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_ 수행, 수도, 명상을 통해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각박하고 외로운 현대인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수도, 명상,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밖에서 만 갈구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기를 깨닫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현실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한 생활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휴심정을 찾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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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예수살이공동체 배동교육한 생이 예수를 닮게 하소서
"거룩하신 아버지.지상에서 천국처럼 살기를 청하오니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가난한 이들과 함께함에서 기쁨을 얻게 하시며세상의 변혁을 위한 몸바침으로 한 생이 예수를 닮아 살게 하소서"
예수의 삶을 따르려다 목이 잘려 나간 이들을 기리는 절두산 순교기념관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예수살이공동체의 집. 한강과 절두산의 새벽 운무가 채 걷히기 전부터 공동체집 민들레홀에서 청년들이 103명의 순교성인을 부르며 큰절을 올린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비소서!”
진행을 맡은 막일꾼이 참수당한 성인의 이름을 부르자 청년들이 절을 한다. 한 배, 한 배.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부르며 정성스레 몸을 던지는 사이 이마에 땀방울이 맺기 시작했다. 103배를 마치고 도반들을 향해 서로 합장을 하며 공손하게 인사한 뒤 가쁜 숨을 돌리고 땀을 훔친 뒤.
“따르륵.”
여지없이 죽비 소리가 울린다. 좌선명상 시간이다. 좌선을 경험한 적이 없는 노랑머리와 퍼머 머리들은 금세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그러나 수다를 떨 수 없다. 일체 침묵이기 때문이다.
전날 시작 때 핸드폰과 담배를 수거할 때부터 심상찮은 기미를 느끼던 이들은 사관학교처럼 빈틈없이 진행되는 일정, 천주교인들에겐 생소한 큰절과 좌선에 입을 댓자나 내밀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자유의 날’로 명명된 이틀째를 이처럼 구속감과 불만족 속에서 맞이했다. 첫날 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막일꾼들이 나눠준 종이에는 인생의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들이 적혀 있었다.
언젠가는 대기업을 거느리는 실업가가 되거나, 최소한 부유층이 된다. 이상적인 이성을 만나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많은 팬을 가진 톱스타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친구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는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로 성불구자가 되어 휠체어 생활을 하며 입으로 글을 써야 한다.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이로부터 실연을 당한다. 성격 차이로 가정불화 끝에 이혼을 한다. 뜻밖의 사건에 말려들어 언론의 선정적 비난을 받고 구속된다. 한동안 속이 매스껍더니 정밀검사에서 말기 암 선고를 받는다. 뜻밖의 죽음을 당해, 더 이상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예시문을 놓고 조금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에는 동그라미표를 하고, 불가능한 것에는 가위표를 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불길한 가능성에 대해선 덮어버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인생에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죽음조차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침묵 속에서 조별로 손을 잡고 각 방으로 향했다. 민들레홀에서 본건물까지 30미터에서 1미터 간격으로 꺼질 듯 말 듯한 촛불들이 놓여 착잡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둠 속에서 한 가닥 촛불만이 어둠을 밝히는 희미한 방에 들어섰다. 그리고 안내자들이 정해준 자리에 앉았다. 그곳에서 정면을 응시한 순간 참석자들은 너무 놀라고 말았다. 그 벽엔 자신의 대형 사진에 검은 천을 두른 영정이 걸려 있었다. 교육 전 제출한 명함판 사진을 확대한 영정 사진 너머로 윤형중 신부의 <사말의 노래>가 구슬프게 울려 나왔다. 죽음 묵상이었다.
