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회가 얼마나 바뀌었고 때로는 그대로 답보되어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겨레신문 사진부가 10년전 취재했던 사진들을 다시 들춰보기로 했다.
2006년 5월 19일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이 해고된 가운데 26일 서울역청사 안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정지선 케이티엑스 열차승무지부 대변인, 정혜인 열차승무지부 부산지부장이 서울역 내에서 단식 3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 채용 때까지 단식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04년 4월 고속철도의 개통을 앞두고 한국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들을 고용했습니다.
출범 당시 KTX도 항공기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대대적인 공채를 통해 280여명을 선발했습니다. 계약직이었습니다.
당시 고속철도 여승무원은 선로 위의 스튜어디스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시민들의 기대가 컸,
여승무원 선발 당시 280명 모집에 4천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 무려 13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고속철도 개통을 앞둔 상태에서 많은 여승무원들이 "2년내 정규직 전환"이라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기대감은 더욱더 컸습니다.
열악한 처우에도 2년 동안 근무하면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여승무원들은 한국철도공사가 아닌 한국철도유통에 고용 및 소속돼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나 정작 정직원이 되더라도 철도공사가 아닌 한국철도유통의 정규 직원으로 채용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여승무원들은 2006년 3월 한국철도공사 총파업과 때를 맞춰 농성을 시작합니다.
10년 동안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습니다.
계약직으로 고용된 뒤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10년여간 법정투쟁까지 벌였지만 지난해 11월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여승무원들은 1, 2심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과거 4년간 고용된 것으로 인정받아 코레일로부터 임금과 소송 비용 등 1인당 8640만원을 받았는데, 이 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대부분 아이 엄마가 되어버린 그녀들은 자식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줄까요?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