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_ 수행, 수도, 명상을 통해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각박하고 외로운 현대인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수도, 명상,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밖에서 만 갈구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자기를 깨닫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현실에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한 생활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휴심정을 찾는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
10.에니어그램아, 나는 어떤 탈을 쓴 채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들은 어린 시절 부모와 세상에 노출되면서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각자 탈을 쓰게 되고 그 탈 속에 갇힌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성격 유형보다 더 큰 존재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상황을 맞은 사람들은 같은 반응을 보일까. 그렇지 않다. 상황이 같다고 하더라도 성격에 따라 나타나는 반응은 각기 다르다. 인간은 그만큼 다르다. 다름을 안다는 것만으로 마음은 몇배나 더 편해질 수 있고, 타인과의 관계도 훨씬 더 평안해질 수 있다. 그 평안으로 인도하는 게 바로 에니어그램이다.
"놀러온 손님의 아이가 벽장에 갇혔다면?"
"무조건 문을 부수고 아이를 꺼내야지."
"아니야, 아이가 놀랄 테니까, 먼저 달래야지요."
"우선 꺼낼 방법부터 생각해야지."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야당2리 성심수녀회 피정의 집에서 한국에니어그램연구소 소장인 박정자 수녀의 물음에 40여 명의 참가자들이 저마다 답했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마다 이렇게 반응이 달랐다.
에니어그램이 가톨릭과 개신교 등 종교와 심리학계로부터 어린 시절 경험에 의해 형성된 자아를 찾고, 그 자아를 극복해 인격을 성숙시키고, 영성의 진보를 도모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스어로 에니어(아홉)와 그램(단위)의 합성어인 에니어그램은 인간의 유형을 9가지로 구분한다. 크게 보면 장 중심(8.9.1유형)은 본능과 습관대로 움직이고, 가슴 중심(2.3.4유형)은 정서와 감정을 중요시하며, 머리 중심(5, 6, 7 유형)은 심사숙고하는 사람들이다.
에니어그램은 현대 서구의 심리프로그램들과 달리, 2000여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유래돼 이슬람 신비주의 수도자인 수피들에게 전수되던 것을 20세기 초 그리스계 미국인 구르지예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해 서구에 알렸다. 미국 예수회 신부들과 스탠퍼드대학 심리학자 등에 의해 발전했다. 국내에는 10여년 전에 들어왔다.
에니어그램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부모와 세상에 노출되면서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각자 탈을 쓰게 되고 그 탈 속에 갇힌 채 살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에니어프로그램은 단순히 자신의 유형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집착하는 탈의 꼴을 알고, 그 탈에서 벗어나 '참 나'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에니어그램연구소의 박 소장은 "절대 남을 어떤 유형이라고 구분하지 말고, 자신의 유형을 서두르지 말고 서서히 찾아 이 탈을 벗어나는 도구로만 이용할 것"을 권했다.
그럼 나는 과연 에니어그램의 어떤 유형에 속할까. 에니어그램에서는 사람은 보통 자신의 유형의 양쪽 번호 중 하나를 보조적인 유형으로 지니고 있다고 파악한다. 또 같은 유형이라도 성숙의 정도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1유형 비판적인 부모나 편부모 슬하에서 자란 사람이 많다. 완벽주의자로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개혁가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높아 남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약점만 지적한다. 금욕적이고 청교도적이어서 노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2유형 일찍 부모를 잃었거나 부모에게 고분고분한 어린 시절을 보내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고, 필요한 사람이 되려는 '순교자 콤플렉스'가 있다. 그러나 헌신에 감사하지 않을 때는 상처받고 분노한다. 홀아비가 불쌍해서 설거지해주러 갔다가 아이까지 낳아주는 스타일이다.
3유형 어릴 때부터 칭찬받고 자라 '성공'에 힘쓴다. 유능하고, 사교적이다. 그러나 단칸방에 살면서도 고급차를 굴리는 스타일이다. 상대가 잘못했다고 화를 내다가도, 그가 명문대 출신이거나 유명인이라는 것을 알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태도를 바꾸는 형이다.