백년 천년 살 듯 팔딱거리던 청춘이라 믿어서 염려한 한 몸. 거기에도 죽음은 갑자기 덤벼 용서 없이 목숨을 끊어버린다. 죽음에는 남녀노소도 없고 빈부와 귀천의 차별도 없다. 하지만 설마 나도 그러랴 했는데, 이 설마에 속고 말았네. 실낱같은 숨결이 마지막이니 염통까지 온몸은 싸늘히 식고, 보드랍던 사지도 돌같이 굳어 보기에도 흉측한 시체로다. 흰자위만 보이는 푹 꺼진 창백한 얼굴 검푸르게 변색된 입과 입술, 보기에도 흉측한 송장이로다. 의지 없이 외로운 너의 영혼이 마지막으로 떠나던 그때,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였는지, 내 얼굴이 그대로 말하는도다. 지나가는 친구를 보기만 해도, 제 양심이 보채어 피해가더니, 천주대전에 홀로 꿇어 얼마나 떨고 지냈나. 온갖 맵시 다 차려 모든 사랑을 제 한몸에 받으려 허덕이더니, 송장 봐라 지겹다 피해 내빼는 뭇사람의 영혼을 알고 있느냐. 남의 마음 끌려고 애도 쓰더니 참지 못할 독취를 내피우고 있어, 오는 이의 고개를 돌이켜주고 피하는 자 걸음을 재촉해주지. 신식이란 다 차려 양장을 하고, 아양 떠는 얼굴에 간사한 웃음, 별난 몸짓 다 꾸며 저만 잘난 듯 뵈는 곳에 나서기 좋아하던 몸. 변화 없는 수의를 입고 누워서 널빤지 네 장, 집구석에 있기는 멀미가 나서 남의 눈을 피하여 쏘다니던 몸. 좁고 좁은 널 속에 갇혀 있어 갑갑하게 그처럼 파묻혀 있나.
자신의 영정을 바라보던 참가자들은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시 낭송을 들으며 명치끝에서부터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땀 한 방울 흘리기를 사양하던 몸. 검고 붉은 초김을 흘려내려도 더러운지 추한지 알지 못하고, 막대같이 뻣뻣이 놓인 그대로. 화장품 한껏 들여서 예쁜 모양내려고 애도 쓰더니, 그 얼굴에 구더기 들썩거리고 흐늑흐늑 썩음을 알기나 하나. 보드라운 비단만 입으려 하고 입에 맞는 음식만 골라먹더니, 버러지의 양식을 준비해 주려 그와 같이 몹시도 안달을 했나. 아리따운 자태는 형용도 없이 흥건하게 널 속에 고여 썩은 것. 화장품의 향내는 어디로 가고, 코 찌르는 독취만 가득하구나. 거울 앞에 앉아서 꾸미던 얼굴, 구멍 세 개 뚜렷한 해골바가지. 신식치장 다 차려 모양내던 몸, 엉성한 뼈 몇 가락 이게 내 차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여겼던 죽음이 마치 현실로 닥쳐온 듯했다.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새어나온다.
굶주리고 험주린 가난뱅이는 티끌같이 눈 아래 내려보더니, 잘났다는 제 몸은 얼마나 잘나 먼지 되고 흙 되어 흩어지는가. 어두운 하늘 유성이 스치고 가면 자취까지 다시는 볼 수 없듯이 번개같이 순식간 살던 내 몸은 이 세상에 영원히 사라졌도다. 성사 받기 너무도 싫어도 하고 도리 훈계 너무도 염증 내더니, 그 모든 것 놔두고 휙 돌아서서 끝날까지 찾은 것 이것이더냐. 짧고 짧은 인생에 맛보던 쾌락, 꿈이라면 아직도 다행이련만 허탈하긴 꿈같이 허탈하여도 딸린 얼은 끝없이 걱정이로다. 토양 밑에 헤매는 작은 개미들도 겨울 준비를 할 줄 알거든 만물 으뜸 훌륭한 사람이 되어 한이 없는 지옥 불 생각 못했나. 아마 떠난 내 영혼의 꼴이 너와 함께 멸망해 있지 않는지. 여보시오 벗님네, 이 내 말 듣소. 지금 말한 죽음 잊지 마시오. 님의 말로 알고 잊지 마시오. 그대 역시 조만간 당할 것이오. 이런 운명 당신은 피할지 아오. 하늘땅이 무너져 변할지라도 그대 역시 죽어서 썩어질 것이오. 중천에 뜬 해보다 더 분명하오. 재깍재깍 초침에 도는 소리는 우리 생명 그 만큼 깎는 소리요. 한 치 두 치 나가는 해 그림자는 우리 일생 그만큼 덮고 나가오. 남의 부고 우리가 받지 않았소. 우리 부고 남에게 한번 갈 때에 남의 시체 우리가 보지 않았소. 우리 시체 남들이 한 번 볼 거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밥 먹듯 했던 손은미 씨의 볼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토록 죽고 싶어했기에 마음이 편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았다. 가정 형편은 너무도 어려웠고, 이웃들과의 갈등도 심했다. 모든 것이 부담으로만 다가와 이겨내기 어려웠다. 그는 자신이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것들에 집착하며 세상과 자신과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키워왔다는 것을 알았다.
