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의 공적 영성의 빈곤과 결여는 성도들의 사고방식과 삶에서 이성(理性)을 경시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는 이성의 역할을 터부시하고 경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사실 한국 교회의 이성 경시 현상은 전통적인 종교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무속종교의 주술성과 도교의 신비주의, 유교의 권위주의는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그 답을 얻는 과학적인 방법이나 민주적 대화와 담론을 통해 의사결정 과정에 이르는 방법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전통들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수천년에 걸쳐 축척되고 전래된 한국 문화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한국 교회도 자신도 모르게 이런 문화적 영향 아래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신앙의 초월성은 종종 비상식이나 몰이성과 혼동되고 오해되어 성도들로 하여금 삶에 대한 건전한 판단과 분별력을 길러주는 기회를 빼앗아버렸습니다. 곧 감성과 직관과 직통 계시만 중시하고 이성의 바른 사용을 통한 냉철한 신학적 판단은 경시하니, 허상과 실상,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이 미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화된 이성의 점검과 인도를 받지 못하는 신앙은 육욕적 감성과 욕심과 어울려 그릇된 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성 경시 풍조가 한국 교회 안에서 많은 이단을 출현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에 유달리 많은 이단이 난무하는 이유는 바로 개신교가 성화된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여 정당한 신학적 비판을 하는 것을 경시하고, 그저 영적이고 초월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전혀 검증되지 않은 무분별한 권위를 부여한 데서 빚어진 일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탄생한 이단들의 대부분은 신앙을 빙자하여 일체의 이성적 판단을 억압하고 교인들을 우민화시키는 일들을 자행합니다.
이성의 경시는 장기적으로 볼 때 한 조직을 민주적으로 이끌고 가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카리스마적인 권위와 초월적인 신비 경험을 강조하는 교회들의 경우, 교회생활에서 성화된 이성의 역할이 악화 또는 무시됨으로써 성도들의 영적 사고력과 윤리적 판단력이 제대로 개발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이성의 사용을 통한 영적 분별과 윤리적 판단도 일정한 훈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점은 기독교 신앙은 비상식과 몰상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성은 하나님이 동물과 구별하여 인간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입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변화와 갱신을 위한 로드맵' <한국교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산다>(이학준 지음, 새물결플러스 펴냄)에서
이학준=1997년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언더우드 선교사의 모교 뉴브런스윅 신학교에서 동양인 최초의 종신교수로 봉직했다. 2011년 가을부터 플러신학교에서 신학 및 윤리학 정교수로 가르칠 예정이다. 미국 장로교 목사로서 여러 도시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 행사의 기조 연설자로 초청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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