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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좋은글

[나를찾아떠나는休] 천주교 영신수련

등록 2012-08-29 16:12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_ 수행, 수도, 명상을 통해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각박하고 외로운 현대인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수도, 명상,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밖에서  만 갈구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기를 깨닫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현실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한 생활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휴심정을 찾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

17.천주교 영신수련깨달음에 대한 욕심조차 내던져라

"여전히 네가 살아 있지 않느냐. 네가 살아 있으면 난 죽고, 네가 죽으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이다"

천주교 예수회 말씀의 집은 긴 터널의 끝자락에 숨어 있었다. 수원-신갈 간 고속도로는 좁은 터널 하나만을 남겨둔 채 마치 성(聖)과 속(俗)을 나누듯 수원과 광교산 자락의 말씀의 집을 이렇게 나누어놓았다. 가냘픈 몸매에 우수에 젖은 듯한 하영 씨도 다른 수련 참가자들과 함께 이 터널을 건너왔다. 몇 달 뒤면 평생 다시 나올 수 없는 봉쇄수도원에 들어가 수녀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 그는 새 삶을 앞두고 평신도로서는 얼마 남지 않은 짬을 이 영신수련에 할애했다. 

고아인 그는 경기도 의정부의 한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세 번이나 양부모로부터 버림받는 뼈저린 아픔을 겪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공장에 다니며 외롭게 살아온 그에게 삶은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영신수련의 첫 과제는 그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었다. 수녀의 길을 택한 만큼 이젠 속세에 미련도 상처도 남지 않았다고 자위했다. 

하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이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묵상 도중 초등학교 때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사랑을 받고 싶어 밤새 눈이 퉁퉁 붓도록 우는 모습이었다. 어린 하영의 아픔을 보며 통곡이 터져 나왔다. 

묵상 도중 문을 닫아걸고 밤새워 울었지만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양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자신을 내친 그들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왜 그들은 어린 나를 사랑과 인내로 책임지지 않았단 말인가.”

그는 울부짖었다. 이토록 무서운 증오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받았던 심리상담 과정에서도 이런 증오심은 나타난 적이 없었다. 아픈 과거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심리가 증오심을 깊이 감추어 더 뿌리 깊게 했던 것이다. 

하느님에게 화풀이를 했다. 왜 양부모를 만나게 했느냐고 따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묵상 가운데서 자신이 그토록 고통받고 있을 때 언제나 함께 해온 하느님의 현존을 자각했다. 그러자 하영 씨의 증오심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사랑만이 남았다. 

하영 씨는 또 울고 있었다. 그러나 이 눈물의 의미는 달랐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준 양부모들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역시 용서는 ‘용서해야 된다’는 결심이나 다짐으로 될 수 없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분노를 햇볕 위로 꺼내놓으면서 하영의 가슴속에서 얼음장 같던 분노는 이미 녹아들고 있었다. 

둘째 주가 지나면서 말씀의 집에 익숙해진 수련자들은 독방에서, 기도실에서, 광교산의 산책길에서 깊은 묵상에 잠겼다. 매일 오전 미사 때 유시찬 신부의 강론시간 외엔 온전히 내면에 잠겨 있었다. 

하영 씨는 피붙이 하나 없고, 검정고시로 간신히 고졸 자격을 딸 만큼 워낙 가진 게 없었다. 그래서 항상 열등의식에 휩싸여 있었다. 

“조금만 더 배웠더라면.......”

“내게도 가족이 있다면.......”

“내가 조금이라고 가진 것이 있다면.......”

그는 자신이 워낙 가진 게 없었기에 욕심도 많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속인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은 물론,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까지도 몽땅 갖고 싶은 욕구가 엄청나게 잠재해 있었다. 내면에는 갖지 못했기 때문에 더 가지려는 욕구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열등의식에 대한 아픈 묵상을 계속했다. 그는 한순간 자신 속에 깊이 자리한 열등의식의 뿌리를 보았다. 열등의식의 뿌리엔 ‘뭔가를 가지려는’ 소유욕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못 가졌기에 더욱 쟁취하려 하고, 가진 자를 이유 없이 미워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더구나 내면은 더 못 가진 사람을 멸시하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의 무의식의 밑바닥을 본 순간 ‘못 배우고 가지지 못한 데 감사’했다. 더 많은 것을 가졌더라면 더욱 교만과 죄에 물들었을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8일 피정의 경험을 살려 이번 30일 피정에 참가한 한 교수는 누구보다도 힘든 피정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의 명예를 좇던 그는 자신의 명예와 에고를 던지지 못해 밤새 통곡하고,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그는 묵상을 통해 지금까지 좇아온 성공과 부에 대한 꿈이 헛된 것임을 알았다. 헛된 집착을 버린 지극히 평범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노교수는 미사 때도, 기도 때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을 알 것 같았지만, 여전히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는 자신의 다른 모습 때문에 마치 해산의 진통을 겪는 여인처럼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예수께서 죽은 나자로를 살리는 묵상에서 자신의 세포가 새로 깨어나는 듯한 경험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은 살아 있었지만 사실상 죽은 상태였음을 자각했다. 

“부활은 우리가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시작되었다.”

그는 한결 평안해진 모습이었다. 

“빛은 내 내면에도 있고, 어디에도 있는데, 나의 이기적인 관점에 가려져 있었다. 내 아내, 내 아이, 내 친구들도 모두 빛이었다.”

그의 묵상은 점차 고통이 아니라 이처럼 기쁨이 되어가고 있었다. 

늦깎이로 신학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대형교회에서 일하는 이 전도사. 과거 사업을 하며 문란했던 생활 때문에 묵상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을 묵상하면서 놀라운 체험을 했다. 과거에 죄를 지었던 상대들이 모두 예수로 바뀌었다. 창녀도 병자도 예수의 몸으로 바뀌는 듯했다. 

그래서 자기 인생의 어두운 구석이 사라지곤 했다. 어두운 경험조차 삶의 소중한 자산으로 부활되는 것이었다. 사역을 하는 데도,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도 그의 아픈 과거는 큰 교훈과 깨달음이 되도록 긍정적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묵상 속에서 예수는 그를 자신과 일치시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건들마다 그 이유를 보여주었다. 마태오 복음의 산상수훈을 묵상할 때는 자꾸 ‘너를 보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가 자기 몸을 보았을 때는 자신이 전부 부활돼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연결 지어 묵상했을 때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풀렸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의 온갖 굴절과 영광이 하느님 나라를 운영하는 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되었다. 왜 아내를 만났고, 왜 자기 아이가 자신의 집에 태어났는지 모든 답이 구해졌다. 

하지만 그도 50년 동안 형성된 자아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신의 자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묵상으로 4일 동안을 씨름했다. 어느 순간 사랑이 없는 곳에 스며드는 것이 자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 이 고비를 넘겼구나’라며 흥얼대고 있었다. 그런데 묵상을 할 때마다 자신의 침대 밑에서 마치 시체가 썩고 있는 듯한 느낌이 계속됐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여전히 하느님과 직면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으로 답을 구했음을 알았다. 하느님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과 생각이 살아 있는 한 그는 죽은 시체였던 것이다. 

“여전히 네가 살아 있지 않느냐. 네가 살아 있으면 난 죽고, 네가 죽으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는 내면의 소리를 자각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던졌다. 그는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50평생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내면이 커가고 있었다. 

조현 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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