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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대선 이후를 생각하자

등록 2012-12-05 20:41수정 2012-12-05 21:55



많은 이들이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 대해 안타까워할 때, 나는 다른 한 후보의 사퇴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 등 떠밀려, 그렇게 씁쓸한 퇴장을 했어야했다. 그녀의 눈물에서 나는 한국진보정치의 현 주소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올해 초에 있었던 통합진보당의 내부 문제, 그리고 분당과 부침을 겪으며 어려운 싸움을 벌였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허탈했다.(진보신당도 김순자, 김소연 후보를 중심으로 나뉘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속 사정이야 알 길이 없지만,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편견을 재확인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심상정 후보뿐만 아니라, 노동자 후보, 그리고 다른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불편하다. 대선은 박근혜, 문재인이라는 거대 후보의 양강 구도로 가고 있다. 진보정당, 노동자 후보는 철저히 외면 받고 있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진보정치의 대선은 강제종료 당했다. 진보정치를 지지하는 이들은 억지로 만들어진 ‘야권단일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물론 노동자 후보 완주에 총력을 다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할 것이다. 세상의 관심은 오로지 박근혜와 문재인의 대결구도에만 집중하고 있으니까.

암담하고 침울한 현실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한국 정치의 지형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어온 정치의 구태의연함이(이미 균열은 가기 시작했지만) 터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야권단일화’ 현상은 아마 이번 대선이나 다음 총선을 끝으로 마무리 될 것 같다. 사실상 박근혜 후보에게는 이번 대선이 마지막 기회이고, 박근혜라는 인물이 사라지면 새누리에서 그 정도로 확고한 팬덤을 가지고 있는 후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와 박근혜를 반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유권자들은 다른 정당과 다른 정치세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아마 정치 쇄신은 그렇게 조선시대에 훈구와 사림의 주도권 싸움이 훈구파의 자연스러운 소멸로 끝난 것처럼,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진보정치를 꿈꾸는 이들에게 남은 과제는 ‘다음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이다. 결선투표제와 정당명부비례대표제와 같은 선거제도 개선을 통해 진보정당을 비롯한 새로운 정치세력이 독자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해야한다. 그리고 가장 우리의 삶과 밀접한 영역에서 차근차근 진보적 가치를 실천해 나아가야 한다.

글 권혁빈
"정치, 사회와 문화예술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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