“죽으면 모두 소용없는데 왜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집착하며 안달했을까. 언제든 죽을 이 몸인 것을, 왜 이웃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을까.”
은미 씨는 이날 밤늦게까지 마치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이 불타는 사랑을 체험했다. 죽고 싶어하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불타는 사랑을 느꼈다. 온몸에 전기가 오는 것같이, 마치 종이나 폐지를 태울 때 따뜻하면서도 뜨끈뜨끈한 그런 느낌이 죽음 명상 뒤 고백성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느낌은 정말 행복했다.”
죽음 묵상 뒤 이어진 화해의 밤 행사에서 다른 참석자들을 향해 활짝 열린 그의 팔은 이미 삶과 이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하느님과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일어서서 앞으로 나오시오.”
박기호 신부의 물음에 너도나도 앞으로 나섰다.
“너그러우신 아버지께서는 돌아온 탕자를 버선발로 뛰어가 끌어안으시며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다며 기뻐하십니다.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결심한 여러분에게 주님께서는 아무 죄도 묻지 않으시며 새로운 탄생을 기뻐하십니다. 이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가 사제들의 안수를 통하여 여러분의 영혼과 함께 하십니다.”
사제들의 안수가 시작되었다.
“비천한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아무 죄도 묻지 않고 받아주시겠습니까? 오직 대자대비하신 그분의 마음이 바다처럼 넓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으니, 우리도 형제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서로 받아들입시다. 부모와 형제 가족 친지들에게 학교, 성당, 친구,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받았던 상처의 기억들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고 화해합시다. 서로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화해하십시오.”
박기호 신부의 인도에 따라 이들은 그동안 미워했던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에게 참회의 큰절을 올렸다. 가족들 간에도 포옹하기를 부끄러워했던 이들은 마치 미워했던 사람들을 대하듯 다른 참가자들을 포옹한 채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용돈이 턱없이 부족해 친구들에게 기도 펴지 못하고 산다며 어머니에게 짜증을 냈던 대학생 조탁휘 군. 그는 처음으로 가난한 살림에 자식을 세 명이나 동시에 대학에 보내느라 용돈도 제대로 주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부모님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부모님에게 불만투성이였던 그의 눈물 사이로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라는 목멘 소리가 흘러 나왔다.
거룩하신 아버지.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기를 청하오니,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함에서 기쁨을 얻게 하시며, 세상의 변혁을 위한 몸바침으로, 한 생이 예수를 닮아 살게 하소서. -예수살이 청원기도문
예수살이공동체는 서울가톨릭신학대 재학 때부터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삶을 서원했던 박기호, 권혁동, 김오석, 김대영, 이상용 신부, 양운기 수사 등이 주축이 되어 1997년에 세운 곳이다. 많이 벌어 많이 쓰는 것이 성공으로 우상화된 세상에 청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질문하면서 젊은이들을 예수살이로 태어나게 하려는 모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배동교육을 통해 청년들의 영성을 키운다. 배동이란 이삭을 머금고 있는 벼를 피어나게 한다는 뜻이다. 예수살이공동체의 영성은 예수의 인간성을 본받아 자유의 기쁨과 투신의 정신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지상에서’ 천국의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들은 배동교육을 통해 자유와 기쁨, 투신의 삶을 살도록 한다. 광야의 유혹을 물리치고(자유), 하층민의 벗으로 살고(기쁨), 십자가를 피하지 않은(투신) 예수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갈릴레아의 예수, 그분과 함께’로 명명된 셋째 날. 이들은 또 다른 ‘독특한 체험’을 향해 공동체를 나섰다. 조별 목적지는 이 땅에서 고통 받는 자들의 아픔이 있는 곳. 정신지체 장애아들이 사는 ‘라파엘의 집’,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여 사는 ‘우리 탕제원’, ‘불평등한 SOFA(한미행정협정) 개정 국민행동사무소’와 미대사관 앞 시위현장, ‘인권사랑방’, ‘전태일 열사 기념사업회’, ‘철거민촌인 난곡동 주민회관.’
