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사유는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어떤 영웅주의를 흔들어 깨운다. 니체가 일깨우는 영웅주의는 평온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불안 속에, 고통 속에 억눌려 있던 폭발하는 힘이다. 니체의 철학에서 악은 악으로 그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통은 고통으로 그치지 않는다. 니체는 고통이야말로 창조의 원천이고 성장의 동력이라고 말한다. 고통은 우리를 끌어올리고 우리를 해방시킨다. "큰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궁극적 해방자다. 이 고통만이 우리를 최후의 깊이에 도달하게 한다. 니체가 고통을 긍정한 것은 니체 삶이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지령의 침탈과 회복의 반복이 니체의 일생이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니체는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치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지나고 나면 그는 다시 새로운 삶을 의욕했고, 창조의 의지로 불탔다. 니체에게 삶은 끝도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삶은 또 그 고통을 넘어 그 자체로 성스러운 것이었다. 고통 속에서 성스러움을 발견하는 사람은 아무리 큰 고통도 긍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한 사람이다. 그 고통 속에서 영웅주의가 자란다.
영웅주의는 우리를 통계학의 숫자로 환원해버리는 이 평균성의 세계를 뚫고 솟구치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경우에도 일반적인 것으로 묻혀버릴 수 없고 통상적인 것으로 주저앉을 수 없다. 우리를 묶고 있는 집단이 우리의 실존 전부를 대신할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독특한 존재다. 그 개별적 삶의 독특성의 고양과 발화를 위한 투쟁을 니체의 `위험한' 철학은 옹호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을 얻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니체의 언어는 우리의 의식 심층에 호소한다. 무의식 저 안쪽의 어떤 것을 건드리기 때문에 그의 언어는 논리적 반박이나 도덕적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니체의 언어는 우리의 무의식 안에 있는 창조적 힘을 자극한다. 이 창조적 힘으로 우리는 안으로는 자기를 창조하고 밖으로는 세계를 창조한다. 세계 창조와 자기 창조는 니체에게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니체의 영웅주의는 한편으로는 자기 정복과 자기 창조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정복과 세계 창조로 나타난다. 니체에게 창조란 무엇일까. 차라투스트라의 말에서 하나의 답변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창조하는 자가 아닌 한 그 누구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모른다고 가르침으로써 그 졸음을 물리쳤다. 창조하는 자란 인류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창조해내는 자, 이 대지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자다. 바로 사물 안에서 선과 악이라는 성질을 창조해낸다."
니체의 영웅주의에는 순응을 거부하는 비타협성이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한 걸음도 순응하지 말라!" 이 비타협성이야말로 니체의 매력이다. 니체는 그 어떤 것에도 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자유정신에게는 조국도 연민도 학문도 심지어 자신의 미덕조차도 집착할 것이 못 된다.
"조국에 매여서는 안 된다....연민에 매여서는 안 된다.....학문에 매여서는 안 된다.....자신의 미덕에 매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홀로 설 수 잇는 능력을 타고났는지, 우리 자신을 지배할 능력을 타고났는지 스스로 시험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시험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내밀하기도 해서 그 자신 말고는 증인도 판관도 없는 시험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니체극장>(고명섭 지음, 김영사 펴냄)에서
고명섭=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겨레신문에서 출판담당 기자와 책지성팀장을 거쳐 문화부장으로 있다. 인간의 내면세계 혹은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그 정신이 산출한 생각들을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여 설명하는 데 흥미를 느낀다. 사유가 발원한 지점에 가 당ㅎ고 싶다는 욕구, 사상의 나무가 자라나온 뿌리는 만져보고 싶다는 욕구가 인문학 공부를 지속시킨 힘이었다고 한다. <니체극장>은 살마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생각이 움터 뻗어오르는 과정을 혹인하고 싶다는 바로 그 욕망을 추진력으로 삼아 쓴 책이다. 니체라는 위험하고도 유혹적인 철학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 내면에서 벌어진 사건들, 그 사건들이 일으킨 사유의 파문들을 뒤따라 체험하듯 탐사하여 기록한 것이 이 전기다. <즐거운 지식-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87편의 지식 오디세이><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시집 <황혼녘 햇살에 빛나는 구렁이알을 삼키다>, <말론 브랜도><공역> 등의 저서가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