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_ 수행, 수도, 명상을 통해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각박하고 외로운 현대인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수도, 명상,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밖에서 만 갈구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기를 깨닫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현실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한 생활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휴심정을 찾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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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원살림마을의 깨어나기나는 알았네, 내가 애타게 찾던 자유
"치가 떨리는 그 기억이 나입니까?"미운 생각이 나라고, 성추행당한 몸이 나라고,구박당한 기억이 나라고 붙잡은채 그토록 신음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충남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243번지. 조그만 시냇물을 따라 들길을 걷다 보면 야트막한 산과 만난다. 길이 끝나는 곳에 전원살림마을이 있다.
5박6일의 ‘깨어나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50여 명은 휴대전화와 시계마저 풀어놓고, 바깥세상과 두절된 채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드디어 시작이다. 영적 우주여행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무려 5천명 이상이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는 이 여행에 동참해 삶에서 깨어났다.
전원살림마을의 ‘깨어나기’는 이곳에서 ‘아침햇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장길섭 목사가 이끈다.
그와 함께하는 여행은 축제다. 그가 수련자들의 환부를 끄집어내려고 욕지거리도 서슴지 않지만, 대개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고 흥겹다. 장 목사는 선구적인 수도-수행과 심리프로그램들을 ‘깨어나기’에서 절묘하게 조합해 박진감 넘치는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수련자들은 장 목사와 그를 도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목사 세 명과 함께 울고 웃고 흔든다. 진행하는 목사들을 이곳에선 ‘산파목사’라고 부른다. 새로 태어나는 이들을 받아내는 산파라는 뜻일 것이다. 장 목사를 비롯한 이곳의 목사들은 성직자나 목회자와 같은 옷을 과감히 벗어버린 듯 자유자재하고 평안하다. 그들은 앞장서서 악을 쓰며 참여자들과 묻고 대답한다. 그러다 보면 참여자들은 어느새 고정관념의 틀을 넘어선다. 기억과 상처로 시비하며 고통 받던 상대 세계를 자신도 모르게 초월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절대 세계가 그렇게 불현듯 펼쳐진다.
‘깨어나기’ 프로그램은 믿음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기존의 그리스도교 전통의 프로그램과도 뚜렷이 차별된다. 그래서 개신교 신자뿐 아니라 불교, 가톨릭, 무신론자들도 참가할 수 있다. 어떤 편견이나 도그마를 강요받음 없이 참가자들이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고, 성경을 절로 이해하게 된다.
장 목사는 침례신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대전시 외곽 유성에 전원교회를 개척해 도시빈민들과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권’ 목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영성 훈련을 통해 스스로 삶이 깨어나는 체험을 하고, 1991년 충남 금산에 전원살림마을을 일구었다.
그러나 그 여정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초보자가 가보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것일까. ‘아침햇살’이 지금까지 가장 화가 났던 자신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라고 했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가슴을 다시 짓누르는 듯 여기저기서 벌써부터 가냘픈 한숨이 새어나온다.
“남편이 나에게 ‘못난 년아, 입 닥쳐!’라고 말한 것에 화가 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뜬 남편한테 평생 못난이라고 구박을 받았다는 50대 여성 ‘촛불’이 말했다.
직장의 두 남자 동료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꽃’은 “그 생각만 하면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고, 남자 자체가 싫어져 결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꽁꽁 묶어두었던 보따리들이 풀어 헤쳐졌다.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쯤 방 가운데 두꺼운 나무판이 놓였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숨죽이며 살아온 이들에게 단단한 고무방망이가 주어졌다.
“원 없이 화를 풀어!”
생기가 있는 이들은 이곳에서 화도 자유자재로 내지만, 상처에 찌든 이들은 화조차 내지를 못한다.
“화를 내! 화를 내란 말이야! 왜 화도 못내, 바보처럼!”
다시 아침햇살의 질책이 쏟아지고, 구슬픈 음악이 감추어둔 생채기를 건드린다. 주저주저하던 이들의 방망이질이 거세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일찍 갈 거면서 왜 늘 ‘못난아’, ‘병신아’ 하며 가슴에 대못을 박았어.”
“이 나쁜 놈아! 왜 그렇게 나를 구박했어. 이 죽일 놈아!”
한이 쌓이면 서리가 내린다던가. 매질과 구박과 성폭행에 신음하던 이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분노의 에너지가 쏟아진다. 폭포수다. 마치 무서운 태풍이 몰려오는 것 같다.
애벌레는 네 번 허물을 벗어야 나비가 되어 난다던가. 땀과 눈물의 강물에 화를 씻겨 보낸 이들이 드디어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한다. 아직도 열이 펄펄 끓는 이들은 그 열을 녹이려는 듯 인근 계곡에 뛰어든다. 그렇게 땀을 씻은 이들이 옷을 갈아입고, 숨을 고른 채 다시 모였다.
급상승이 있으면 급하강이 있다. 카타르시스를 위한 코너가 이어진다. 이제 신나는 춤판이다. 처음엔 ‘난 못해’라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던 이들도 ‘나는 못한다’는 생각의 틀을 갖고 주저할 수 없다. 그것이 깨어나기의 에너지 장이다. 분위기에 젖으면 틀을 깨고 너나할 것 없이 몸을 흔들게 된다. 그러다보면 응어리져 단단하던 몸도 마음도 얼음이 녹듯 녹아 가벼워진다.
이곳에서 춤만큼이나 익숙한 것이 ‘마음 나누기’다.
"당신이 내게 방석을 가져다주며 나를 배려해주었다고 생각하니, 기쁩니다."
옆 사람과 생각과 느낌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동안 성추행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사실을 ‘모든 남자는 성추행범 같다’고 확대해석한 것을 알아채고, ‘그 남자가 성추행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이곳 영성수련은 한순간도 빈틈이 없다. 아침에 웃으면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종이 울릴 때마다 걸음을 멈춰 자신의 호흡을 바라보며, 식사 때도, 설거지 때도, 청소 때도 ‘생각’으로 예단하고 시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잘 듣고 보도록 한다. 이런 흐름에 깨어 함께하다 보면 점차 자신이 보았던 세계가 자신의 생각이었을 뿐 실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다시 아침햇살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토끼와 장닭과 나무와 풀은 당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말에 수련자들은 정원과 마당에서 목을 놓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이곳에 서 있는 이 몸이 나입니까?”
“치가 떨리는 그 기억이 나입니까?”
수백 번 계속된 질문 속에서 답도 막히고, 질문도 막히고 생각조차 끊어질 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한 번도 지금 여기를 벗어난 적이 없음을 자각하게 된다.
미운 생각이 나라고, 성추행당한 몸이 나라고, 구박당한 기억이 나라고 붙잡은 채 그토록 신음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눈물이 강물을 이루고 너도 나도 앞 다투어 껍질을 깨고 비상한다. 하덕규의 <자유>란 노래에 맞춰 나비처럼 훨훨 난다.
껍질 속에서 살고 있었네 내 어린 영혼 껍질이 난 지 내가 껍질인지
그것도 모르고 껍질 속에서 울고 있었네 내 슬픈 영혼 …… 나는 알았네 내가 애타게 찾던 게 뭔지 내가 애타게 찾았던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
조현 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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