도 벗고 앉았던 곳에 왔다. 보리수는 2600년 전 그때의 보리수가 아니다. 싯다르타도 죽고, 보리수도 죽었다. 이 보리수는 당시 보리수의 씨앗을 스리랑카에 심었다가 다시 그 씨앗을 받아 200년 전 심은 것이다. 육신과 보리수는 죽었으니 무상하다. 그러나 생명은 이처럼 순환하니 무한하다.    싯다르타는 이곳에서 무엇을 발명한 것인가. 새로운 것은 없다. 그러니 발명이 아니다. 눈가리개를 벗었을 뿐이다. 그리고 밖에서는 생멸하고 순환하는 생명의 실상을 보았고, 안에서는 생멸해 고정됨이 없는 마음의 실상을 보았다.    싯다르타가 눈가리개를 벗고 보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자연은 그러했고, 마음 또한 그러했다. 변한 것은 자연이나 마음이 아니라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유쾌한 것만 좇으면 애착의 고통이 뒤따르고, 불쾌한 것을 싫어하면 증오의 고통이 따른다. 달디단 꿀만 좋아할 때는 갈망이 뒤따르고, 쓰디쓴 것을 싫어만 하면 혐오의 고통이 뒤따른다.    내가 달디단 꿀 같은 기쁨만을 좇았던 것은 아니다. 이곳 가야에 오기 위해 뭉게르에서 새벽안개를 헤치며 역으로 가던 때였다. 차가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하는데 덩치 큰 하얀 개가 차 앞에서 컹컹대며 달렸다. 차가 달리자 개는 더 빨리 달렸다. 차는 다만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그런데 개는 아마도 차가 자기를 좇는 줄 알았나 보다. 눈을 뜬 자는 차 위에서 우스운 일이라고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작 오해한 개는 걸음아 날 살려라 달리고 또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거의 개가 지쳐 쓰러질 때쯤 차가 앞서갔다. 그제야 개는 허망하게 차 꼬리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 개뿐이던가. 내 안의 콤플렉스 때문에, 고정관념 때문에, 편견 때문에, 과대망상 때문에 얼마나 피해의식에 싸여 사람을 원망하고 개처럼 죽어라 달렸던가.    이젠 가리개를 벗고 싶었다. 말도 가리개를 벗기고 초원을 달리게 하라.    가려운 것을 참지 못해 순간적인 시원함을 즐기다 부스럼을 만들어 고통을 받는 것은 서너 살 아이의 짓이요, 가려운 것도 시원한 것도 다만 한때의 감각임을 알고 담담하게 지켜볼 줄 아는 것은 성숙한 어른의 행동이다.    대탑을 세우고 불상을 세워 붓다를 붙잡으려는 것은 젖을 떼지 않으려는 아이의 일이요, 자연과 마음의 생멸의 이치를 알아 오고 가는 것에 담담한 것은 어른의 일이다.    오고 갈 뿐이다. 달디단 장밋빛에 젖을 일도 아니요, 참담한 비관에 빠질 일도 아니다. 무상은 이상주의도 아니요, 허무주의도 아니다. 무상하고 변하기에 지금 백옥같은 미모를 지닌 사람도 언젠가는 반드시 썩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아무리 높은 지위와 권좌에서도 내려와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린 겸허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무상하고 변하기에 지금 병자도 건강해 질 수 있고, 지금 가난한 자도 부자가 될 수 있고, 우는 사람도 웃는 날이 있다. 지금 벙어리라도 위대한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으며, 지금 지옥에 있는 사람도 천국의 복락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우린 꿈과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2600년 전 쾌락과 고행의 노예가 드디어 이곳에서 가리개를 풀고 사슬을 풀고 해방되었다. 행복의 족쇄로부터도 불행의 족쇄로부터도 벗어났다. 천국의 족쇄로부터도 지옥의 족쇄로부터도 벗어났다.    싯다르타가 앉았던 자리에 다람쥐가 앉아 있다. 까치도 날아왔다. 붓다가 오고 가며, 보리수가 오고 간다. 다람쥐가 오고 가며, 까치가 오고 간다. 사람들이 오고 간다. 희망이 오고 가며, 절망도 오고 간다. 지옥이 오고 가며, 천국이 오고 간다. 움직이지않는 불상과 대탑 위로 걸림 없이 오고 가는 것들이 바로 붓다를 깨닫게 한 진리가 아닌가.                     어머니의 품, 신들의 고향에 가다 <인도오지기행>(조현 지음, 휴 펴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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