관심을 기울여본 적도, 기울이고 싶지도 않았던 낯선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길을 나설 때 한 푼의 돈도 지급되지 않았다. 물론 지갑은 첫날 압수당한 상태였다. 완전히 빈손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조별로 거리를 나섰지만, 너무도 막막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색을 살피며 돈을 달라고 해보려고 앞으로 갔다가는 말도 못하고 스치고 지나기를 몇 번. 이러다가는 목적지에 가서 봉사는커녕 공동체 주변에서 하루를 다 보낼 지경이었다. 차츰 용기를 낸 이들은 행인들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며 차비를 구걸했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 돈을 보태주었다. 이들은 삭막하다고만 여겼던 세상에서 새로운 사랑과 관용을 발견하고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이들은 세상의 고통이 응결된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 안에 갖힌 채 온갖 불만을 토로하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라파엘의 집에 가서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정신지체 장애아를 보듬고 간식도 먹이며 함께 놀아주고 온 한 청년은 ‘다정하게 보듬어 주었더니 그 아이가 평온하게 안겼다’며 ‘그 아이와 사랑을 나누면서 그 아이에 앞서 나 자신이 치유 받은 느낌이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낙성대 ‘우리 탕제원’에 가서 비전향 장기수들을 만나고 온 이들은 ‘돈을 더 모아 떡을 사서 할아버지들에게 떡국을 끓여드렸다’며 즐거워했다. 이들은 ‘오직 신념이 다르다고 30년 넘게 감옥에 가둬두고, 80~90대인 할아버지들을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해 놓은 것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며 안타까워했다.
세상의 고통을 체험하고 돌아온 이들은 지금까지 어리광이나 부리던 청소년의 모습이 아닌 듯했다. 비록 하루 동안이었지만 너무도 가슴 아픈 세상의 모습에 그들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서도 불만족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있었다.
세상 속으로 투신한 이들을 위해 신부들이 세족례를 했다. 신부들이 직접 청년들의 발을 정성스레 씻어주었다. 그리고 그 발에 입을 맞췄다. 신부들이 발을 씻어주는 동안에도 황송함을 감추지 못하던 이들은 신부들이 자신의 발에 입을 맞춰주는 순간 그 깊은 사랑에 젖은 듯 눈망울에 물기가 서렸다.
이날 밤 3~4명씩이 한 조가 되어 예수의 마지막 모습인 ‘십자가의 길’을 연기했다. 미대사관 앞 시위현장을 다녀왔던 이군선 씨는 빌라도 역을 자청했다. 예수를 살려주고 싶어했으면서도, 자신의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결국 ‘예수를 죽이라’는 군중의 요구를 따른 빌라도의 모습을 자기 안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신음을 외면하게 되었다. 또 내 욕심대로만 되지 않는데 불만스러워하기만 했다. 이기적인 욕심이 고통의 원인이었다.”
이날 밤이 가기 전 그의 내면을 차지하고 있던 빌라도는 이미 죽은 듯했다. 그는 ‘이제 주위에 늘 감사하며, 하느님께서 주는 십자가를 피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는 그렇게 예수살이의 길을 나서고 있었다.
조현 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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