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 살던 한 젊은 사냥꾼이 동굴에서 수달피 한 마리를 잡았다. 그는 껍질을 팔기 위해 수달피의 껍질을 벗기고 살을 바른 다음 시체를 동산에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수달피 시체가 사라지고 없었다. 주변을 살피니 핏자국들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그 핏자국을 따라갔더니 전달 수달피를 잡았던 동굴로 이어졌다. 동굴 속에는 껍질이 다 벗겨지고 뼈만 앙상한 어미 수달피 주위에 새끼 수달피 다섯 마리가 달라붙어서 젖을 달라고 칭얼대고 있었다. 젖을 줄 수도 없게 된 어미 수달피는 그 새끼들을 꼭 껴안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어미가 죽자 사냥꾼은 어미 수달피 대신 어미가 되어 새끼들을 보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미를 찾는 새끼들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천년 같았다. 글너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새끼들이 자라서 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자 사냥꾼은 출가했다. 그 무거운 죄업을 씻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나라까지 가서 당대 최고의 고승 무외 화상에게 자신을 받아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무외는 온갖 살생을 젖리러온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불이 벌겋게 달구어진 화로를 머리에 이고 마당에 섰다. 화로가 다 달구어지도록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침내 그의 머리통이 터졌다. 그 순간 우레와 같은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놀란 무외가 뜰 아래로 달려 내려와 터진 정수리를 어루만져주었다. 그러자 그의 상처가 씻은 듯이 깨끗해졌다. 그가 바로 철천지 죄업을 자각하고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음으로써 온 생명과 하나 된 진언종의 초조(初祖) 혜통이었다. 생명도 불성도 참회로부터 깨어나며 살아난다.
조현의 암자오지기행 <하늘이 감춘땅>(한겨레출판 펴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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