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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등록 2015-01-09 15:57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양태자 지음/이랑·1만5000원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양태자 지음/이랑·1만5000원

<중세의 뒷골목 풍경> <중세의 뒷골목 사랑> 등으로 중세 유럽 풍속사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는 비교종교학자 양태자 박사가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을 선보였다. 독일을 비롯한 중세 유럽 도시와 수녀원 및 마녀성을 직접 방문 취재해 마녀사냥의 현황을 살피고, 당대 신학자·의사·변호사 등 지식인의 마녀사냥 담론을 소개한다.

마녀 문화사의 대가인 볼프강 베링거의 자료를 보면, 1536~1693년 사이 북유럽의 마녀사냥 희생자는 최대 2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스웨덴 한 지방에서는 한번의 마녀재판으로 70명의 여자와 15명의 어린이를 화형에 처했다. 이탈리아, 폴란드, 프랑스, 스위스에서도 수천명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한꺼번에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되기도 했다.

마녀사냥의 지침서인 <마녀망치>라는 책도 있었다. 잔혹한 심문과 고문 가운데는 불타는 석탄 위를 걸어가도록 하거나 가시로 뒤덮인 철의자 위에 앉히는 형벌도 있었다. 목에서 ‘마녀점’을 찾아내는 등 어이없는 판별법도 유행했다. 마녀로 몰린 이들은 마녀 연고를 만들어 발라 사람을 죽이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며, 마귀와 사랑을 나누고, 숲에서 마녀춤을 추는 등의 혐의를 뒤집어쓰기 십상이었다.

지은이는 이 잔혹한 학살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나 희생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고 밝힌다. 자연재해와 페스트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지배계층의 수탈로 삶이 피폐해진 가운데 희생양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당시 마녀로 몰린 사람들은 약초를 사용할 줄 아는 여성, 재산은 많지만 가족이 없는 여성, 노인이나 고아 등 피억압층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기득권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른 종교적 학살이었지만 16~17세기엔 이웃끼리 조금만 싸워도 마녀라고 고발하는 일도 잦았다. 의사들도 마녀 ‘감별’에 일조한 기록을 볼 때, 의학의 우위를 점하려는 세력들도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녀와 마녀는 한끗 차이였다. 이탈리아 페루자의 복녀 골룸바(1467~1501), 이탈리아 파도바 출신 에우스토키움(1444~1469) 수녀는 마녀와 복녀라는 평가를 오간 대표적 인물이다. “선한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야 하는 종교의 순기능은 저버리고 자신들의 사리사욕만 일삼는 종교라면, 우리는 과감히 이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지은이의 에필로그 마지막 문장이다.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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