4유형 어릴 때 부모의 죽음이나 이혼, 갑작스런 이사 등으로 박탈감을 체험한 경우가 많다. 외모나 옷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 그러나 자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진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데, 나무꾼에게 잡혀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한탄하는 형이다.
5유형 불만스러움을 체험하거나 지나친 간섭을 받으며 자랐을 확률이 높다. 말수가 적고 수용적이며 예리한 관찰자로 잡담보다 심각한 얘기를 좋아한다. '아는 것이 힘'이라며 정보 수집에 힘쓰고, 인사성도 밝다. 그러나 스크루지처럼 인색해 지식도 돈도 끌어들이기만 하고, 잘 나누지 않는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6유형 어려서부터 두려움과 의심이 많고, 책임감이 강했던 경우다. 규범과 규칙을 중요시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안전만을 추구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권위자에게 기댄다. 융통성이 부족하고, 지역이나 혈연, 학연에 집착한다. 가족이 연락 없이 늦으면 혼자 사고와 죽음, 장례까지 생각하는 몽상가다.
7유형 유복한 환경이 갑자기 깨졌거나, 모험을 즐기는 아이였던 경우가 많다. 일찍이 세상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 감정을 누르고, 쾌락과 재미에 집착한다. 맛있는 것도 아이를 주기보다는 자기가 먼저 먹는다.
8유형 억압받고 자라면서, '힘'을 신봉하게 된 사람이다. 리더십이 있고, '하면 된다'고 밀어붙이지만, 적대적이다. 자기는 남의 차를 밥 먹듯 앞지르면서도 남이 추월하면 욕을 퍼붓는 유형이다.
9유형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만과 편견이 없어 남을 잘 이해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한번 고집을 부리면 '고래 심줄' 같다. 술이나, 화투, 카드, 스포츠, 수집, 비디오, 텔레비전에 빠져 있기 쉽다.
에니어그램의 각 유형간의 우열은 없다. 그러므로 특정한 성격이라고 비관할 것도 자만할 것도 없다. 성격은 단지 그가 어떤 생래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쓰고 있는 탈일 뿐이다.
자신을 6번 유형으로 파악한 50대 황아무개씨는 "평생 알코올 중독으로 살아왔는데,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니, 3~4살 때쯤 부모가 생계를 위해 나가고 없던 때, 호롱불에 데었는데도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며 "햇볕에 드러내면 별것도 아닌 것이 어린 내게 큰 상처로 무의식에 각인돼 술을 피신처로 삼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을 1번 유형으로 파악한 대학 교수인 서아무개씨는 "강의 전날은 잠을 못 잘 만큼 준비에 몰두하고 매사에 빈틈이 없어 나는 완벽하다고 자만했는데, 옆사람들은 크게 피곤하고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어린 시절 엄격한 교사였던 아버지에게 칭찬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도 모르게 삶을 즐기지 못하는 성격으로 굳어버렸다"고 말했다.
각자가 이렇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거슬러올라가 기억을 되살리거나 내면 여행을 함으로써 자신의 성격 유형을 파악한다. 그러면 스스로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의 행동 양식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에니어그램은 각자가 자기 고유의 성격을 버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성격을 잃어버리면 자아 정체성을 잃어서 무기력하고 무능한 사람이 된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자신의 성격을 버리는 게 아니라 더 잘 이해하는데 에니어그램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고유의 성격을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통로가 되게 한다. 결국 진짜 나는 자신의 성격유형보다 훨씬 큰 존재임임을 깨달도록. 그러면 각자는 고유의 성격을 지녔음에도 자신과 남의 성격에 대해서도 좀 더 유연해진다. 성격은 우리 각자가 쓰고 있는 ‘탈’이므로.
아, 우리는 어느 탈을 쓴 채 살아가고 있을까.
조현 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